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마신 술이 해가 져 가는데도 깨지 않았다. 뭔가 먹기는 해야겠는데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물만 들입다 마셔대다가 결국 라면을 끓여 먹고 집을 나섰다.
박정화 조합원의 발언을 들으며 나는 그 옛날 훈련병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아름답고 좋은 모습이 공포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지만 500이 돈이 아니라 날짜라면? 닷새도 아니고 50일도 아니고 500일이라면? 그리고 500일 동안 펀들펀들 논 것도 아니고 절에 들어가 고시 공부를 한 것도 아니며 애인과 연애를 한 것도 아니라면? 생업을 다 제쳐둔 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온 지가 500일이라면?
도시에는 밤은 있지만 어둠은 없다고 했던 어느 소설가의 말이 떠올랐다. 집에 오는데 하늘을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낮 한시 반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사 추모제가 먼저 열렸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오전엔 싸늘한 날씨였지만 한낮이 되면서 따뜻한 가을 햇볕이 내리쬐었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토요일 하루 종일 장기투쟁사업장들을 돌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콜트-콜텍, 하이텍 고공 농성장에 가서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취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다른 곳으로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언젠가 어디선가 마이크를 붙들고 목 놓아 삶과 권리와 희망을 부르짖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 땅에 공장이 세워진 이후로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온 이야기.
다행? 언제 누가 쳐들어올지 알 수도 없는 판국에 철제 구조물 위에 분회장이 올라가 있는 상황을 두고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농성장이 쑥밭이 된 마당에 용역 깡패들과 구사대와 경찰들이 사이좋게 짓쳐들어오는 상황을 두고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웃음소리. 언제까지고 멎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웃음소리를 500일 넘게 파업을 하고 있는, 100일 넘게 천막 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 설레는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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