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앞에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은하가 찍힌 사진이 있다. 작은 별들이 점점이 흩뿌려진 시꺼먼 우주 한가운데 새벽빛 같은 푸르스름한 안개가 한 덩어리 스미어 있고 그 안개 속에는 다른 것들보다 유난히 반짝이는 별들이 마치 누군가 보석들을 박아 놓은 것처럼 자기 자리에서 오롯하게 빛나고 있다.
나의 꿈은 으리으리하지 않다. 언젠가 꼭 남극에 가서 권총으로 내 머리를 쏘는 것이 나의 꿈이다. 갈 때가 되었다면 아무도 없는 춥고 새하얀 곳에서 끝내고 싶다.
요즘은 일 때문에 서울 안에 있는 이런저런 대학들을 쑤시고 다닌다. 어딜 가나 안녕들 하시냐는 대자보가 붙어있어서 일하는 틈틈이 곁눈으로 읽는다. 엇비슷한 넋두리들이라 하나도 재미없다.
사람 많은 지하철을 끔찍이 싫어하는 나는 그날도 두 시간쯤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 내 자리 컴퓨터부터 켰다. 밤새 온 쓸데없는 팩스들을 모아 분리수거함에 처넣으려는데 뭔가 좀 이상한 팩스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이미 벌어진 학살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학살들. 평택, 강정, 밀양. 쌍용차, 현대차, 재능교육, 골든브릿지, 콜트 콜텍. 용산 학살의 주범을 공기업 사장으로 꽂아 넣는 정권에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요?
어제 나는 또 한 번 직장을 잃었단다. 그걸 직장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야.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직장이란 뭘까? 내가 일을 해 주고 돈을 받는 곳이 직장일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자아실현의 장’일까? 아니면 직장은 결혼과 효도를 위한 소도구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까?
희망이라는 말은 정말 희망이 있는 곳에선 살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희망이라는 말을 찾는다. 희망은 이 세상 모든 목숨들의 것이지만 희망이라는 말은 오직 사람의 것이다.
자본과 권력을 쥔 이들이 감정 노동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 노동은 이윤을 얻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의 감정 노동은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고 상처와 아픔을 살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언론을 통해서든 방송국을 통해서든 예전에는 주로 감정 노동자들의 실태를 들여다보고 현실을 진단하는 게 전부였는데 요즘에 와서는 감정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권리’나 감정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그들은 돌덩이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조금도 되돌아보지 않고 품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바로 파견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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