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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빵] 문화도시 서울 “날씨 흐림”

[문화빵] 문화도시 서울 “날씨 흐림”

몇 번의 큰 공사와 문화재 파괴, 시민사회와의 단절과 불도저 행정의 4년이 끝나가고 있다. 청계천 복원과정에서의 주변고도제한 해제와 관련한 비리사건, 서울문화재단 설립과정에서의 파행과 비민주적인 행정, 시청앞 광장 조성 과정과 이후 광장 사용과 관련한 서울시의 ‘마음대로식’ 행정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개입하려 했던 시민사회의 바람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서울시와 이명박 시장이 명명한 이른바 ‘문화도시 서울’ 프로젝트는, 그 과정부터가 문화적이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실패한 프로젝트임과 동시에 이후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되돌려야할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명박 표’ 문화도시 서울 만들기 프로젝트의 피날레는 바로 노들섬 예술센터 건립사업이다. 신년 초 이명박 시장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 확인된 노들섬 예술센터 건립사업의 경우,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가 채 나오기도 전에 부지를 매입하고 추가경정예산에 옹벽철거 예산을 슬쩍 포함시키더니 곧 옹벽철거 공사를 시작하는 등 특유의 이명박식 행정의 결정판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날이 올라가는 예술센터를 바라보며 서울시장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흐뭇할지 모르겠으나, 수천억 원의 건립 예산이 모두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하는 서울시민의 마음도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서울시 문화정책의

[문화빵] 공공미디어, 시청자는 손님?

[문화빵] 공공미디어, 시청자는 손님?

일부에선 관심도 말도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제도적 운영상의 문제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처방하는 작업은 나에게 벅찬 일이다.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감을 잡았다 하더라도 얼기설기 얽혀있는 관련 문제들을 속시원하게 일필휘지(一筆揮之)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방송법을 문제삼아야 할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운영상의 제반 문제들을 조목조목 밝혀보아야 할지, 방송사를 비난해야 할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에 대한 가시적·비가시적 검열의 손길과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방송위원회의 관료주의적 편향성을 엉얼거려야 할지. 여하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요구로 마지못해 ‘시청자 참여’라는 이름을 빌어 온갖 조건을 다 내걸면서 엉정벙정하는 것에 못마땅한 감정을 숨길 수 없지만, 이 문제들의 해결방법을 찾는 것은 참으로 벅차고 난감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 정도는 몇 자 적어볼 수 있을 것이리라. 우선 나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라는 용어 대신 시민 프로그램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시민프로그램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려는 이유는 시청자 참여라는 형식을 빌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많아 이들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고, 시민들이 직접

[문화빵] 신도시는 노다지?

[문화빵] 신도시는 노다지?

지금까지의 주택공급정책은 돈 있는 국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파트를 사면 돈을 번다’는 투기심리를 정부가 국민들에게 일정부분 조장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주택보급률자체가 낮고 열악한 정부재정과 국가경제 상황에서는 그 불가피성이 일정부분 이해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고 부동자금이 400조원이 넘는다는 현재까지 투기조장의 흔적이 들어있는 도시개발정책 즉 부동산공급정책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작금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논리는 쉬운 정리해고, 명예퇴직, 광범위한 비정규직화로 인한 고용불안 등 돈 벌기가 쉽지 않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대다수 국민들에게 몸으로 느끼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거품이 잔뜩 낀 아파트 분양가격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에게서 꿈과 희망을 앗아가고, 마치 집 사려고 살다가는 인생처럼 국민들의 삶 자체를 피폐하게 한다. 이것은 또한 문화적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대다수 국민들이 향유하는 데 제약을 주고 있다. 어려운 경제여건에서도 열심히 살고자하는 국민들에게 성실하게 살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살(買入)만한’ 집의 공급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또한 예전처럼 투기심리를 부추기는 돈 버는 수단으로서의 보유개념이 아닌 거주개념으로의 ‘살(居住)만한’ 집의 공급정책이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한국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정부

[문화빵] 인턴 권하는 사회

[문화빵] 인턴 권하는 사회

대학생들이 캠퍼스를 나서고 있다. 7-80년대의 대학생들은 짱돌을 들고 독재에 맞서기 위해 캠퍼스를 나섰지만, 오늘의 대학생들은 말쑥하게 차려입고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캠퍼스를 나서고 있다. 소위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들어가서 ‘알바비’도 안 되는 돈을 받거나, 혹은 식대 외에는 전혀 월급을 받지도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학생들이 많다. 표면적 이유는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서지만, 진정한 이유는 인턴 경력으로 그 회사 혹은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인턴’으로 들어갔다가 ‘레지던트’(resident)가 되기 위한 것이다. 사실은 ‘싼값에 임시로 쓰는 비정규노동력’이면서도 어쩐지 ‘인턴’이라는 말이 붙으면 뭔가 달라 보인다. 그래서일까. 실상에 비해 엄청나게 부풀려진 이미지 탓에 학생들이 몰리고, 잘 나가는 재벌기업의 인턴쉽에 소위 ‘3류 대학’의 학생들이 합격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생들이 기업체의 인턴쉽에 기를 쓰고 달려드는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90년대 중반 정치적으로 형식적이나마 민주화를 달성하면서 학생운동의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이후, 학생들은 마스크 대신 넥타이를, 짱돌 대신 노트북을 들고 다른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오면서 세계화도 왔고, 세계화가 오면서 청년실업도 함께 왔다. 캠퍼스에 군화발은 사라졌지만,

[문화빵] ‘현재의 민심’을 위해 입 닥치시라

[문화빵] ‘현재의 민심’을 위해 입 닥치시라

아무래도 현 대통령 노무현의 가장 큰 공은 대학교수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정상적으로 낮춰놓는 데 있나보다. 조기숙 이대 교수는 정치판에 들어서기까지는 선거이론과 지역주의 투표형태에 대한 ‘개량적’ 연구 방법을 행하는 괜찮은 정치학자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런 그녀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한 일이라고는 노무현이 던진 말에 살붙이고 뼈대 세우고 해서 ‘말을 말답게’ 만들어준 일밖에 없다. 그런 그녀의 능력은 지난 25일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내뱉은 말을 완성시켜주는 데 여실히 드러났다. 그녀는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는 발언 등등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은 21세기에 계시는데 국민들은 독재시대에 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정치학자 조기숙이 바라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구도의 타파를 위해 스스로의 권력을 연성화하면서까지 희생하고자 하는데, 국민들은 독재 시대의 강한 리더쉽에 물들어있어 ‘권력 분할’이라는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을 몰라주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나로서, 25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노무현이 하고자 했던 말은 결국 ‘지지율 29% 가지고는 못해먹겠다’는 것이 전부였다고 기억한다. 자신은 스스로를 희생해서 갖가지 정치적 시도를 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자신의 뜻을 몰라주니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푸념이랄까. 사실 그런 푸념이야

[문화빵] 의식적 선택! 다르게 사는 삶

[문화빵] 의식적 선택! 다르게 사는 삶

다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무엇으로부터, 무엇과는 다른 삶이라는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삶의 기본적 조건과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평소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삶의 조건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인생을 풀어가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 무엇이든지 간에 다르게 사는 삶에 대한 지향은 현재적 삶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언제나 꾸는 꿈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꿈으로, 한갓 이루어 질수 없는 유토피아의 모습만은 아니다. 분명 ‘다르게 사는 삶’을 선택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삶의 방식은 현대사회에서 허덕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단지 그러한 삶을 선택한 그들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내부를 돌아볼때 언제나 발견되어지는 삶의 방식이다. 단지 우리는 아직 그러한 삶에 대해서 ‘의식적인 선택’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태예술공동체 마을의 실험 베를린에서 동남쪽으로 10km거리에 있는 캐셀베르그는 ‘다르게 사는 삶’을 실험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부지는 50만평, 대부분 숲이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군사기지였다가 동베를린 시절 비밀경찰서가 되었고 동서냉전이 무너지면서 생태운동가들과 예술가들이 숲속에 위치한 몇 개의

[문화빵] 사회적 공론장으로서의 영화제

[문화빵] 사회적 공론장으로서의 영화제

1. 최근 한국영화의 빠른 성장에 힘입어 영화에 대한 관심도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배우나 영화감독 같은 이들이 일반 시민들과 뭔가 다르다는데 초점을 맞춘 통속적인 방향에 치우쳐있거나, 근엄한 도덕주의자들이 가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규범적 정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맞추어져 있거나, 관객 수의 기록갱신을 통해 특수한 이해집단들의 성공사례를 전형화하는데 주로 맞추어져 있다. 즉 영화의 사회적 연결망이 더욱 확대되고 촘촘해지면서 증진되는 관심이라기보다는, 배제와 축출에 기초한 분리주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렇게 배타적으로 조장된 관심이 영화를 통한 복잡한 사회문화적·윤리적·정치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생산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적 대화와 교류를 왜곡·축소시키고 있다. 사회적 이슈들이 주된 동력이 되는 진보적인 영화작품 생산에서조차 감독이나 배우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작품의 주제가 빛을 얻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영화제작이 추진력이나 비전을 갖춘 개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영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주체로서의 관객도 헛된 수사에 머물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적 잠재력을 지닌 영화의 독특한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수용하고 해석하는 매개과정, 즉 영화가 이루어지는 기술적·제도적·사회적 맥락에는

[문화빵] 여성, 군대에 흡수되다

[문화빵] 여성, 군대에 흡수되다

사실 여성 징병의 문제는 서구(주로 유럽나라들)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그리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거나 깊이 논의되고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금까지 여성 징병 주장에 대한 논리는 주로 군가산점제 등의 논쟁에서 ‘나라에 충성한 후 평등을 외쳐라!’ 류의 저급하고 감정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3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특집기사, 최근 국회안보포럼의 토론회 ‘안보! 남성만의 영역인가?’ 등을 통해 (아직 공론화라고 하기까지는 뭐하지만) 이성적인 문제제기들이 여기저기서 주장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 스스로도 아직 이렇다할 입장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밝히기는 뭐하지만,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입장에서 세계적인 병역거부 운동의 역사를 볼 때 (한국도 꼭 그런 전철을 밟으라는 법은 없지만) 여성과 군대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논의돼 오는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여 진다. 사실상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가 많이 없어진 이후 서구의 군대는 신병모집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화씨 9·11>이라는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는 장면처럼 국가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소수 인종 남성들이나 혹은 여성들에게 신병모집을 집중하면서 그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었다. 시민권이 절실했던 소수인종, 직업을 찾고

[문화빵] 라이브 공연을 보러갔다

[문화빵] 라이브 공연을 보러갔다

기자의 압박. 지난 5일 금요일, 라이브클럽페스트가 열린 홍대앞 클럽의 풍경은 그랬다. 관객과 밴드를 합쳐야 서른 명 남짓한 작은 공연장에 카메라를 든 사람만 다섯명이 넘었다. 그 낯선 풍경은 방송사고 이후 홍대 앞으로 집중된 세간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본격적인 공연 시작을 앞두고 클럽 ‘빵’ 앞에서 이지선 라이브음악문화발전협회(이하 라음협) 사무국장을 만났다. 피곤한 목소리와 표정에서 ‘라이브 클럽 십년의 최대 위기’라는 이번 일로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에게 ‘블랙리스트 작성하겠다’,’불법 영업 단속하겠다’며 연일 쏟아지는 보도와 그 대응에 관해 물었다. 라이브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요 “보셨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요.” 평소 모습대로 보여주고, ‘손님들’ 친절하게 대하면 그 뿐이란다. “아닌 걸 증명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우문에 현답이다. 그래도 화나거나 속상하지는 않냐는 질문에 화날 것도 속상할 것도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다만 모르기 때문에 오해한 것일 뿐.” 이번 기회로 홍대 앞 클럽들에 대해 좀더 많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고. 공연장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 지금처럼 작은 공간에서 2인 이상 공연이 합법화된 것은 올해로 이제 겨우

[문화빵] 삼성, 또 하나의 국가

[문화빵] 삼성, 또 하나의 국가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이라는 인류학자 겸 사회학자가 있다. 캐나다 출신인 고프만은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무대에 비유해 설명한다. 우리네 모든 살림살이는 무대 위와 무대 뒤를 지닌다 한다. 그리고 그 둘은 은밀한 관계가 있다 한다. 무대 위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는 무대 뒤에서 각본을 수십 차례 반복해서 읽고, 실수 연발을 거듭한 끝에 마련된 것들이다. 그리고 수많은 스탭들의 의상, 소품, 조명, 음향, 세트 준비가 무대 뒤에서 준비되었기에 무대 위의 화려한 모습이 드러날 수가 있다. 무대 위란 항상 무대 뒤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펼치는 모습들 역시 이면을 가진 무대 위 연기에 해당한다. 살림살이를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기만큼이나 무대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일상적 관습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프만이 일러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고프만 만큼이나 지혜롭게 무대 위와 뒤를 동시에 살피는 일에 익숙해 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 사람의 무대 위와 뒤의 이야기들을 종합해 판단하는 영리함을 발휘한다. 그런데 유독 먹고사는 일에 대해서는 무대 뒤를 까맣게 잊어버림을 반복한다. 유독 먹고 사는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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