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당 기관지] 보병 숫자가 전력이라니…안보 망치는 징집제

[사회당 기관지] 보병 숫자가 전력이라니…안보 망치는 징집제

해병대에 장기복무한 하사관 김상식 씨. 인터넷 상에 남겨진 그의 글은 군 생활을 통해 느낀 징병제의 폐단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징병제도에 대한 문제점은 군생활 경험자라면 대부분 인지하리라 생각됩니다. 적극적인 의지로 희망 입대하는 해병대에서도 복무 기간이 짧은 사병위주의 운영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위에서 전차, 포병, 통신, 특수전 등 특수 병과에 있어서 사병이 오랜시간 교육을 받고 장비를 어느정도 운영할 수 있게되면 전역을 해야하고 새로운 대체 장비가 복무도중 투입 되었다면 더더욱 운영능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보병의 숫자가 곧 전력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죠. 그것도 사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징병 인력으로야 말 할 것도 없구요 그 많은 인력 유지비면 충분히 장비도 현대화 하고, 특수전 경보병으로 전문화도 가능할 텐데….” 군사전문가 김종대 씨 역시 <통일뉴스> 칼럼을 통해 징병제의 폐단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한국형 K-1전차는 한 대 값이 약 50여 억 원이다. 이 전차가 조종병의 오조작에 의해 변속기가 수시로 파손되는데 변속기의 경우 한번 파손되면 수리하는데 5,700백 만 원, 교체하는데 2억 원이 든다. 육군 전차부대는 이

[사회당 기관지] 세계는 지금 ‘징병제 폐지’ 바람

[사회당 기관지] 세계는 지금 ‘징병제 폐지’ 바람

세계적으로 징병제 폐지 바람이 불고 있다. 각 국가의 병역제도는 안보환경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크게 징병제와 모병제로 구분된다. 징병제는 국민개병(皆兵)의 원칙에 따라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가 병역의무를 강제로 부과하는 것이며, 모병제는 개인의 자유 의사에 따라 국가와 계약관계를 맺는 것. 현재 대표적인 징병제 국가는 이스라엘, 북한 등이며 유럽 선진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징병제를 폐지 또는 완화해가는 추세이다. 독일의 경우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통일 이후 18개월에서 10개월로 현역 복무기간을 줄여왔다. 또한 올해 초부터 정치권 내에서 징병제 폐지와 관련한 열띤 공방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정당이 징병제의 단계적 폐지와 축소에 동의하고 있다. 녹색당이 징병제 폐지를 계속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야당인 자민당이 징병제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동조하고 있어 징병제 폐지가 속력을 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러시아는 지난 3월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는, 완전한 직업군인제 전환 계획을 승인했다. 현재 120만 명의 군 병력을 10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는 개혁을 펼치고 있는 러시아는 병력 수를 줄이는 대신, 장비 현대화 비중을 높이는 것을 핵심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 프랑스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특집 대선과 김정일위원장 답방의 방정식]한반도 주변 정세 답방에 유리하게 조성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특집 대선과 김정일위원장 답방의 방정식]한반도 주변 정세 답방에 유리하게 조성

김위원장 오는 건가 마는 건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대선과 김정일위원장 답방의 방정식]대안없고 무조건 비난만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대선과 김정일위원장 답방의 방정식]대안없고 무조건 비난만

한나라당 대북정책 비판│이회창 무능과 초조감 자인하는 꼴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미국 이라크 공격해서는 안된다”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미국 이라크 공격해서는 안된다”

전쟁 나면 한국군 파병 요청 가능성

[주간노동자의 힘] 고이즈미 방북: 한반도 둘러싼 국제관계가 변한다

[주간노동자의 힘] 고이즈미 방북: 한반도 둘러싼 국제관계가 변한다

한승동(한겨레신문 국제부 기자)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위한 예비교섭을 시작한 것은 일본제국 패전 6년 뒤인 1951년이었다. 그때 한국은 바로 그 전해인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의 포연 속에 휩싸여 있었고 패전 뒤 불황 속을 헤매던 일본은 이 전쟁을 통해 기사회생함으로써 ‘전후 경제부흥 기적’의 토대를 쌓았다. 한-일협정을 맺고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된 것은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1965년이었다. 그 4년 전인 1961년 5.16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한 개발독재체제를 본격 가동하고 있었다. 1951년 한-일 국교정상화 예비교섭이 처음 시작된 곳은 도쿄 미군 점령군사령부였다. 미국은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음으로 양으로 정상화 조기타결을 촉구하고 압박했다. 1950년의 한국전쟁은 1947년부터 노골화한 미국의 대소 냉전대결체제가 1949년 중국의 공산화를 거치면서 일본의 재건을 동아시아 전략의 핵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1965년 한-일협정은 베트남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있던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전략의 축인 일본 재건 프로젝트의 완결판이었다. 한국은 미국이 바라던대로 대만과 함께 ‘불침항모’ 일본의 하부 선단으로 편입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시작된 이듬해인 1990년 일본 집권 자민당의 실력자 가네마루

[주간노동자의 힘] 호주 민주사회당의 과감한 좌파통합제안은 왜?

[주간노동자의 힘] 호주 민주사회당의 과감한 좌파통합제안은 왜?

원영수(노동자의 힘 회원) 호주 민주사회주의당(Democratic Socilaist Party, DSP)이 좌파통합을 위한 중대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난 9월2일 열린 DSP 전국위원회는 좌파통합의 기치 아래, DSP를 해소하고 좌파의 단결대오인 사회주의동맹(Socialist Alliance)으로 조직적 통합을 결의하였다. DSP는 호주공산당(CPA) 및 국제사회주의(ISO)와 더불어, 호주의 계급적 좌파를 대표하는 중요한 조직이다. 특히 국제연대사업에 있어 인도네시아 반독재투쟁과 동티모르 독립투쟁에 대한 연대와 지원투쟁에서 DSP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지난 1998년 스코틀랜드에서 좌파통합의 선구적 사례로 기록되는 스코틀랜드 사회당(SSP)의 출범은 영국의 계급적 좌파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동맹(Socialist Alliance, SA)이라는 연대의 틀을 창출하도록 자극하였다. 영연방의 일원인 호주도 이 영향을 받아, 계급적 좌파세력이 결집한 사회주의 동맹(Socialist Alliance)이 출범하였다. 1998년 항만노조파업, 2000년 멜버른 세계경제포럼 봉쇄투쟁과 2001년 메이데이 투쟁, 2002년 난민투쟁 등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대중투쟁이 성장하면서, 계급적 좌파세력의 정치적 발전의 모색과정에서, DSP가 좌파통합의 기치를 내건 과감한 제안을 제출하였다. DSP 제안의 핵심은 좌파통합의 대의를 위해 향후의 조직과 투쟁에 있어 DSP의 명의가 아닌 SA의 이름으로 조직사업을 전개하겠다는 결의이다. 이는 DSP의 전국사무국과 지부의 물적 자원과 기관지 <주간녹색좌파>(Green Left Weekly), 즉

이지스사업의혹, 감사원이 나서라

이지스사업의혹, 감사원이 나서라

국방부, 국회예산 무시한 채 이지스 3척 일방적 계약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세계의 사회주의자(16)]”모든 권력은 모세혈관처럼 미시적으로 뻗어있다”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세계의 사회주의자(16)]”모든 권력은 모세혈관처럼 미시적으로 뻗어있다”

미셸 푸코│한때 공산당...실천하는 지식인의 전형

[문화사회] [평화운동의 전망①] 왜 오키나와에는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

[문화사회] [평화운동의 전망①] 왜 오키나와에는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

[문화사회 편집자주] <문화사회>에서는 일본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과 반미운동/반기지운동과 환경운동의 결합으로서의 평화운동에 관한 정유진(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장)씨의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4회에 걸쳐 연재할 생각입니다. 6개월간 오키나와 평화운동가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작성한 이번 글의 연재가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을 살펴보는 것을 넘어 반미/반기지운동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당대비평>에 실렸던 글입니다. 1. ‘누치도 타카라'(命こそ ) – 생명이야말로 보물! 2. 오키나와에는 왜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 3. 연대 4. 오키나와와 한국의 ‘전쟁과 평화’ 5. 인간의 안전보장과 일상의 저항 6. 군사 기지 건설로 경제 진흥? 7. 소녀와 매춘여성의 인권 8. 고통에 대한 감수성 9. 다시 생각하며 ======================================================= 왜 오키나와에는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1) 폭력은 새로운 폭력을 승인함과 동시에 폭력의 흔적과 현재의 폭력의 존재를 부인한다. 따라서 평화를 만든다는 것은 수없이 중복된 부인의 구도를 하나하나 주의 깊고 신중히 문제화 해 나아가는 작업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폭력의 흔적은 다시금 편집되며 오늘의 폭력은 현재화될 것이다. 그리고 폭력에 의해 구성된 시간과 공간이 용해될 때, 이 세계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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