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불타오르는 사학민주화투쟁(3)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불타오르는 사학민주화투쟁(3)

썩은 곳을 알려 도려내고 빛과 맑은 공기가 통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병이 골수에 들어 많은 사람들의 불행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불타오르는 사학민주화 투쟁(2)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불타오르는 사학민주화 투쟁(2)

87년 12월 대선 직전 문교부장관은 전국을 돌며 ‘교원과의 대화’를 조직, ‘교장 승용차 제공’ ‘교감 업무추진비 8만원 지급’ ‘원로수당 3만원 신설’ ‘강원도 교원 사택 77동 신축’ 등 선심 공약을 남발했다.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불타오르는 사학 민주화 투쟁(1)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불타오르는 사학 민주화 투쟁(1)

저녁 9시 50분 전투경찰 200여 명 철갑차 2대 군용차 1대 짚차 1대가 학교 둘레를 에워싸고 있었고 전경 150여 명이 학교로 쳐들어왔다.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25) 들불처럼 일어난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25) 들불처럼 일어난

87년 하반기 노동자대투쟁과 16년만의 직선제 대선이 정세의 중심이었을 때, 교사 시인 안도현(당시 이리중)은 <평교사를 위한 시>를 썼다.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24) 교직사회의 지각변동, 교련 탈퇴 운동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24) 교직사회의 지각변동, 교련 탈퇴 운동

전교협의 탄생은 교직사회에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오랜 세월 분단체제와 개발독재 이데올로기 주입 장치로 기능했던 학교교육의 모순이 교사들의 도전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23) 87년 하반기 해직교사 복직투쟁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23) 87년 하반기 해직교사 복직투쟁

민주화운동 관련 해직교사들이 ‘특별 신규채용’ 형식으로 복직된 후 13년째인 지금까지 호봉과 경력조차 회복되지 않고 있다.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22) 창간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22) 창간

지금 보고 있는 「교육희망」이 제490호다. 이 지령은 1987년 10월 1일 창간한 「전국교사신문」에서부터 헤아린 것이다.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86년 교육민주화운동 교사들의 수난(3)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86년 교육민주화운동 교사들의 수난(3)

윤영규 Y교협 회장의 구속과 이순덕의 해임으로 시작된 86년 9월은 유상덕 민교협 사무국장의 옥중 단식투쟁 소식으로 더욱 우울하게 다가왔다.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86년 교육민주화운동 교사들의 수난(2)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86년 교육민주화운동 교사들의 수난(2)

그 해 9월 월간 『말』특집호는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보도지침은 민주화운동과 재야 정치인에 집중되었다. 교육부문도 빠지지 않았다.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86년 교육민주화운동 교사들의 수난(1)

[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86년 교육민주화운동 교사들의 수난(1)

5·3인천항쟁으로 한껏 고양된 민주화 투쟁 열기는 6월에 불거진 이른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으로 여름 내내 더욱 달아올랐다. 5·10교육민주화선언 이후 민주교육실천협의회가 결성되고(5월 15일) 교사들의 민주화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5공 내란정권은 교육부에 교사운동 담당 부서를 비밀리에 설치하고 안기부에도 교사운동 담당관을 배치하는 등 교사운동의 고양을 막기 위한 대책을 본격 가동한다. 7월 2일 서울시경은 서울 모든 중·고교를 불법 수색하고 학교 주변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학교마다 감시가 강화되는 가운데 ‘Y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교장 교감의 일지에 기록된다. 전국적으로 Y교사들에 대한 교협 탈퇴 압박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런 분위기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도덕교사 조용진(신월중) 해임 사건이다. 그는 7월 9일 「진실이 왜곡되는 교육현장에 대한 나의 입장」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여 부당한 탄압을 생생히 폭로했다. 교장 교감은 수업내용, 시험문제 등 일체를 문제 삼았다. 4·19에 강명희 학생의 시를 읽은 것, 시사문제를 다룬 것, 자유좌석제, 토론식 대화식 수업, 반장의 구령 인사 폐지, 교사의 용의복장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세인들의 입에 가장 널리 오르내린 것은 시험문제에 등장한 ‘도둑을 잡아가는 경찰관과 가짜 경찰관을 잡아가는 사복형사’ 그림(사진 참조)이었다. 이것은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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