"간호사들은 환자 안전을 책임지고 싶습니다. 실제 환자를 보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이고, 그것이 딱 법으로 정해져야 환자도 안전하고 간호사도 살 수 있습니다" - 입사 1년 차 신규 간호사의 이야기 중에서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간호사는 환자를 지키는 간호노동을 원한다"는 현장 간호 노동자들의 외침이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졌다.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와 행동하는간호사회는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 간호사의 날 현장 노동자 선언'을 발표했다.
"간호사가 건강해야 환자도 안전하다". 참세상
선언에 참여한 간호사들은 "병원은 기계적 치료에 급급한 전쟁터가 아닌, 환자와 노동자의 존엄이 지켜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충분한 간호인력은 필수이나 현실은 반대"로, "간호사들은 부족한 인력과 교대근무로 인해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고, 의사의 대체재로 여겨지며 의사 업무 전가로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정부는 간호인력 충원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현장과 동떨어진 간호 정책들을 내놓고 있고, 간호사 입장을 대변한다는 대한간호협회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며 "병원은 간호사의 노동과 환자의 안전은 뒷전이고, 오로지 ‘이윤’과 ‘경영’에만 몰두하고 있다"라고도 짚었다.
간호사들은 "우리 간호사들은 단결하여 노동자의 희생과 환자의 불안으로 잠식된 병원 현장을, 환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바꿔낼 것"이라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인력 충원, 간호사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간호사가 건강해야, 환자도 안전해"
권지은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선전부장이자 간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간호사가 안전하게 일하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결국 환자"라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충분한 휴식과 휴일 보장, 인력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라고 이야기했다. 권 간호사는 또한 "간호사의 권익 향상은 간호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길"이라며 "차기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오늘 이 발언을 결코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대한간호협회 역시 보여주기식 행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장 간호사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입사 1년 차가 되어가는 대한민국의 신규 간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어느 행동하는간호사회 회원의 이야기도 동료의 대독을 통해 기자회견에서 소개되었다. 그는 "간호사가 된 제게 맡겨진 첫 업무는 PA(진료지원업무)였는데, 병원은 PA 발령이 확정됐다는 연락을 입사 예정일 5일 전에 알려 주었고, 이를 거부하면 입사 취소가 된다고 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병원 전산 시스템에 채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교수님을 따라 회진을 돌며 입원 환자의 초진기록지와 경과기록지를 작성했는데 이는 원래 신규 간호사의 업무는 아니다. 교수님의 ID와 비번 계정으로 접속하여 외래환자를 같이 봐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면서 "PA 업무를 하는 내내 ‘이 업무를 내가 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단 한 순간도 떨칠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병동 전보 후에도 "신규 간호사인 제가 하는 일이나 우리 병동의 10년 차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나 다를 것이 없었고, 제가 버거워하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10년 차 선생님 또한 업무를 버거워하시는 게 보였다"면서 "실제 환자를 보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줄고, 그것이 딱 법으로 정해져야 환자도 안전하고 간호사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 간호사의 날 현장노동자 선언 현장. 참세상
"빈껍데기 간호법 시행령·시행규칙"..."현장 간호사 의견 수렴해야"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다음달 21일 간호법 시행을 앞두고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간호법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안 입법예고」안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의료연대본부와 행동하는간호사회는 보건복지부의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문에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시행령·시행규칙안은 간호사와 국민에게 중요한 내용은 모두 빠져있는 빈껍데기 시행령·시행규칙이었다"고 규정하고 "인권 침해에 상시적으로 노출된 간호사들의 상황을 ‘간호사 인권 예방 교육’ 하나로 퉁쳐서 해결하겠다는 비현실적인 안이 대표적"이라며 "여기에 더해 간호사들과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인력 배치 기준과 위반 시 벌칙조항은 없었고, 의료대란 속에서 불법을 넘나들 수밖에 없는 진료지원 간호사에 대한 내용은 전무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결국 간호법과 시행령은 간호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지역과 병원현장에서 간호사 보호와 역할 확대보다는 의사업무 대행에 급급한 법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였다"면서 "보건복지부에게 최소한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실효성 있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다시 만들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인력 충원과 같은 현장의 요구가 반영되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 간호사가 참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고 적용 대상이 되는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