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복판에서 노동자들을 때리고 짓밟고 패대기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문을 지나쳐 가는 이들에겐 경찰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경찰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정권의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려우니까 동원하는 것이다. 두려우니까 말로 안 하고 때리는 것이다.
지난 삼 년 동안 나는 글쓰기고 뭐고 아예 세상일에 등을 돌린 채로 살았다. 나와 가족들의 목숨을 어떻게든 이어 가야 한다는 핑계를 품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돈을 벌었다. 내가 ‘비정규직 철폐가’의 가사를 조금씩 잊어버리는 사이 강정이 쑥밭이 되었고
화요일에는 평택 송전탑에 가서, 수요일에는 시청 광장에 가서 찍었다. 내가 봐도 솜씨도 맵시도 없는 사진들이라 한 번 보고 잊고 다른 사진을 봐도 좋을 듯하다. 사진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는 이런 작품을 기다려 왔다고 하는 글귀들이 마치 싸구려 화장품처럼 치덕치덕 책들의 낯짝에 발라져 있었다. 나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그 느끼함이 싫어 얼른 시집이 꽂힌 쪽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낯익은 이름 하나를 보았다.
그들에게 노점상 상인들은 살갗에 내려앉은 부스럼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부스럼을 남김없이 씻어 내기 위해 깡패들을 끌어들였고 경찰들까지 불러 모았다.
6월 10일은 용산 살인 진압 현장에서 \'용산 참사 140일 해결 촉구 및 6.10 항쟁 22주년 현장 문화제\'라는 긴 이름을 붙인 집회가 열린 날입니다.
5월 27일은 해고된 명지대학교 비정규직 행정조교들이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지 10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그날 명지대 정문 앞에서는 ‘명지대 비정규직 파업투쟁 100일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나는 지금껏 누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을 흘려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겨레붙이 몇몇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정이 없어서 그랬을까?
요즈음 여기저기에서 욕 먹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다가 팔십 년 오월에 광주 항쟁이 시작된 18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 행정조교 해고 조합원들의 목요 촛불 문화제가 있던 날, 나는 옷장 앞에서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겨울 외투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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