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월간 사람] [특집] 나는 살아있는 너, 너 또한 죽은 나

[월간 사람] [특집] 나는 살아있는 너, 너 또한 죽은 나

‘망각기계’는 5.18민주항쟁에 관한 노순택 사진작가의 개인전 이름이자 사진집 이름입니다. 노순택과 나베 아츠미(시인)와 나눈 이 대화는 네 번의 만남과 서신 교환을 통해 진행되었고 사진집 『망각기계』에 실렸으며 <망각기계> 전시는 지난 5월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청어람미디어 출판사 동의를 받아 전문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다나베 아츠미(아츠미) 사진은 그것이 발명되었던 19세기 초부터 인간의 ‘부족한 기억력’을 보조하는 강력한 기록매체로 굳건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글이나 회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왔던 기록자의 지위를 단번에 무력화시킬 만큼 전례 없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사진이 누려왔던 투명성과 객관성의 신화가 의심받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사진은 가장 유효한 기록과 기억의 방법론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체를 주요 작업수단으로 다루고 있는 작가가 ‘기억’에 방점을 두지 않고, ‘망각’에 주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왜 망각입니까? 저주 받은 축복, 축복 받은 저주 노순택 사진의 역사를 공부하고, 또 제가 나고 자라온 사회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향한, 특히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어떤 꿈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희망이자 강박이기도 했고, 고백하자면 어설픈 환상이자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민주주의의 스마트한 적들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민주주의의 스마트한 적들

사춘기 무렵 동네에는 “사는 게 다 욕”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그분을 보며 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요새 말로 ‘쿨’하게 살고 싶었죠. 돌이켜보면 쿨이나 심플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습니다. 어릴 적 돈 문제, 집안 문제로 다투는 부모님을 보며 절대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 했습니다. 하더라도 애는 절대 낳지 말아야지 했는데 둘째가 곧 있으면 두 돌입니다. 뜻대로 산다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절대라는 생각, 뜻대로 산다는 생각 자체가 철없음의 반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잡지를 만드는 일도 늘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갈수록 참신한 기획도 쉽지 않고, 마음에 드는 기획을 했다 해도 좋은 필자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이고, 밀려들어오는 원고와 씨름하다보면 애초에 정해놓은 마감 일정은 훌쩍 넘기기 일쑤입니다. 클릭이 운동을 망친다? 마감을 하다 메일함을 보니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보낸 <네트워커>라는 뉴스레터였습니다. 클릭해서 열어보니 ‘클릭 운동(Clicktivism)이 좌파 운동을 망치고 있다’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미셀 화이트란 외국 사람이 2년 전에 쓴 것을 번역한 글인데 사회운동이 온라인 활동을 하며 시작된

[월간 사람] [특집] 대담 나는 살아있는 너, 너 또한 죽은 나

[월간 사람] [특집] 대담 나는 살아있는 너, 너 또한 죽은 나

사진은 그것이 발명되었던 19세기 초부터 인간의 ‘부족한 기억력’을 보조하는 강력한 기록매체로 굳건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글이나 회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왔던 기록자의 지위를 단번에 무력화시킬 만큼 전례 없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사진이 누려왔던 투명성과 객관성의 신화가 의심받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사진은 가장 유효한 기록과 기억의 방법론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체를 주요 작업수단으로 다루고 있는 작가가 ‘기억’에 방점을 두지 않고, ‘망각’에 주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왜 망각입니까. 사진의 역사를 공부하고, 또 제가 나고 자라온 사회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향한, 특히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어떤 꿈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희망이자 강박이기도 했고, 고백하자면 어설픈 환상이자 낭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루이스 하인이나 제이콥 리스와 같은, 사진을 사회개혁의 강력한 도구로 인식했던 분들의 작업을 눈여겨보고,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반전운동의 기폭제를 제공했던 돈 맥컬린이나 필립 존스 그리피스 등의 사진에 흥분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의 기록이 아니었다면, 저는 20세기 초 아메리칸 드림의 그늘이 어떤 풍경이었는지, 가혹했던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민주주의의 스마트한 적들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민주주의의 스마트한 적들

사춘기 무렵 동네에는 “사는 게 다 욕”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그분을 보며 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요새 말로 ‘쿨’하게 살고 싶었죠. 돌이켜보면 쿨이나 심플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습니다. 어릴 적 돈 문제, 집안 문제로 다투는 부모님을 보며 절대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 했습니다. 하더라도 애는 절대 낳지 말아야지 했는데 둘째가 곧 있으면 두 돌입니다. 뜻대로 산다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절대라는 생각, 뜻대로 산다는 생각 자체가 철없음의 반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잡지를 만드는 일도 늘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갈수록 참신한 기획도 쉽지 않고, 마음에 드는 기획을 했다 해도 좋은 필자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이고, 밀려들어오는 원고와 씨름하다보면 애초에 정해놓은 마감 일정은 훌쩍 넘기기 일쑤입니다. 클릭이 운동을 망친다? 마감을 하다 메일함을 보니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보낸 <네트워커>라는 뉴스레터였습니다. 클릭해서 열어보니 ‘클릭 운동(Clicktivism)이 좌파 운동을 망치고 있다’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미셀 화이트란 외국 사람이 2년 전에 쓴 것을 번역한 글인데 사회운동이 온라인 활동을 하며 시작된

[월간 사람] [특집] 구걸행위 금지가 어떻게 사람을 모욕하는가

[월간 사람] [특집] 구걸행위 금지가 어떻게 사람을 모욕하는가

18대 국회는 마지막 본회의를 통해 개정 경범죄처벌법을 통과시켰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3조 1항)” 행위가 범법행위로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종전에는 “다른 사람을 구걸하게 하여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은 사람”에 국한됐던 것이 이제는 구걸 행위자도 단속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단속된 구걸 행위자는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료 처분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이는 당시 제출된 6개 법안 중 유일하게 행정안전위원장이었던 새누리당 이인기 의원안에만 들어있던 것으로, 국회는 심사보고서를 통해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타인의 통행방해 등을 가져오지 않는 단순 구걸 행위는 처벌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국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같은 법에 있는 “불안감 조성” 즉, “정당한 이유 없이 길을 막거나 시비를 걸거나 … 겁을 주는 말 또는 행동”으로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구걸 행위자를 상대로 규정을 신설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들에게 경범죄를 적용하겠다는 의지로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더욱이 개정 법률은 철도경찰에게도 통고처분권을 부여하여 제재 수단까지 일거에 마련해 놓은 상태다.

[월간 사람] [특집] 곳간을 줄이고 감옥을 늘려라

[월간 사람] [특집] 곳간을 줄이고 감옥을 늘려라

서울역 앞을 지날 때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노숙인이 휘청거리면서 다가올 때이다. 허름한 차림에 역한 냄새를 풍기고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면서 다가올 때 위협을 느끼지 않기는 쉽지 않다. 눈빛을 보면 꼭 나를 해코지하려고 일부러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리거나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피하기 일쑤다.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쁘고 번잡한 출근 시간에 신문을 수거하기 위해 노인들이 비좁은 차량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선반 위에 있는 신문을 내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승객들이랑 몸을 부딪치다보면 비명을 지르는 분들이 가끔 있다. 고단한 출근길에 짜증이 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귀찮은 것을 넘어서 그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제법 된다. 직접 내 몸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어디 이뿐인가? 밤중에 동네 놀이터에 청소년들이 모여 있으면 십중팔구 돈이나 뺏는 불량 청소년들이다. 가리봉이나 안산 등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될 수 있는 대로 길을 돌아서 가려고 한다. 잘 차려입지 않고, 외모가 다르고,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불온시하고 잠정적인 범죄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월간 사람] [특집] 60년 뒤로 후퇴한 경범죄처벌법

[월간 사람] [특집] 60년 뒤로 후퇴한 경범죄처벌법

1. 들어가며 2012년 3월 21일 경범죄처벌법이 전부개정되어 내년 3월 22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아래에서는 위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을 ‘개정법’이라고 부른다). 개정법은 ‘자발적인 구걸행위’를 법에 의해 처벌되는 경범죄유형의 하나로 신설하였다(개정법 제3조 제18호 후단). 즉, 종래의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도록 시켜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은 사람’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도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받도록 규정하였다. 이러한 개정법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구걸행위를 하는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경찰 또는 철도특별사법경찰 등의 판단만 있으면 바로 범칙금을 통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주거가 확실하지 않은 노숙인이 구걸행위를 한 경우에는 법 제9조 1항 1호에 따라 통고처분을 거치지 않고 지체없이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될 것이다. 생존을 위해 구걸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에게 다시 벌금을 물리고,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 있는 국가가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여 내몰린 이들을 오히려 형벌로써 처벌하는 이 웃을 수 없는 역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빈곤이 처벌의 이유가 될 수

[월간 사람] [특집] 60년 뒤로 후퇴한 경범죄처벌법

[월간 사람] [특집] 60년 뒤로 후퇴한 경범죄처벌법

1. 들어가며 2012년 3월 21일 경범죄처벌법이 전부개정되어 내년 3월 22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아래에서는 위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을 ‘개정법’이라고 부른다). 개정법은 ‘자발적인 구걸행위’를 법에 의해 처벌되는 경범죄유형의 하나로 신설하였다(개정법 제3조 제18호 후단). 즉, 종래의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도록 시켜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은 사람’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도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받도록 규정하였다. 이러한 개정법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구걸행위를 하는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경찰 또는 철도특별사법경찰 등의 판단만 있으면 바로 범칙금을 통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주거가 확실하지 않은 노숙인이 구걸행위를 한 경우에는 법 제9조 1항 1호에 따라 통고처분을 거치지 않고 지체없이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될 것이다. 생존을 위해 구걸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에게 다시 벌금을 물리고,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 있는 국가가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여 내몰린 이들을 오히려 형벌로써 처벌하는 이 웃을 수 없는 역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빈곤이 처벌의 이유가 될 수

[월간 사람] [人터뷰] “여기는 영양제 같은 느낌이야”

[월간 사람] [人터뷰] “여기는 영양제 같은 느낌이야”

지난 4월 초 김순자 후보의 선거운동을 동행했다. 자그마한 몸집에 예쁘장스러운 얼굴이 참 고우셨다. 그런데 억양, 사투리, 빠르고 걸걸한 말투가 영락없는 울산 아지매다. 한나라당 당원이기도 하던 그가 어떻게 청소노동자가 되고 진보신당 비례대표까지 되었는지 그 삶이 궁금하다. 남편과 사별하기 전까지는 먹고 살만했다. 남편 직장도 좋고, 작지만 3층짜리 상가 건물도 소유했다. 때문에 주변 지인들과 여러 관변단체에 소속되어 활동도 했다. 그의 열정적인 성격으로 봐서 왕성하게 활동했으리라. 하지만 남편이 죽고 10년 뒤 그는 모든 활동을 접고 청소노동자가 됐다. 창피하고 민망하여 주변에 얘기도 못했다는 그가 어떻게 노조를 하고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까지 되었는지 울산과학대학으로 만나러 갔다. “93년도 남편이 돌아가셨어요. 간이 나빠서 10년 정도 투병하다 결국은 돌아가셨지. 우리 아저씨가 원호가족(국가유공자)이거든요. 남편 아버지가 6.25(한국전쟁)때 전사하셨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도 괜찮은 데 다녔죠. 3교대를 했거든요. 그런데 건강이 안 좋으니, 퇴직하고. 퇴직금 받고 슬래브 집 한 채 팔고 3층 건물 사서 왔지. 87년도에 여기 왔는데 7천만 원 정도 가지고 왔지. 은행에 빚도 좀 내고. 와서 장사하면서 많이 갚았지. 그런데 우리 아저씨가 아파서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기억하는 자의 슬픔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기억하는 자의 슬픔

하지만 그것은 귀향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똑같은 강물에 결코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인들이 귀향을 믿겠는가. – 베른하르크 슐링크의 소설 『더 리더』에서 몇 년 전 오월,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 한 명이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로 시작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을 맸습니다. 그의 죽음은 택배비 30원 인상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철회한 데서 비롯된 싸움 끝에 조합원 전원 해고라는 파국을 맞으며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얼마 뒤 인권변호사였던 전직 대통령도 자신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유서에는 “미안해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두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직 대통령의 재임 시절,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위원이 올랐던 바로 그 85호 크레인에서 생을 마쳐야 했던 노동자이자 세 아이의 아빠였던 이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죽음이 투쟁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죽음을 욕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내 틀린 말로 증명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저는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책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이탈리아 소설가, 그 또한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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