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동독 출신 독일인들은 75%가 통일해서 잘 됐다고 답한 반면, 서독 출신 독일인들 가운데 통일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 사람은 절반에 그쳤다. 독일 통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굳이 14년 전에
1905년 을사늑약 직후에 사직서의 박봉주가 올린 상소문은 문화재 복원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는 문화재청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가치, 사직단 복원을 둘러싼 논란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을 1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와 다시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조선일보가 지난달부터 현대중공업 관련 기사를 여러 건 쏟아내고 있다. 노조가 파업 투표에 들어간 전후부터 기사의 양도 많아지고, 노조 비판쪽으로 방향을 확실히 틀었다.
민족주의, 민족주의 운동이 지금도 필요한가는 질문은 ‘주권’을 가진 ‘만인이 평등한 공동체’라는 민족주의의 이상이 아직도 유효한 것인가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역사적 상황에 있으면 어떠한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억압 받는 국가라면 민족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과 국제경영개발원(IMD) 등 사설단체가 해마다 세계 여러나라를 대상으로 국가경쟁력을 발표하면 한국 언론은 이를 앞 다투어 보도한다.
낡음이 새로움을 집어 삼키고 생동하는 것들을 굳어지게 하는 시대다. 체제와 제도의 허구성이 날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낡은 국가로 전락해 생명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에 종속시키며 경제적으로는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집어삼키고 있다.
분명히 공산주의는 역사 속에서 무수히 실패해 왔다. 하지만 언제나 현존하는 질서를 넘어서려는 적극적인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닿을 수 없는 이념이 아니라 절대로 변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공산주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확언하기에 앞서 짚어보아야 할 것은, 우리는 이미 가능한 상태에서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쯤 되면 조선일보가 판교 사고 현장에 가서 쓰려고 한 기사의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해진다. 판교에 갔으면 판교 기사부터 팩트를 충실하게 챙겨야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쓰는 고약한 심보다.
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방법론을 제시했던 그람시의 이론을 거꾸로 뒤집은 이문열의 발언은 삼성을 향한 최대의 미사여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경옥 처장은 “죽기 전에 노조를 알아 천만다행”이라며 “나의 자존감을 지켜 준 노조를 지키기 위한 나의 투쟁은 앞으로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 ‘카트’는 오는 7일과 8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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