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쪽 짜리 만화에서 강우근 씨는 우리의 이웃 '지렁이 할머니'의 삶의 경건함을 보여줌으로써 지렁이할머니를 무시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심지어 시혜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조차 낯부끄럽게 만든다.
신자유주의가 주류가 된 사회에서 대부분 '시사'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에 다름 아니며 노동자 서민에게 생존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사프로그램은 문제의 현상을 나열하지만 원인이 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있다.
고마리는 시궁창 속에서 찾아낸 녹색 희망이고, 콘크리트 도시에서 찾아내야 할 또 하나의 미래일 수 있다.
과거의 혁명, 미래의 혁명이 아니라, 현실에서 진행중인 혁명의 모습, 혁명하는 사람들의 표정, 혁명이 벌어지는 사회 변화의 장면을 보여주었다. 관념과 공상 속의 혁명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상상과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노동자에게도 머물러 있거나 안주할 곳이 없다. 낡은 세상을 박차고 나가는 것 그것이 노동자의 삶이다. 노동자에게 잃을 것은 오직 쇠사슬뿐이다.
기획이나 구성, 기술적인 측면에서 조금만 다듬으면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작품들이 많았으나 사회적 맥락을 놓친 점은 아쉬워
실험! 진보! 대화!를 슬로건으로 하는 국내 유일의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2004가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제초제를 뿌린 곳에서 자라난 쇠비름은 먹을 수 없다. 그것은 이제 음식도 약도 아닌 것이다.
"부르조아 아들네미 + 독실한 크리스찬 + 별로 좌파아님 + 북한 싫어 + 개인주의 만땅의 스노브인 내가 보기에도 국가보안법은 아무래도 아.니.올.씨.다."
숲은 또 한 차례 흰 꽃 사태로 덮일 것이다. 5월 숲에서는 팥배나무, 노린재나무, 때죽나무, 찔레와 산딸기 그리고 아까시나무 따위 흰 꽃들이 줄줄이 피어날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아까시나무 흰 꽃 사태는 그야말로 봄의 절정이다. 아까시나무 하면 한 번쯤 꽃을 훑어서 먹고 잎을 따며 놀았던 경험이 모두들 있을 게다. 아마 어린 시절 추억 속에 등장하는 가장 친근한 나무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한편 아까시나무는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고 많은 오해를 받아온 나무이기도 하다. 아까시나무는 이름조차 제대로 불려지지 못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잘 몰라도 ‘아카시아’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카시아는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자라는 다른 나무 이름이다. 아까시나무와 같은 콩과식물에 속하지만 속(屬)이 서로 다른 나무이다. 아까시나무 학명이 ‘수도-아카시아(Pseudo-acacia)’인데 이 뜻은 ‘가짜아카시아’란 뜻이다. 아마도 아카시아처럼 가시가 있고 또 작은 잎이 여러 장 모여서 달리는 게 닮아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 같다. 그런데 가짜 아카시아가 이 땅에 건너와서 그냥 진짜 아카시아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까시나무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한 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무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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