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마을 주민협의회 대표 ‘배정학’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성곽 아래 작은 동네에 따뜻한 햇볕이 드는 날이면, 동네 주민들과 평상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던 그가 유명을 달리한 겁니다.
‘양성평등은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의미하지만, 성평등은 수십 개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용인하는 문제’라는 이들의 프레임은, ‘시대가 변했으니 남녀평등은 인정하겠지만 성소수자까지 인정하기는 좀 껄끄러운’ 대중에게 그럴듯한 명분을 제공해 준다.
“죄송합니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위원장이 고(故) 우동민 열사 묘역과 유족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7년 만의 사과다. 이성호 인권위원장은 2일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고 우동민 활동가 7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2010년 12월 당시 고 우동민 활동가 등에게 행한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진짜 단역배우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내 경우는 경쟁 상대가 없는 종신 배우라는 것이었다. 그걸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삼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러니 실타래는 내가, 끊어야 했다.
지난 2년 사이 홈리스 10명 중 6명 이상은 공공장소에서 최소 1회 이상 퇴거당한 적이 있었다. 10명 중 약 7명은 같은 기간 공공장소 운영시간 중 출입을 제지당하기도 했다. 10명 3명 이상은 벤치나 급수대 같은 공공시설물 이용마저 제지당했다.
망중립성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망사업자(유무선 인터넷서비스제공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자기 계열사의 서비스는 더 빨리 전송하는 것과 같이 차별함으로써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혹은 자신에게 추가적인 비용을 내는 업체의 콘텐츠나 서비스를 더 빠르게 전송해줄 수 있다.
트랜스젠더들이, 그리고 그 친구들이 모이는 곳이 장례식장, 혹은 TDOR 추모 행사장이라는 것은 쓸쓸한 사실이다. 트랜스젠더의 삶이 죽음에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단순한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추모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삶을 산다는 것, 자긍심이나 행복 이전에 애도가 존재의 중심에 온다는 것 ― 이것은 삶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친함의 표현이나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데, 상대는 없고 자신만 있는 일방적 태도. 그리고 상대의 거부 의사에도 반복할 수 있는 권력. 이 사회가 구성해온 남성성의 일부이고, 성폭력의 토대가 되는 전형적 태도들이다.
우리의 삶은, 혹은 운동은 바깥을 향해야 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든 그 바깥에도 고통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고통이 또 다른 폭력과 차별과 착취를 용인해주는 자유이용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숙의(deliberation)란 말은 심의, 토의, 토론을 뜻하는 번역어로, 숙의민주주의는 토론과정을 거쳐 합의에 도달하는 민주적 절차를 뜻한다. 토론하는 것도 좋은 것이고 민주주의도 좋은 것이니 ‘토론하는 민주주의’란 얼마나 좋은 것일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
참세상은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이메일을 통해 받고 있습니다.
독자제보 E-Mailnewscham@gmail.com
이메일
비밀번호
이메일로 회원가입비밀번호 찾기
가입하면 기사에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입력한 이메일로 인증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닉네임 (댓글에 표시됩니다)
비밀번호 (8자 이상)
웹사이트
이미 가입했다면 로그인
가입한 이메일을 입력하면 비밀번호 재설정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로그인으로 돌아가기
새 비밀번호 (8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