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대담 나는 살아있는 너, 너 또한 죽은 나
사진은 그것이 발명되었던 19세기 초부터 인간의 ‘부족한 기억력’을 보조하는 강력한 기록매체로 굳건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글이나 회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왔던 기록자의 지위를 단번에 무력화시킬 만큼 전례 없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사진이 누려왔던 투명성과 객관성의 신화가 의심받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사진은 가장 유효한 기록과 기억의 방법론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체를 주요 작업수단으로 다루고 있는 작가가 ‘기억’에 방점을 두지 않고, ‘망각’에 주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왜 망각입니까. 사진의 역사를 공부하고, 또 제가 나고 자라온 사회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향한, 특히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어떤 꿈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희망이자 강박이기도 했고, 고백하자면 어설픈 환상이자 낭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루이스 하인이나 제이콥 리스와 같은, 사진을 사회개혁의 강력한 도구로 인식했던 분들의 작업을 눈여겨보고,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반전운동의 기폭제를 제공했던 돈 맥컬린이나 필립 존스 그리피스 등의 사진에 흥분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의 기록이 아니었다면, 저는 20세기 초 아메리칸 드림의 그늘이 어떤 풍경이었는지, 가혹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