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이윤택들’의 무대가 젠더 약자에 새긴 폭력은 예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예술에 척박한 한국의 자본주의 속에서 ‘일가’를 이룬 ‘원로’와 ‘거장’ ‘선생님’들은 신화가 됐지만 대신 ‘후배’와 ‘제자’들은 그들에 숨죽여야 했다. 피해자의 삶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도 그런 예술이 길었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잘못을 반성하는 것만으로 힙합은 책임을 다한 것일까? 랩으로 여성과 동성애자를 비하할 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힙합이 잘못된 옛 관행들을 표현해 왔다면 변화하는 사회 역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다문화주의는 인종주의를 억제하고 민족주의를 대체하려는 목적에서 제시됐지만 그 뒷문으로 슬그머니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다시금 불러들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전의령의 표현처럼 다문화주의는 ‘착한 인종주의’의 면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삶의 위기까지 겹친다면 격발의 순간은 더욱 가까워진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뒤에서 끙끙 앓거나 홀로 비장해지지 않고도 때마다 지면을 뒤덮고 여론을 이루며 당신들을 당혹케 할 것이다. 당신들의 세계를 밀어낼 것이다. 이 변화에 합류하자. 마음을 열고 적응하자. 부디 도태되지 말고 함께 가자.
‘회사의 갑질’이란 표현은 성차별적 구조와 젠더 위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더러운 욕망’이나 ‘추문’이라 부르는 것만큼이나 부적절한 용어 사용이다. 그 말은 노동관계 속에서 권력의 위계가 폭력을 생산하고 용인해 온 구조를 감추고 단순히 개인의 일탈행위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많은 비판적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늘 힘주어 SNS, 특히 페이스북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해왔다. 앞으로도 이 사실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강조해서 말하게 될지 모르겠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서비스가 무료라면, 우리가 바로 상품이다.
종북이란 좌파를 가리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과거에 유행했던 용공 좌파란 말을 동시대 버전으로 업데이트한 것이 종북 좌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좌파 내부에서 종북으로 지칭되는 정치세력을 견제하고 비판하기 위해 좌파 세력 스스로 만들어낸 말임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거긴(워커스) 아직 안 망했네요?” 지난 겨울, 늘 그렇듯 촉박하게 마감을 하고 인쇄소 사장님께 전화를 드리니 이런 애정어린 생사확인을 해주시더군요. 정말 고오맙습니다…스증님…그렇습니다. 열악한 언론지형과 출판 환경을 뚫고 편파적인 잡지, 색안경 잡지, 좌파 독립언론 <워커스>가 창간 2주년을 맞았습니다.(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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