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석의 『피지털 커먼즈』는 세상이 단순하지 않음을, 다층적으로 분화된 전선들이 서로 뒤섞여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질적인 것들의 교차 지점을 살피면서 세상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은폐된 욕망이 무엇인지 밝힌다. 더불어 욕망의 협곡을 건너갈 공생의 다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저자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반복되는 패배와 좌절을 지켜보는 일은 이 세계를 부정하고 허무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세계는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그동안 목격한 사건들을 걷어내고 나니 우리가 지나온 시공간이 캘리포니아*로 응집되었고, 그곳에 연루된 서로 다른 존재들이 보였다.
함께 간 후배들 중 몇몇은 유치장으로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대학 새내기 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휘두른 주동자로 몰렸다. 아마 몇 장의 사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상황은 심각해서 구속여부를 가리는 재판까지 있었다. 다행히도 나올 수 있었지만 그 뒤로도 검사 조사와 재판에 시달려야 했고, 그의 이름에 빨간 줄을 그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이 작업은 시작한다.
특히 1926년 1월 4일 조선일보에 실린 〈신여성이란 무엇〉에서 여성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진정한 신여성은 구제도의 불합리한 환경을 부인하는, 강렬한 계급의식을 가진 프롤레타리아 여성, 즉 무산 여성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으로 공적 책무를 부여받은 지상파 KBS와 MBC·SBS 메인뉴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 허위 경력 논란에 다시 불이 붙고, 이재명 후보의 아들 상습도박 논란이 이어진 12월 14일부터 3일간의 대선 보도를 살펴봤다.
신문사 임원은 고사하고 여성 데스크 비율조차 10% 선에 간당간당하는 우리 언론 환경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이상한 사람들을 석학이라고 불러놓고 참가를 강권해 돈을 버는 컨퍼런스와 광고형 기사로 한몫을 단단히 챙기는 레드 오션을 새로운 돈벌이 수단쯤으로 여기는 우리 언론은 뉴욕타임스라도 따라가야 하지 않겠나.
로드뷰와 항공사진, 위성사진, 내비게이션 등 지도 앱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세계 곳곳에 실제적인 접근이 가능한 요즘이다. 절대자의 시각을 갖게 된 동시대에 내 눈앞에 마주하는 형상이 먼저일까, 지도 앱이 지시하는 형상이 먼저일까.
그의 죽음을 놓고 언론은 ‘일평생 노동자를 위해 행진한 세계의 양심수’(경향신문 12월6일 21면)라거나 ‘노동운동에 평생 헌신한 세계의 양심수’(한국일보 12월6일 23면)라고 추켜세웠다. ‘평생 노동운동에 헌신’했다는 언론의 평가는 과연 진실일까.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정치지망생들도 문제지만, 어디로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정치구조를 만들어 놓은 거대 양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도 양당을 저울질하다가 민주당을 택했다. 이렇게도 많이 닮은 두 당이 카메라 앞에선 왜 맨날 싸울까.
자본주의의 본질은 사람들이 경계 없이 누리던 ‘공통장’(commons: 땅과 물, 산림 등)에 울타리를 쳐서 사적 소유의 경계를 세우고 훔쳐가는(‘인클로저’) 것에 있고, 무언가를 도둑질이라고 규정하는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진짜 도둑이라는 것이 라인보우의 관점이다.
참세상은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이메일을 통해 받고 있습니다.
독자제보 E-Mailnewscham@gmail.com
이메일
비밀번호
이메일로 회원가입비밀번호 찾기
가입하면 기사에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입력한 이메일로 인증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닉네임 (댓글에 표시됩니다)
비밀번호 (8자 이상)
웹사이트
이미 가입했다면 로그인
가입한 이메일을 입력하면 비밀번호 재설정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로그인으로 돌아가기
새 비밀번호 (8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