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차이로 두 개의 재단이 나란히 설립됐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9월부터 청년희망재단 기금 모금의 군불을 지폈고, 재벌 총수들의 기부금 출연 시기도 미르재단보다 빨랐다. 시기적으로 놓고 봤을 때, 박 대통령이 직접 기업 회장과 독대해 모금을 요청했다면, ‘미르재단’ 보다 ‘청년희망재단’일 가능성이 더 높다.
공익재단 ‘청년희망재단’이 차은택 감독이 추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정책을 핵심적으로 실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희망재단은 재벌 회장 등의 사비로 1400억이 넘는 기금을 조성해 제2의 ‘미르재단’ 논란을 일으킨 곳이다. 대외적으로 내세운 재단 설립 취지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이다. 하지만 실상은 차은택 감독이 추진한 ‘문화융성’ 사업에 긴밀하게 공조하며 최순실-차은택 정국의 ‘행동대원’ 역할을 맡고 있었다.
차가운 비바람이 부는 입동에도 박근혜 퇴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수백 명의 시민은 7일 오후 7시 서울 종로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우의를 입은 채 다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이제 우리 힘이 얼마나 강한지도 확인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 힘을 확인하는 첫걸음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을 지원한 기업은 과연 어쩔 수 없이 강제모금에 동참한 것일까. 주판알을 굴리지 않고 권력에 굴종해 빼앗긴 돈일까. 이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챙긴 이익은 없었던 걸까. 이들은 박근혜 정부하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워커스가 짚어봤다.
박근혜 퇴진을 내건 거리 집회의 규모는 이미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난달 29일 열린 첫 번째 박근혜 퇴진, 하야 촛불집회에는 연인원 5만 명의 시민이 청계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애초 주최 측은 최소 5,000명에서 최대 1만 명으로 집회 규모를 예상했다. 예상치 못한 여론이 들끓으면서 향후 촛불집회와 민중총궐기로 이어지는 대규모 시민 행동도 탄력을 받게 됐다.
2008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였다. 명박산성이라 불린 경찰 차벽에 누군가 걸어놓은 밧줄을 열심히 끌고, 차벽을 넘기 위해 스티로폼 박스를 층층이 쌓아 올리는 것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까?
“우리는 혁명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과 제도, 의식, 모든 것을 혁명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분에게 무릎 꿇을 수 있도록 행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도올 김용옥 교수는 오후 8시 반 ‘박근혜 퇴진 2차 범국민행동’ 무대에서 20만 촛불 앞에 이렇게 말했다.
10만의 분노가 청와대 앞을 드리웠다. 촛불은 광화문 광장부터 종로까지 메웠다. 국민은 더 기다리지 않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쳤다.
경찰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가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사건 발생 358일, 사망 41일 만이다.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식이 진행됐고, 9시부터는 명동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하는 장례미사가 열렸다. 오후 2시부터는 광화문 광장에서 영결식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1만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참세상은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이메일을 통해 받고 있습니다.
독자제보 E-Mailnewscham@gmail.com
이메일
비밀번호
이메일로 회원가입비밀번호 찾기
가입하면 기사에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입력한 이메일로 인증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닉네임 (댓글에 표시됩니다)
비밀번호 (8자 이상)
웹사이트
이미 가입했다면 로그인
가입한 이메일을 입력하면 비밀번호 재설정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로그인으로 돌아가기
새 비밀번호 (8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