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궁극적인 인플루언서는 대중 자신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중이 스스로 가진 영향력을 올바로 행사하는 역량을 가진 뒤에야 자신들의 수준에 걸맞는 인플루언서를 가질 수 있다. 미디어와 문화산업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인플루언서를 키워낼 수 있는 것은 바로 대중 자신이다.
‘젊고 재능 있는 흑인이 되는 것’은 곧 시민권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가 됐다. “젊고 재능 있는 사람이 되는 건 흥분되고 환호할 일이겠지요. 하지만 젊고 재능 있는 흑인이 된다는 건 그보다 두 배는 역동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일을 보세요.”
패턴을 통한 차별은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할수록 그 내적 논리의 정합성이 점점 더 강화된다. 미디어학자 웬디 희경 전(Wendy Hui Kyong Chun)에 따르면, 데이터의 패턴 인식과 알고리즘의 패턴 차별이라는 것은 바로 ‘동종선호’(homophily)라는 원리에서 기인한다.
이번 『진보평론』 81호의 <특집> 주제는 <신중국 70년>으로 정했다. 금년이 중국 혁명 70주년이라 이를 평가하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역시 조국사태로 인하여 사회적 관심이 저조하다. 그래도 괜찮다. 진보평론 구독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적 경제의 운명은 크게 반대되는 두 가지 입장들로 점쳐지곤 했다. 첫 번째 입장은 전체 경제 구조에 의해 사회적 경제가 애초의 의도와 달리 왜곡되거나 자본주의 경제의 압력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스스로 주변적 영역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 번째 입장은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경제는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신념이 있는 이상 어떻게든 존속하여 우리의 삶을 바꿔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족이 사라져도 자본가는 어디서든 자본가로 살 수 있고, 지식인 부르주아는 찾아갈 외국의 친구라도 있지만, 노동자들은 계급화 될 수조차 없는 존재가 되어, ‘아무것도 아닌 자’로 흩어진다. 그것이 ‘여기서’ 좋은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는 민중이, 언제나 최후의 시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력한 사람에게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출발선 자체가 다른데 단순히 ‘개인들의 능력’으로만 평가하지 말자는 얘기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나. 당신의 앞에는 누가 있고 그 뒤에는 누가 서 있는가. 누군가의 앞에 서 있는 것이 기쁜 일이기만 할까?
자동화되는 것은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이 아니라 자동화 시스템 내에서 그 자동 부속품처럼 작동하는 인간의 삶이 아닌가. 인간이 기계적 자동화로 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순진한 이상과 기계와 인조인간에 지배당할 것이라는 무구한 공포에서 벗어나, 자동화 체제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현실적인 협력과 공진화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난 6월 독일 뒤셀도르프 오픈소스 페스티벌 주최 측은 미국인 래퍼 탈립 콸리를 섭외했다가 취소했다. 콸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위해 이스라엘 BDS(불매·투자철회·제재) 운동을 지지했었는데 이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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