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간노동자협회

[격주간노동자협회] 불안한 공조, 위기에 빠진 교육

[격주간노동자협회] 불안한 공조, 위기에 빠진 교육

위기에 빠진 교육 한국 공교육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위기에 대한 진단도 다양하며, 그만큼 처방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사교육비, 교육 불평등, 학력 서열화, 살인적인 입시경쟁,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사회, 교육의 공공성 상실 등 우리 교육의 산적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문제 해결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교육의 역사를 잠깐만 거슬러 가보면 한국 교육 문제의 핵심은 국가주의였다. 교육에 관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공적인 의미가 아니라 국가를 가장한 부도덕한 정권의 이데올로기 전파 수단으로 교육이 이용당했던 국가주의 아래에서 학교는 민주주의라거나 민주 사회의 시민을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목숨도 바쳐야한다는 파시즘의 병영이었다. 이런 교육현실을 폭로하고 학교 교육에서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에 전교조가 기여한 바는 작지 않다. 학교장에 의한 의사 결정의 독점과 그의 대리인으로서 교사의 역할을 그만두고, 학교를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의 교육 공동체로 세워 나가는 과정이 바로 전교조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 얻은 소중한 성과가 교육의 주체론이다. 그런데 세계화 또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우리 주변에 횡행하는 그 때부터 교육의 주체라는 말이 힘을 잃어가고

[격주간노동자협회] 출입증과 소지품 검사

[격주간노동자협회] 출입증과 소지품 검사

전에 다니던 공장이 ‘드디어’ 망했다. 저임금과 엄청난 노동착취로 근근히 유지해오던 공장이었지만, 그렇게 망해버릴 줄이야! 사장놈은 우리들에게는 딱 한달치 기본급과 퇴직금만 던져주고, 자신은 빼돌린 돈으로 요즘 한창 부동산에 열을 올린다는 소문이다. 사장놈이야 순수익이 줄고 있는데 부동산이 쏠쏠하다 싶고, 애들 낌새가 수상하니 귀찮은 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 너무나 자본가적인 한 ‘개인’의 판단에 비해 우리들 ‘모두’의 삶은 너무 고달프다. 이주노동자들과 특례병, 그리고 몇몇 기술자들만 인수한 공장을 따라 멀리 광주로 떠나고, 아주머니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는 중이다. 나머지 몇 명은 우리들이 하청을 주던 공장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어려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실과 변변한 투쟁하나 조직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한없이 연민했다. 그래도 나는 필사적으로 구직에 매달렸고, 눈에 딱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3주 단기알바, 하루 일당 5만원 선, **공장내 근무’. 다음날 나는 야간을 마치고 면접을 보고 합격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첫날부터 나를 반기는 것은 그 큰 공장 정문의 근엄한 수위, 아니 경비 ‘아저씨’들이었다. 파견업체 사장을 정문 면회실에서 만나서, 소위 말하는 ‘정문-통과의례’절차를 밟는 과정은 그야말로 짜증의 연속이다.

[격주간노동자협회] 2005년 상반기 주요투쟁의 현황과 투쟁과제

[격주간노동자협회] 2005년 상반기 주요투쟁의 현황과 투쟁과제

노사정 협상의 교란과 심화되는 민주노총 지도력의 위기 비정규직 개정안의 4월 처리는 일단 유보되었지만, 정부는 6월 처리 입장을 계속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 처리가 6월이 될지 9월이 될지는 미지수인 상황에서도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함께 노사정교섭을 구성해서 논의를 확대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민주노총 5월 9일 성명서). 한편 노동부는 논의해도 합의가능성이 낮다며 재협상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피력하는 등 노동운동 진영 내부를 교란하는 고도의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 열우당 이목희, 한국노동연구원 등은 10년 만에 재개된 노사정교섭 자체가 성과라는 평가를 통해 개량적 노동운동의 안착을 유도하고 있다. 이들은 이후에도 노사정교섭이 지속되어야 할 뿐 아니라, 특히 노사정간의 안정적인 논의틀의 확보, 비정규법안에 갇히지 않는 의제의 확대 등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런 투쟁국면에서도 구체적인 투쟁계획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고, 또 투쟁의 의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불파대책기구는 실질적 운영이 되지 못하고, 미조직특위의 경우도 활동이 부진하다. 하이닉스 투쟁과 플랜트 투쟁은 지역본부에게 전적으로 내맡긴 상태에서, 단지 최저임금과 제도개선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대응기조를 제출하는 등 현시기 노동자투쟁과 완전히 겉돌고 있다. 가히 노동운동의 위기를 몸으로

[격주간노동자협회] 비정규법안 관련 노사정협상 평가와 전망

[격주간노동자협회] 비정규법안 관련 노사정협상 평가와 전망

비정규법안 관련 국회 노사정 협상 경과 4.6 노사정대표자회의 재가동과 위태로운 협상테이블 2004년 3월 중앙위원회에서 노사정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뒤 민주노총은 이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5년 3월 15일, 대의원대회 무산으로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의원대회 의결을 유보하고, 노사정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첫째,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정부의 비정규개악안을 국회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노사정 교섭이 필요하다. 둘째, 이를 통해 4월 임시국회에서의 강행처리를 저지하고 전조직적 총파업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다. 셋째, 협상과정에서 민주노총 요구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홍보하여 조합원의 관심을 높이고, 국민적 명분을 획득한다.” 이런 근거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재가동하고 비정규법안 협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4월 5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비정규법안을 국회 밖으로 끌어낸다는 것과는 달리 국회 환노위에서의 노사정협상이 결정되었다. 4월 임시국회 처리유보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했으나, 4월 8일 국회 환노위 여당간사가 주관하는 노사정 실무회의에서 4.13, 4.16, 4.20 세 차례의 협상일정이 결정되었다. 정부여당은 4월 25일경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를 비롯한 그들의 국회일정 내에서 협상일정을 잡아가고 있었다. 노사정 협상이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는 데 대해

[격주간노동자협회] 우리의 투쟁목표는 ‘인권위원회 의견 수용’이 아니라, ‘개악안 자체의 폐기’이어야 한다

[격주간노동자협회] 우리의 투쟁목표는 ‘인권위원회 의견 수용’이 아니라, ‘개악안 자체의 폐기’이어야 한다

지난 4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기간제 사유제한 및 기간만료 후 정규직화, 동일노동 동일임금, 파견사용업체 사용자책임 인정 등을 골자로 한 의견서를 발표했다. 이에 정부·여당 및 보수언론은 미친듯한 공세가 시작되었다. “인권위의 의견제시는 균형잃은 정치적 행위”, “비전문가들의 월권행위”, “단세포적 기준”(김대환 노동부장관), “황당무계하다, 국회는 국회의 길을 가겠다”(이목희 열우당 의원), “생뚱맞다”, “노동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이경제 환노위 위원장) 등. 인권위원회에서 제출한 ‘정부의 비정규법안에 대한 의견’은 외견상 정부안에 대한 비판으로 보였고, 노동운동진영에서는 적지 않은 교란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4월 18일 민주노총을 비롯한 358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인권위원회 의견을 최저기준으로 하여 정부입법안의 수정안을 만들자”는 요구를 하였고, 57개 비정규노동 대표자 연명으로 “인권위 의견수용, 4월국회 입법화”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인권위원회의 의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자, 오히려 정권과 자본의 노동법 개악을 도와줄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인권위원회 의견의 핵심은 비정규직 법안 자체의 ‘폐기’ 비록 의견 수준으로 표명되었지만, 인권위원회 안의 핵심은 “비정규직은 예외적인 경우에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을 일반적인 고용형태로 만들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인권위 의견서는 파견제 법안에 대해서는 ‘현행 그대로 두라’고 제시했다.

[격주간노동자협회] 사회적 타협체제를 향한 민주노총의 질주

[격주간노동자협회] 사회적 타협체제를 향한 민주노총의 질주

세 차례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사회적 교섭안’에 대한 의견차로 인해 무산된 이후,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 35차 대의원대회가 무산된 이틀 뒤에 열린 민주노총 9차 중집회의에서 ‘사회적 교섭’에 대해 의장의 직권추진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수호 위원장은 ‘그저 위원장의 책임 하에 하려는 것을 언론이 앞서서 보도한 것’이라며 직권추진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나 3월 21일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등은 한국노총을 방문해 이용득 위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가동하여 우선 비정규문제를 논의할 것과 한국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 소집에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노총은 이에 응했고 결국 4월 5일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재개되었다. 드디어 노사정 대화 속으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김대환 노동부 장관, 김금수 노사정 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박용성 대한상의 의장 등 노사정 대표자 6인이 모여 사회적 대화를 활성 및 정착 기존 안건인 노사정위 개편 방안과 노사관계법 및 재도 선진화 방안 우선 논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노사정대표자가 주체가 돼 국회와 조율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에

[격주간노동자협회]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 찾기

[격주간노동자협회]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 찾기

봄의 상징인 개나리가 피어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눈을 자극하는 요즘, 그 개나리를 한가롭게 쳐다볼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바삐 거리를 지나치는 나를 발견하곤 할 때 아직도 낯설어 진다. 요 몇 년 사이 거리에서 예전에 비해 장애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중증장애인들을 말이다. 중증자애인의 자립생활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아직 시스템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한다는 것은 모험과도 같다. 자립생활에 대해 중증장애인이 단순히 주변의 동정과 시혜의 도움을 받으며 홀로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2002년 10월 나는 우연하게 정립회관을 알고, 자립생활이념을 알게 되었다. 어릴적부터 뇌성마비1급 중증장애를 앓은 나는 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남들 앞에선 말도 제대로 못했다. 집에서 조용하게 TV와 음악을 듣는 취미가 고작인 장애아이였다. 어릴적 내 또래 애들은 “공부 좀 해라”라는 말을 제일 듣기 싫어했겠지만, 나는 그 말을 제일 듣고 싶어했다. 어느 누가 내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내가 경험한 것은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월 1회의 나들이

[격주간노동자협회] 노동운동에서 여성주의 전략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격주간노동자협회] 노동운동에서 여성주의 전략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지난해 기존 노동운동이 포괄하지 못했던 여성적인 쟁점과 조직화 방식을 고민하면서 설립된 전국여성노조가 창립된 지 5년을 맞이했다. 이들은 5년 전 4백 명으로 시작해 이제 그 열 배가 넘는 5천명이 되었다며, 대공장 50만보다 훨씬 값진 성과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들은 특수고용과 최저임금, 학교비정규직 문제 등을 내걸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제기하는데 큰 역할을 하면서 조직을 넓혀온 것이다. 여성독자노조는 이렇듯 5년 전 자신의 독자적인 운동 방향을 설정하고, 힘들지만 의미 있는 행군을 하고 있다. 서울여성노조가 내부 민주주의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었던 데 반해 전국여성노조의 양적인 성장은 일단 안도감으로 다가온다. 이 글에서는 여성독자노조의 자기조직화 실천을 존중하면서도 그 테두리를 넘어서는 전체 노동운동의 과제 측면에서 노동운동에서 여성주의 전략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제안해보려 한다. ‘가족임금’, ‘젠더 이데올로기’ 효과부터 극복해야 노동운동이 이른바 ‘여성주의 시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자본주의 역사가 ‘가족임금’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가부장제와 공명한 남성노동자와 자본가의 공모가 만들어놓은 역사라는 점은 전혀 새롭지도 않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표준생계비는 여전히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을 따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민주노총조차 ‘공·사 영역분리’와 ‘성별분업’

[격주간노동자협회] 국제 여성의 날과 여성운동

[격주간노동자협회] 국제 여성의 날과 여성운동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여성이 이중의 착취에 시달리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고, 19세기 중후반 여성참정권 요구투쟁위주의 1세대 여성운동과는 별도로 산업혁명의 산물로서 노동자계급 여성들의 투쟁은 지속되었다. 오늘날 3.8 국제여성의 날이 저임금 단순노동에 종사했던 여성 노동자들과 좌파운동의 지난한 투쟁의 성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909년 미국 사회당의 선언에 따라, 2월 28일 최초로 전국여성의 날이 미국 전역에서 선포되었으며, 1913년까지 2월 마지막 일요일에 행사를 가졌다. 1910년 제2인터내셔널의 후언 아래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에서 여성의 권리와 보통선거권 쟁취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독일의 여성사회주의자 클라라 체트킨을 중심으로 국제여성의 날을 제안하였고, 회의에 참석한 17개국 100여명의 여성 대표단은 이 제안을 전폭적인 찬성을 표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날짜를 지정하지는 않았다. 1911년 코펜하겐 회의의 결정에 따라, 국제여성의 날이 3월 19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및 스위스에서 최초로 기념되었다. 약 100만명이 집회와 행진에 참여하였다. 여성들은 투표권과 피선거권 외에도 일할 권리와 직업훈련 권리, 차별철폐 등을 요구하였다. 1주일 후인 3월 25일 미국 뉴욕의 트라이앵글 파이어사에서 발생한 비극적 화재사고로 이탈리아와 유태인 여성 섬유노동자 140여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에서 노동법 개정움직임이

[격주간노동자협회] 여성 노동자 투쟁의 역사

[격주간노동자협회] 여성 노동자 투쟁의 역사

1. 여성 노동자 투쟁의 역사 찾기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따로 살펴보는 것은 남성 중심적인 노동운동사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역할이나 주체적인 모습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운동사로 보아온 이전의 노동운동사에서 여성들이 주도한 투쟁조차 여성노동자는 드러나지 않고, 주변적인 인물로 취급되거나, 남성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여성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받는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은 어떻게 발현되어 왔는가를 돌아보기 위한 것이다. 여성노동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공업화로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과 맥을 같이 해왔다. 그러나 분단과 전쟁으로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침체와 단절을 경험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여성노동운동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주도했지만, 여성노동자들이 이룩한 업적에 대한 인정과 평가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대기업 남성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이 주도하면서, 중소규모 경공업 분야의 여성노동운동에 덜 주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동안 ‘잊혀진’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되살려 보기 위한 시도이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투쟁과 조직, 사업장 안과 밖의 여러 활동 가운데 ‘아래로부터의 여성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2. 일제 식민지 시기 여성노동자운동 조선 후기를 거쳐 일제 식민지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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