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9호]공장위원회 5문 5답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9호]공장위원회 5문 5답

편집자 주 – 「민주노조운동의 향후 방향」은 ‘사회주의 노동운동 강화’를 핵심 실천방향 중 하나로 설정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노동운동 강화의 계기로서 ‘공장위원회 건설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노동운동 현실에서 ‘공장위원회’는 아직 생소하기만 하다. 이에 해방연대는 공장위원회 개념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5문5답을 작성했다. 보충하여 「민주노조운동의 향후 방향」의 한 부분(‘공장위원회운동과 산별노조운동과의 대비’)도 함께 싣는다. 1. 공장위원회란 무엇입니까? 공장위원회는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이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출현했으며 조합원이던 아니던 사업장 내의 모든 노동자를 포괄해왔던 노동자의 조직입니다. 이런 공장위원회는 자본주의 위기 시에 노동자들의 혁명적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이며 혁명 조직의 맹아가 될 것입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1917년 혁명 시기에 자본가계급의 사보타지에 맞서 공장위원회를 통해 공장에 대한 노동자통제를 실시했고, 뿐만 아니라 공장위원회는 러시아 혁명을 떠받치는 노동자의 조직으로 기능했습니다. 1918년 독일 혁명 시기에 독일 노동자들 역시 공장위원회를 통해 혁명으로 나섰습니다. 현재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위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공장위원회 운동을 통해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투쟁을 뛰어넘는 노동자들의 혁명적 진출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를 하나의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9호]공장위원회운동과 산별노조운동과의 대비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9호]공장위원회운동과 산별노조운동과의 대비

편집자 주 – 「민주노조운동의 향후 방향」은 ‘사회주의 노동운동 강화’를 핵심 실천방향 중 하나로 설정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노동운동 강화의 계기로서 ‘공장위원회 건설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노동운동 현실에서 ‘공장위원회’는 아직 생소하기만 하다. 이에 해방연대는 공장위원회 개념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5문5답을 작성했다. 보충하여 「민주노조운동의 향후 방향」의 한 부분(‘공장위원회운동과 산별노조운동과의 대비’)도 함께 싣는다. 첫째, 산별운동은 교섭의 수준을 높여내는 운동이라면, 공장위원회 운동은 요구의 수준, 투쟁의 수준을 높여내기 위한 운동이다. 둘째, 산별교섭의 힘은 숫자, 즉 조직력에서 나온다. 그러나 공장위원회 운동은 현장민주주의의 확대에서 나온다. 공장위원회는 참여의 폭을 비정규직, 그리고 외부하청 노동자까지 확대해 나가고 필요하면 노동자가족까지 확대해 나가면서 위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셋째, 산별노조운동의 성과는 노동자의 투쟁도 투쟁이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해서 번영해야 기대할 수 있다. 안정적인 임금인상에는 안정적인 성장이 보장되어야 한다. 반면 공장위원회 운동은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로부터 노동자를 수호하고, 자본의 생산방식을 노동자 통제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에서 결정적 차이를 갖는다. 공장위원회 건설은 노동자들의 혁명적 진출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장위원회의 구성에서 보여주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경험에서 확인될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9호]자본주의 위기시대, 소박함을 극복하고 크게 주장하자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9호]자본주의 위기시대, 소박함을 극복하고 크게 주장하자

지난 여름, 일본자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56년 만에 야당이 집권했다. 일본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제쳐놓고 본다면 자민당의 몰락과 민주당의 승리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정권교체라고 볼 수 있다. 자민당 전 총리였던 고이즈미가 시행한 신자유주의적 개혁 이후 일본인들의 삶의 질은 후퇴했고 격차는 확대되었으며, 작년에 몰아친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실업난은 일본사회를 공포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여당은 무능했고 부패했으며 경기는 후퇴일로에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야당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동안 자민당 정권은 일본사회에서 철옹성이었다. 그런 철옹성이 무너졌다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고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드러난 일본 진보진영의 약점 지난 몇 년간 일본사회를 지칭하는 말은 격차사회였다. 그동안 나라는 잘살아도 국민들은 적당히 골고루 헐벗었던 일본에서 소위 노동유연성 확대(비정규직 확대)라는 세계화 바람으로 빈부격차가 확대되었다. 비정규직으로 몰린 수많은 젊은이들은 절망감과 박탈감을 ‘묻지마 살인’으로 표출했고, 비슷한 사건들의 연발로 일본인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작년 금융공황 이후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자, 일본사회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리와 달리 이미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던 좌파정당들, 특히 공산당의 당세와 인기도 같이 올라갔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노동운동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긴 쌍용자동차 투쟁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노동운동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긴 쌍용자동차 투쟁

지난 8월 6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일단락되었다. 77일간의 옥쇄파업, 86일간의 고공농성, 2주일에 걸친 공권력의 침탈을 고려할 때, 이는 한국 노동운동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긴 투쟁이었다. 쌍용자동차 노조 집행부와 파업투쟁에 결합한 노동자들은 기대 이상의 강력한 투쟁을 진행했고, 전체 노동운동 진영의 연대투쟁을 불러 일으켰다. 예상을 뒤엎는 강력한 옥쇄파업과 쌍용자동차 정부책임 여론은 정권과 자본을 당혹시켰고 공권력 투입 또한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이전 노조 집행부가 같은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으로 공장을 떠나는 것을 묵인하고 방조했다면, 옥쇄파업을 전개한 노조 지도부와 노동자들은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가져나갔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 고공농성에 들어갔고, 도장공장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현장의 곳곳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조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흐뭇한 모습이었다. 패배한 쌍용자동차 투쟁 하지만, 총고용보장과 정리해고분쇄를 목표로 한 쌍용자동차 투쟁은 그 결과로만 보면 실패한 투쟁임을 부정할 수 없다. 쌍용자동차를 이 상태로 몰아간 장본인이 바로 해외매각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하고 실행한 정부였으며 쌍용자동차에 공적자금 1조원만 투입해도 정상화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실현되지 못했고, 이후 가능성조차 매우 희박해졌다. 하지만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사노련 탄압 규탄한다! 이명박은 검찰부터 선진화시켜라!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사노련 탄압 규탄한다! 이명박은 검찰부터 선진화시켜라!

작년에 연이어 구속영장을 기각당하고 망신살이 뻗쳤던 공안당국이 기어코 사노련 활동가들을 기소했다. 참으로 시대착오적이며 집요하다. 검찰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선전·선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법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명백히 기본적 권리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다. 또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이기도 하다. 현대 민주주의는 다원주의를 당연시한다.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에는 다양한 원리가 존재할 수 있으며, 이 원리들 중 하나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이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선전가들이 체제의 장점으로 모두 함께 외치는 정치경쟁의 자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진정 해악을 끼치는 자들은 사노련이 아니라 검찰 자신이다. 도대체 어느 선진국에 사회주의자 탄압법이 존재하는가? 이명박 정권은 공공부문이 아니라 검찰과 법체계부터 선진화시켜야 할 것이다. 사노련 탄압, 사회주의 탄압은 이명박 정권이 저지르고 있는 민주주의 파괴의 일부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후퇴는 자본주의 모순 심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자본주의로 인한 피할 수 없는 경제위기와 사회의 궁핍화는 광범한 대중의 불만을 낳고 있고, 이 불만들은 지금 이명박 정권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아는 게 자본 편들어주기 밖에 없는 이명박 정권으로서는 삶의 위기를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미디어법 날치기, 자본의 언론 지배를 거부하자!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미디어법 날치기, 자본의 언론 지배를 거부하자!

‘날치기’로 국회에서 통과된 미디어법에 대한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7월 22일 국회에서는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던 방송법·신문법·IPTV법 등 미디어 관련 법안들에 대한 개정안이 국회 부의장의 직권상정으로 표결 처리되었다. 이 법안의 처리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대리투표, 사전투표 등 적법한 절차를 위반했다는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언론노조 등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미디어법 처리가 잘못되었다고 답변했고, 날치기의 주범인 한나라당과 친박연대에 대한 지지율도 급락하였다. 애초에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처럼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사실은 이 국회라는 곳이 국민의 의사대로 결정하는 곳이 아니라 투표 때 한 번 ‘민주주의’를 생색내기 위한 곳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우스꽝스러운 날치기 쇼까지 벌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권력을 낳는 언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TV방송이나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을 통한 소통과 여론의 조직화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극도의 전체주의 사회를 상상했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는 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당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박남일칼럼]언론이 저지른 ‘살인’의 추억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박남일칼럼]언론이 저지른 ‘살인’의 추억

일촉즉발의 위기 직전에 협상이 타결되어 쌍용차 노동자들의 뜨거운 투쟁이 막을 내렸다. 대량 해고에 맞서 파업투쟁을 벌인지 77일만이었다. 그나마 노조 측에서 큰 폭으로 양보를 한 결과다. 용산 철거민 참사보다 몇 배나 처참한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리라. 협상 타결로 농성을 푼 순간에 파업농성 지도부와 연대단체 활동가 수십 명은 손에 수갑을 차고 쇠창살에 갇히게 되었다. 쌍용차 점거농성파업은 이제 이명박 정부 이후 최대 공안사건 국면을 맞고 있다. 게다가 후안무치한 경찰은 노조 측에 5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아무리 곱게 봐주려 해도, 이명박 시대 한국 경찰은 천하의 상것들이다. 한편, 1천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두 달 넘도록 이른바 ‘구사대’와 ‘공권력’의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떨고 있을 때, 한국의 대다수 부르주아 언론은 이들을 조롱하고, 저주하였다. 협상이 타결된 며칠 뒤에 이들 부르주아 언론들은 ‘폭력노조원’이니 ‘외부세력’ 개입이니 하면서, 오랜 투쟁으로 지친 노동자들의 가슴을 날카로운 펜 끝으로 마구 긁어댔다. 용산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전철연’에 대한 마녀사냥을 부추기던 것과 똑 같다. 예컨대 동아일보 8월 11일자는 “점거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바보야, 문제는 의식성이야!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바보야, 문제는 의식성이야!

자본주의가 위기?? 작년 9월, 미국계 투자은행들의 파산이 속출했고, 자본주의라 불리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불과 1년여 만에 자본주의경제는 다시 회생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증시는 뜨겁고, 투자를 말리던 애널리스트들은 반성문을 쓰고 있다. 물론 경기가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여전히 세계자본주의경제는 ‘제조업의 과잉설비’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고, ‘정교한 모래성 같은 금융체계가 부풀려놓은 과잉소비’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낙관적인 분위기는(이는 아직은 소수의 인간들 즉, 투자자와 경제분석가 등만이 공유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 혹은 적어도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부르짖어온 좌파들의 기세를 주춤하게 한다. 그리고 어느새 포스트 신자유주의/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러한 일들로부터 우리는 다음을 깨달아야 하고, 다음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명백한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는데도, 자본주의의 진정한 위기, 정치적 위기는 시작조차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자본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위기를 먹으며 자라온 괴물 우리는 경제위기를 곧장 자본주의의 위기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제가 위기에 처한다고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새로운 사회를 향한 불씨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새로운 사회를 향한 불씨

지난 7월 18일과 27일, 시청역 1번 출구에선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대한 규탄과 함께,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에 대한 이야기들이 말과 글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날 해방연대는 정권퇴진 요구를 걸고 사회주의 정치실천의 날 선전전을 벌였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규탄이야 ‘야4당’을 비롯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비정규직법 유예, 미디어법 통과, 쌍용차 파업현장에 대한 잔인한 공권력 투입 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도 커질 대로 커졌지만, 사회주의자들이 구체적인 대안을 선도적으로 제기하는 장은 실천의 날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누구나 다 느끼듯이 이명박 정권에 대한 대중적 분노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천의 날에 시청역 앞에서 유인물을 받아가는 시민들의 반응도 현재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이런 조건은 사회주의자들이 나서서 대중적 투쟁을 지도할 공간이 열리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 공간을 민주당이나 시민운동진영의 정권퇴진운동에 맡겨 버릴지, 사회주의적 대안을 요구하는 흐름으로 바꾸어 낼 지는 오로지 사회주의자들의 손에 달려있는 일이다. 즉자적인 대중의 분노를 자본주의 모순을 폭로하는 명백한 요구로 이끄는 임무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있다. 지난 실천의 날에서 이야기 된 내용은 노동자 민중의 당면한 문제였던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우리는 요구한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우리는 요구한다!

* 아래는 ‘사회주의정치 실천의 날’에 배포한 『실천』 6,7호에 실렸던 ‘우리의 요구’ 중 일부이다. 전문과 『실천』은 해방연대 홈페이지(www.hbyd.org)에서 볼 수 있다. 실질적 · 직접 민주주의 MB와 한나라당이 보여주고 있는 독선과 불통은 민주주의를 다시 고민케 한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는 대표자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순간부터 민의를 거스르기 시작한다는 점이고, 이러한 대표자에게 끝까지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이다. 그리고 지금 절차적·간접 민주주의의 한계를 온전히 보여주고 있는 문제적 인물과 여당이 바로 MB와 한나라당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매일, 매주 거리로 나와 요구하는데도 바뀌는 게 하나 없다면 이것은 진정 민주주의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불통이 아니라 통하는 민주주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진정 대중이 권력을 갖기 위해서, 모든 공직자는 국민이 선출하고 선출자들 다수의 결정에 의해 언제라도 소환돼야 한다(모든 공직에 대한 국민선출제, 대통령까지 포함하는 국민소환제 도입). 그리고 국민 자신이 입법자, 법관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에 의한 직접입법권과 직접 형사소추권을 도입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정치주체가 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토론하고 결정하며 집행에 참여할 수 있는 대중운동조직 결성을 장려해야 한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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