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용산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들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용산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들

용산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들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적인 순간들에 대하여, 지금까지 그 누구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도 없었다. 경찰의 부실한 안전대책, 위험한 진압과정, 경찰특공대 조기 투입의 경위에 대하여 더 늦기 전에 진상조사를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산 사람 중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산 사람 중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

용산참사 출소인 김창수씨는 이틀 동안 이어지는 검찰조사과정에서 무어라 답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조서를 마치며, 검사가 한 말은 또렷이 기억이 났다. “산 사람 중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던, 탈출을 하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죽음의 진실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던, 탈출을 하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죽음의 진실

불타는 망루를 피해 탈출한 생존자, 윤용헌, 이성수 씨는 왜 망루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일까? 그들이 망루로 다시 되들어갈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망루 전체가 화재로 번지기 이전에 옥상은 경찰들이 완전히 장악한 상황이었는데, 옥상에 있던 경찰들은 그들을 왜 막지 않고 다시 망루로 들어가게 두었을까?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던, 탈출을 하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죽음의 진실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던, 탈출을 하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죽음의 진실

불타는 망루를 피해 탈출한 생존자, 윤용헌, 이성수 씨는 왜 망루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일까? 그들이 망루로 다시 되들어갈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망루 전체가 화재로 번지기 이전에 옥상은 경찰들이 완전히 장악한 상황이었는데, 옥상에 있던 경찰들은 그들을 왜 막지 않고 다시 망루로 들어가게 두었을까?

[인권오름] [이동수의 만화사랑방] 막개발 용산학살 6년후

[인권오름] [이동수의 만화사랑방] 막개발 용산학살 6년후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가 일어났다.2015년 1월 20일 막개발 학살 참사가 일어났던 터는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막개발은 결국 서민들의 삶을 짓밟고 더 많이 가진 자들의 배를 채워주고 공권력은 변함없이 여기에 복무하고 있다!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그날도 그 이후로도 책임지는 국가는 없다

[인권오름] [용산, 다시 진실] 그날도 그 이후로도 책임지는 국가는 없다

참사의 책임자가 낙하산으로 정부기관에 버젓이 취임하고, 참사 이후 6년 동안 국가는 단 한명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반성하지 않는 국가 폭력 악순환은 다시 되돌이표로 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용산참사 5년…“여기 사람이 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살자“

용산참사 5년…“여기 사람이 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살자“

“용산의 남일당은 2009년 1월 21일 용산학살이 일어난 5년 전에 그대로 멈춰서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학살 현장이 주차장으로 방치돼 있기 때문만 아니라 진상 규명이 되지 않고, 수많은 노동자 민중에 대한 탄압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했다.

용산참사 희생자 ‘강제부검’한 정병두 검사가 ‘대법관’ 후보라니

용산참사 희생자 ‘강제부검’한 정병두 검사가 ‘대법관’ 후보라니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을 강제로 부검하고, 수사기록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병두 전 검사(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가 대법관 후보로 추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용산참사 5주기인 1월 20일을 불과 나흘 앞두고 발표된 일이라 유족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5명 목숨 앗아간 용산참사, 5주기 범국민 추모주간 진행

5명 목숨 앗아간 용산참사, 5주기 범국민 추모주간 진행

오는 20일, 용산참사 5주기를 맞아 각종 범국민 추모 일정이 개최될 예정이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다섯 명의 철거민들이 국가 폭력으로 사망하는 용산참사가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진상규명 및 정부의 사과 등이 이행되지 않아 유족을 비롯한 철거민, 시민사회는 5년간의 장기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18호-어깨걸기]우리 모두 용산참사 속에서 살고 있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18호-어깨걸기]우리 모두 용산참사 속에서 살고 있다

[어깨걸기]는 홈리스행동과 뜻을 함께하는 연대 단위의 소식과 홈리스행동의 연대 활동을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2009년 1월 20일,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 대책 없는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철거민들이 건물옥상으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건물옥상으로 올라가면 더 이상 용역깡패로부터 폭력은 당하지 않아도 되기에, 적어도 한강로 2가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릴 수 있을 것 같아 건물옥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망루가 채 세워지기도 전에, 용역들은 건물 밑에서 불을 지르며 옥상에 있는 철거민들을 위협하고, 건물 옆 옥상에서는 경찰과 용역이 함께 영하 10도의 추운 겨울날 물대포를 쏘며 철거민들을 겁박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를 무리하게 진압시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죽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모든 책임을 부하들에게 떠넘긴 무책임한 자, 김석기 김석기. 이름만 들어도 치 떨리는 자가 있다. 그는 용산참사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로 철거민들에게 경찰특공대를 투입시키라고 최종명령을 한 자이다. ‘우리도 사람이다. 강제철거 하지 말고 철거민들의 이주대책을 세우고 개발하라’는 요구에 대테러부대인 경찰특공대를 투입시켜 무고한 시민 6명을 죽게 만든 용산참사 책임자인 김석기는 당시, 최종승인자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무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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