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빵

[문화빵] 한국 문화권의 사회적 실천과 문화운동의 미래

[문화빵] 한국 문화권의 사회적 실천과 문화운동의 미래

지난 5월 28일 건국대에서는“맑스, 왜 희망인가?”라는 주제로 제2회 맑스 코뮤날레가 열렸다. ‘코뮤날레’는 코뮤니즘과 비엔날레의 합성어로 맑스 코뮤날레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결하는 이론적/실천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2년마다 치러지는 학술문화제이다. 이번 맑스 코뮤날레에서는 총 3부로 이루어진 전체주제 발표와 9개 분과로 구성된 주관단체별 발표 및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행사 둘째 날 계간 계간 <문화과학>은 ‘우리시대 좌파 문화운동은 가능한가:새로운 전망’이라는 주제로 발표, 새로운 문화운동과 맑스의 현재성에 대해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발표된 글을 요약하여 싣는다. [편집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권, 노동권, 정치권, 교육권, 환경권, 복지권….. 한국사회가 점차로 민주화되면서 다양한 영역에 걸쳐 시민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문화적 권리는 아직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 노동권, 인권, 여성권, 환경권, (참여)정치권에 대한 운동들은 역사적 유산을 가지고 있거나, 최근 활발하게 운동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인데 반해 문화영역에서의 권리들은 다른 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문화권을 문화예술 창작자나 생산자 권리로 축소해서 이해하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문화적 권리가 심도깊게 논의되지 않은 것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문화빵] 황우석 신드롬 유감

[문화빵] 황우석 신드롬 유감

지난 5월 19일 영국 런던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에서 생명공학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부를 법한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배아복제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하여 치료용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공개한 것이다. 기자회견장에 몰린 수백 명의 보도진들은 놀라움과 당혹감에 휩싸이며 이 충격적인 사실을 긴급 속보로 전세계에 타전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배아복제 기술의 성공담은 차라리 과학적 담론이기보다는 인류에게 던지는 ‘훈훈한 미담’처럼 들릴 법도 하다. 배아복제의 비밀 코드를 하나씩 풀어가는 황교수의 연구 성과는 온전히 난치병에 시달리는 수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척수마비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 가수 강원래씨에게 재활의 메시지를 전달한 황교수는 이 시대의 과학자이기에 앞서 진정한 휴머니스트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베아복제를 둘러싼 생명윤리의 문제가 국제적인 논쟁의 수면 위로 강력하게 떠오르지 못한 것도 아마 불치병, 난치병에 시달리는 수천 만 지구촌 환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복제양 돌리 탄생 전후로 제기되었던 생명공학의 치열한 윤리논쟁에 비하면, 이번 발표내용에 대해 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담론들은 예상 외로 미비하다. 오히려

[문화빵] 어떠한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문화빵] 어떠한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경인지역 새방송의 이념과 허가정책방향 지난해 말 방송위원회의 경인방송 재허가 추천 거부로 시작된 경인지역의 새로운 방송사업자 선정 문제가 물 위로 떠올랐다. 그동안 경인방송 희망조합을 비롯한 언론운동단체, 경인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경인지역 시청자의 시청권 보장을 위해 서둘러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지난 5월 6일 경인지역 새 방송 주비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인지역 새 지상파 방송사의 이념과 성격에 대해서 발표하였고, 지난 13일에는 방송위원회가 경인지역 새 지상파방송 사업자 선정관련 정책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방송위원회의 토론회가 열린 만치, 이후 경인지역 새 지상파 방송사 허가는 탄력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업자 허가 정책은 방송위원회, 희망조합 주비위, 주식회사 경인방송 관련 조직, 일부 기업이나 공익재단뿐만 아니라 문화관광부, 정치권 등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화려한 ‘동상이몽’이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재허가 추천거부의 의미 주식회사 경인방송(ITV)이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을 받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과거 정부(공보처) 방송정책의 실패라는 측면이다. 1996년 허가 당시 정부는

[문화빵] 사람/문화/공간

[문화빵] 사람/문화/공간

‘문화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가?’, ‘공간은 문화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결국 사람이 문제인가?’ 분명 ‘공간’과 ‘문화’는 공모관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공모관계에서 건설 혹은 시설 위주의 전시행정이나 상업공간의 자본논리만 위세를 떨칠 뿐 ‘공간’과 ‘문화’가 틀어지는 지점은 간과되고 있다. 기무사 터에 대한 활용방안, 노들섬의 오페라하우스 건설문제, 민자역사의 공공성 문제, 점거(예술)운동 등이 이 뒤틀림을 잘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 문화의 주체인 사람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 내거나 만들어 낼 공동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이 문화의 공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그 반대 방향이다. 물론 사람-문화-공간의 선형적 발전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공간환경이 사람들의 모든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는 식의 공간결정론은 피하고 싶다. 청계천을 보라. 잘못 조성된 근대의 왜곡된 공간에서도 새로운 삶의 방식들과 공간활용 방식들은 창출된다. 사실 청계천의 새로운 공동공간 창출과 생산-유통-판매의 네트워크는 천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공간실천인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공간결정론에 기반한 개발공간 창출이 목표임에 틀림없다. 한편 문화공간을 먼저 건축하는 경우에도 기존의 문화적 자원을 먼저 살펴야 한다. 거점공간의

[문화빵] 관행적 삶과 폭력의 세기

[문화빵] 관행적 삶과 폭력의 세기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 순진하다고 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머리에 고속도로가 난 상태로 어줍짢게 반항이랍시고 며칠째 그냥 등교하다가 운동장 한 가운데서 먼지나게 맞은 적도 있었고, 대면식이란 걸 나갔다가 이유도 모른채 우리 학년 전체가 딱 한살 많지만 신분은 완전히 다른 ‘선배’에게 피멍들도록 맞아도 봤다. 어디 그뿐이랴, 선생에게 맞아서 귀가 찢어진 친구가 충분히 그럴만한 ‘대접’을 받아 마땅한 놈이라는 진술서를 쓰지 않겠다고 버티다 학생부 한 귀퉁이 쪽방에 감금당하고 밤 12시까지 무릅꿇고 맞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폭력의 세기’, 바로 그 20세기가 아니었던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 감히 누가 누구를 때릴 수 있단 말인가. 교복 주머니, 주머니마다 카메라가 꽂혀있고, 자유/민주를 신봉하는 아저씨들이 오히려 그것이 너무 넘쳐난다며 이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이 때에. 왠 낯익은 ‘구타의 풍경’이란 말인가. 모든 이들을 ‘빠져~’들게 만들었던, 새로운 세대의 아이디어와 재능을 상징적으로 웅변하던 개그맨들에게 하나의 ‘관행’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구타’였다. (오호라통재여, 이 왠 낯익은 용어란 말인가!) 한때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꽤 인기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 기준에 따르자면 ‘폭력의

[문화빵] 죽음의 입시… 언제까지?

[문화빵] 죽음의 입시… 언제까지?

11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죽었다. 새 학기가 시작한지 불과 2달 만에.. 우리 사회는 그들을 항해 ‘자살’이라는 용어를 너무도 쉽게 들이댄다. 그러나 그것은 자살이 아니다. 타살이다. 사회적 타살이다. 시민사회의 줄기찬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문제투성이의 새 대입제도를 만들어낸 교육부 관료들이 그 학생들을 죽인 범인이다. 그러나 권력을 쥔 ‘범인’은 더 이상 범인이 아니다. 명확한 범인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범인이 되지 않는 기형적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양산한다. 학벌과 대학서열화는 불평등을 구조화하기 위한 핵심적 기제이며 이를 위해 대입이라는 도구가 활용된다. 혼란의 연속 또는 가중 ‘내신은 학교에서, 수능은 학원에서’라는 표현이 나타내듯이 수능 중심의 기존 대입제도는 학교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갔다. 교육부는 이 문제를 극복한답시고 고교교육의 중심축을 학교안으로 유도하기 위해 대입에서 내신의 비중을 높여 학교교육의 과정 및 결과가 대입전형에서 주요 요소로 활용되는 것을 골자로 하는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학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새 대입제도가 실행되면 치열한 점수경쟁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교육부의 전망과 정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전술한대로 새 학기가 시작된 후 치열한 점수경쟁의 부담을 이기지

[문화빵] 삼일아파트에서 더불어 살기

[문화빵] 삼일아파트에서 더불어 살기

노숙인들의 생활 공동체, ‘더불어사는집’ 청계천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종로구 창신동의 청계천 근처에 가면 낡은 아파트를 볼 수 있다. 곧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삼일 아파트는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박정희가 ‘삼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삼일아파트는 1984년부터 재개발계획이 있었으나 2005년이 된 지금에서야 철거 계획이 만들어 졌다. 이에 작년 여름 재개발에 따른 보상이 마무리되어 상당수의 주민이 이주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주비로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몇 가구는 아직 삼일아파트에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이곳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 왔다. 노숙인 자체 모임인 ‘더불어사는집’(4월19일자 헤드라인 뉴스 기사참조) 식구들이 2동 311호에 자리 잡고 있다. ‘더불어사는집’ 식구들은 모두 노숙인이다. 임진택 씨와 그의 아내는 공장에서 해고당하고 노점을 하며 노숙생활을 해 왔다. 정씨 아저씨도 염전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빠져나온 작년까지만 해도 쉼터와 노숙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젊은 축에 속하는 김씨는 반월공장에서 일하다가 해고당하고, 장애인이란 이유로 재취업이 되지 않아 노숙생활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 모두 ‘더불어사는집’ 식구가 되어 생활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다. 20여명이 모여 살아 ‘더불어사는집’은 작년 8월에 양연수 씨의

[문화빵] 사람, 그 동등한 가치의 실현을 위해

[문화빵] 사람, 그 동등한 가치의 실현을 위해

–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의미와 쟁점 우리나라의 장애인운동은 1980년대에 시작이 되어 90년대에 들어와서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의 서울장애인올림픽 반대 투쟁에서부터 1990년대 있었던 장애인복지법의 개정, 노동권, 교육권 운동과 최근의 이동권 및 기초생계권 투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장애인운동은 끊임없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맞서 싸워왔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운동의 결실로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의미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도로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84년에 목숨을 끊은 고 김순석 씨에서부터 2002년에 여성장애인으로서 장애로 인한 고통과 생활고라는 이중의 고통에 맞서 최옥란 열사의 죽음 등을 헛되이 하지 않는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이다. 둘째, 진정한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권 운동이다. 그동안 장애인인권운동의 과정에 있어서 일부 단체들이 연대하거나 지원하기는 했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처럼 범 장애계가 하나가 된 일은 없었다. 셋째,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다. 그동안 정부가 만든 법률안에 대한 의견만을 제시하던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장애인계에서 직접 법률안을 만들고 그 법률에 장애인의 의견을 담아내고 그것을 법률로 제정하려는 운동은 장애인 당사자의 성숙과 장애인계의 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넷째, 시혜적

[문화빵] 문화도시 조성과 시민자치공동체

[문화빵] 문화도시 조성과 시민자치공동체

도시에 대한 느낌과 이미지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또는 그 도시를 거쳐가는 시민들이 그 도시와 관계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도시 거주자라 하더라도 도시를 중심으로 일상생활을 꾸려가는 이들과 밤늦게 들어와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 도시에서 잠만 자는 이들은 도시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이미지가 매우 다르다. 또한 도시 외부에서 도시계획을 입안하고 실행시킨 이들과 도시 내부에서 도시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이들이 도시에 대해 지니는 느낌과 이미지도 사뭇 다르다. 도시와 시민 낮과 밤의 관계, 구체적인 기능과 커다란 형태의 관계, 또는 사고와 행동처럼 도시의 내·외부도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한다. 도시의 계획(의 입안과 실행)이 도시 거주자들의 삶을, 또 도시 거주자들의 삶이 도시 계획을 고무하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두 부분의 상호관계가 수평적이고 상보적으로 전제되지 않고, 도시성장(결과)이 도시계획이라는 원인으로 환원주의적으로 설명되거나 단선적인 인과관계로 제시될 때, 그리고 설계자(위에서의 결정)ㅡ사용자(아래에서의 수용)의 수직적 위계질서로 배치될 때, 도시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경관으로 전락하거나, 경제적 이윤을 확대하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으며, 도시 거주자의 개별적인 삶이 지니는 사회적 가치나 의미,

[문화빵] 도시빈민의 주거공간 변천과 그 함의

[문화빵] 도시빈민의 주거공간 변천과 그 함의

이 거대도시 서울에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산다. 대기업가는 물론이고 행정고위관료, 정치인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서울에 몰려있다. 그런가 하면 노점상, 일용노동자, 노숙인 등 도시비공식부문의 빈민들도 몰려있는 곳 역시 서울이다. 그런데, 이 주거공간은 희소한 자원으로서 그들이 가진 권력과 자원에 의해 차별적으로 분배되고 정의된다. 따라서 주거지를 통한 이 거대도시의 공간분할은 이들 사이의 가름을 대변해주게 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을 거쳐 강제철거가 수반되는 도시재개발사업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였으며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산동네, 혹은 달동네로 불리던 도시빈민의 주거지가 외관상으로 말끔하게 정비된 지금, 도시빈민에 대해서는 점차 무관심해져 가는 게 현실인 듯하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 기간 동안 엄청난 인구가 도시에 집중하면서 도시지역의 주거문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정상적인 주거를 마련할 수 없었던 하층서비스업이나 일용노동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허가정착지를 그들의 주거대안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정부는 이를 묵인했다. 결국 70년대까지 정부의 저소득층 주택문제에 대한 기본적 대응방식은 국공유지에 대한 무단점거를 사실상 합법화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1980년대 중반까지 서울에는 빈민촌이 227개 지구에 이르렀고 서울 인구의 1/3정도가 이곳에 거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시 외곽에 위치해있던 무허가정착지가 개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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