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시댁에 갔다가 올라오는 기차 안이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몇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다짜고짜 “오늘 저녁 늦게라도 집에 와”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옆에 있던 아빠에게 전화기를 넘긴다. 아빠의 목소리는 상기 돼 있었다. 축하 파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새 가족이 생긴다고 했다. 새언니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유물론적으로 사고하는 2차 여성운동의 선각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 재생산노동을 1970~80년대 마르크스주의와 씨름하며 이론적으로 파악했고 성별 간 불평등한 분배에 분노했다. 그들은 가사노동이 자본가치 증식과정에 필수적이며 이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체계적인 요소를 구성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것들. 가난하다고 칙칙하고 아픈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가난의 색깔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국가권력이구나. 형제복지원에 있던 사람들도 국가의 부랑인 수용 지침이 없었다면 이렇게 자유롭고 자립적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
오늘날 20대 남성에게 성차별이란 가해 사실보다는 피해 사실로 상상되곤 한다. 남아선호사상을 모르고 성장해온 유년기, (동년배 여성들에 비해) 학력수준이 달려 별다른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청소년기. 실제로 아들이 남녀공학에 진학할 것 같으면 내신 성적이 우려돼 어떻게든 남자 학교에 집어넣으려는 게 요즘 세상 아니던가.
인공지능 음성비서가 인간을 완벽하게 흉내 내고 마치 인간인 것처럼 이런저런 추임새까지 넣도록 설계한 것에는 상당한 윤리적인 문제가 따른다. 인간 말투를 흉내 내는 인공지능에 환호성을 지르는 이면에는 기술이 얼마나 인간 자신을 경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가에 대한 반성이 들어있지 않다.
이번 발표된 서울시 ‘거리 가게 가이드라인’은 이미 2007년 2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핵심공약인 ‘디자인 서울 정책’에 따른 ‘노점상종합관리대책’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당시에도 서울시는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 단속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다. 성폭력 피해자가 거부하는데도 계속해서 조사받을 것을 강요하고, 그것을 거부하자 가해자가 직접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여기에 항의하는 피해자를 조직이 계속 괴롭힌 것이다.
낙태죄의 역사는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생명과 섹슈얼리티 통제의 역사다.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은 전쟁이나 기근 등으로 인해 노동력이 필요할 때는 강화됐다가 다시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여성의 노동력과 산아제한이 필요해졌을 때는 완화되는 방식으로 유지돼 왔다. 이러한 통제 방식 속에서 ‘노동하기 적절한 몸’이 선별되어 왔음은 물론이다.
화합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마틴과 증오와 폭력을 이야기하는 맬컴이라는 이미지는 오랫동안 두 사람의 대표상으로 기억됐다. 두 사람이 미국 흑인운동의 두 조류인 통합주의와 분리주의를 대표한 인물이며, 서로의 견해를 비난하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 이미지로만 둘을 기억한다면 이들의 사상을 심각하게 오해할 수 있다. 둘 모두 말년에는 기존 견해를 수정하며 새로운 주장들을 내놓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식하며 협력하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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