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기억하는 자의 슬픔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기억하는 자의 슬픔

하지만 그것은 귀향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똑같은 강물에 결코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인들이 귀향을 믿겠는가. – 베른하르크 슐링크의 소설 『더 리더』에서 몇 년 전 오월,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 한 명이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로 시작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을 맸습니다. 그의 죽음은 택배비 30원 인상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철회한 데서 비롯된 싸움 끝에 조합원 전원 해고라는 파국을 맞으며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얼마 뒤 인권변호사였던 전직 대통령도 자신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유서에는 “미안해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두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직 대통령의 재임 시절,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위원이 올랐던 바로 그 85호 크레인에서 생을 마쳐야 했던 노동자이자 세 아이의 아빠였던 이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죽음이 투쟁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죽음을 욕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내 틀린 말로 증명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저는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책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이탈리아 소설가, 그 또한 스스로

[월간 사람] [특집] 친절한 법의 모욕

[월간 사람] [특집] 친절한 법의 모욕

2011년 3월의 어느 날 나의 공무집행방해 사건 첫 번째 심리가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OO단독 법정에서 열렸다. 2009년 1월 9일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다섯 명 철거민 열사들의 장례를 위해 서울역광장 영결식장으로 향하던 중 유족들이 명동성당에 수배되어 있던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과 박래군·이종회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했다. 이미 모든 도로를 경찰이 차벽으로 통제해버린 탓에 우리는 명동역에 잠시 장례버스를 세우고 스무 명 남짓한 유족들과 인도를 이용하여 명동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인도 위에서 방패를 든 경찰들이 유족들의 앞길을 막아섰고 우리는 이에 항의했다. 2~3분 사이 뛰어 온 정보관에 의해 길은 다시 열렸고 우리는 수배자들과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로 돌아와 무사히 장례를 모셨다. 장례가 있고 1년 하고도 반년쯤 더 지나 용산경찰서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다. 이동을 가로막는 경찰들에게 항의를 하던 중 내가 전경 한 명의 가슴을 때리며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내가 경찰을 때리는 동영상이나 사진도 없다고 했다. 단지 장례식 며칠 뒤 내게 가슴을 맞았다고 진술한 전경 한 명의 진술이 있을 뿐이었다. 명동성당의 수배자들을 만나 도피시킬 우려가 있었기에 경찰이 유족들의 이동을

[월간 사람] [특집] 공판중심주의와 형사재판의 미래

[월간 사람] [특집] 공판중심주의와 형사재판의 미래

영화 ‘부러진 화살’이 화제다. ‘법정실화극’이라는 기획의도에 맞게 영화의 소재가 된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에 대한 형사 항소심 재판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다거나 형사재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문성근이 연기한 재판장의 표정이 실제 현실 재판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재판장의 표정과 닮았다고들 한다. 또 이 영화에서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김명호 교수에 대한 형사재판처럼 반전은 없었고 널리 알려진 결론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예술적 허구로 현실을 포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영화에 공감하는 이유는 ‘부러진 화살’이 우리 형사사법 절차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법에 대한 불신, 이 점이 ‘부러진 화살’의 배경이 된 김명호 교수에 대한 형사사건에서 증거채택 여부, 검사의 입증활동에 관한 구체적인 논쟁보다 사법시스템을 이용해 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더 큰 고민거리다. 이런 고민을 형사재판에 관한 공판중심주의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보고자 한다. 공판중심주의, 시민의 재판감시를 위한 장치 공판중심주의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유·무죄 판단의 기초가 되는 증거자료를 공개된 법정에서 직접 심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재판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근대 이전 밀실수사에서 밀실재판으로 이어지는

[월간 사람] [특집] 사법 불신과 권위주의

[월간 사람] [특집] 사법 불신과 권위주의

사법부의 권위,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 모두 옳다. 필요하다. 그런데 요 근래 법원 내부로부터 다시금 강조되어지는 ‘권위’와 ‘신뢰’는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좀 헛갈린다. 정치학에서 권력과 권위의 차이를 설명할 때 그 핵심은 지배되고 따르는 자의 자발성 여부라고 한다. 즉 권력이 강제력을 동반하는 힘이라면, 권위는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 지배계층이 갖는 권력은 그 사회의 법과 제도에 의하여 주어지지만 권위는 그 사회 구성원의 신뢰와 존중에 기반을 둔다. 권력보다는 권위를 얻기가 더 어렵고, 권위는 곧 인격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권위와 권력, 그리고 권위주의 그렇다면 권위주의는? 어느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권위주의는 “어떤 일에 대하여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사고방식 또는 행동양식”을 뜻한다. 앞서 말한 권위와 권력의 차이를 볼 때 권위주의에서 말하는 ‘권위’는 그 본래 의미와 다른 듯하다. 사회의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의 신뢰와 존중에 기반을 둔 영향력(곧 본래 의미의 ‘권위’)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들은 굳이 어떤 일을 해나가는데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결국 권위주의에서 말하는 ‘권위’란 합리적으로 그 이유를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권위를 기각합니다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권위를 기각합니다

벌써 20여 년 전,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적이 있습니다. 국가의 적(敵)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단체를 만들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했다는 이유로 한 해에만도 수백 명의 학생들이 범죄자로 양산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런 무시무시한 범죄자들 대부분은 집행유예로 두서너 달 구치소에 있다가 풀려 나오곤 했죠. 심지어 어느 시점에서는 반성문만 쓰면 내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담당 변호사도 한 번 다녀가고 감감 무소식이더니 최후진술을 앞두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접견을 와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최후진술을 잘 준비하라며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언론을 염두에 두고 그간 활동의 정당함과 국가보안법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재판부를 향해 논리와 감성을 동원하여 설득하고 호소하는 방식, 그리고 재판을 방청하러 온 방청객을 대상으로 선전·선동하는 방식이랍니다. 어떤 방식이든 재판 결과에는 별 영향이 없을 테니 좋을 대로 하라는 조언을 듣고 저는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재판하는 내내 심드렁했던 주심판사와는 달리,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앳된 얼굴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재판 내용에 귀를 기울이던 배석판사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이야 다 까먹었지만 마치 대학 새내기를

[월간 사람] [특집] 보호의 모순, 문제의 역설, 운동의 아이러니

[월간 사람] [특집] 보호의 모순, 문제의 역설, 운동의 아이러니

청소년은 위험하다. 그/녀들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위험하다. 폭주족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폭주족이 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위험성을 실감한다. 첫째, 그/녀들의 소음과 질주 때문에 우리는 위협을 느낀다. 따라서 그/녀들은 위험하다. 둘째, 그/녀들이 다치거나 죽을 위험이 있다. 따라서 그/녀들은 위험하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은 위험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청소년 때문에 우리가 위험하고 청소년 자신들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중적 위험성은 모든 비-주체들(the abject)에게 공통적인 것이기도 하다. ‘잡년’은 위험하다. 그녀들은 가부장 사회에 있는 한 위험하며, 또한 가부장 사회의 오점으로 있는 한 위험한 존재다. 이주노동자들도 위험하다. 그/녀들은 민족국가의 영토에 거주하는 한 위험하며, 동시에 민족성과 자본주의 국가에 얼룩으로 살아가는 한 위험한 존재다. 단적으로 말해 이들은 존재 자체가 억압을 당하고 있으며 역으로 체제의 모순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이중적으로 위험한 존재들이다. 그런 까닭에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은 일종의 증상인 셈이다. 그/녀들이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성인들이 지배하는 전체 체계는 모순이 노출되어 자기 동일성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이들 위험한 청소년을 분류하고 관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추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월간 사람] [특집] 전환기의 청소년운동

[월간 사람] [특집] 전환기의 청소년운동

청소년운동에는 역사가 없다. 물론 과거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정리하고 해석하여 ‘역사’로 만드는 작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소년운동의 역사를 주제로 한 논문이나 단행본도 마땅히 없고, 청소년운동의 역사 구성이나 해석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 적도 별로 없다. 때문에 2006년, 청소년인권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를 만들었을 때 활동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 것이 ‘청소년인권운동 역사 연구’였다. 이 작업은 청소년운동의 역사를 정리하려 시도한 몇 안 되는 작업들 중 하나였지만 청소년운동의 주요 의제와 사건 그리고 흐름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것도 벅찼기 때문에 깊이 있는 역사 구성과 해석이 이루어지지 못했다(이 작업은 주간인권매체 <인권오름>에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는 글로 연재되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청소년인권운동 역사 연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198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 민주화운동 및 전교조 운동과 함께 진행된 ‘고등학생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해 2000년대에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청소년인권운동’이었다. 이 둘 사이에는 운동 조직과 인적 구성에서 분명한 단절이 있고 또 사회 상황의 변화에 따른 차이도 있다. 이 중 현재 청소년 활동가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이야기는 당연히

[월간 사람] [특집] 청소년 활동가들의 운동 안팎을 향한 투쟁

[월간 사람] [특집] 청소년 활동가들의 운동 안팎을 향한 투쟁

기록과 정리 한낱 |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 사회 배경내 |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 날짜와 장소 2011년 12월 17일, 인권재단 사람 2011년 12월 16일, 주민발의를 통해 제출한 서울학생인권조례안이 시의회 교육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심의가 미뤄졌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조차 시기상조를 운운하며 조례 통과에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추운 겨울부터 한 여름에 이르기까지 서울 시민 10만 명의 서명을 받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던 청소년 활동가들은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1)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다음날, 좌담을 위해 다섯 명의 청소년 활동가들을 만났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총 6개 권역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됐다. 이에 힘입어 교육청 차원에서 학생인권조례 혹은 유사 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번져 나갔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학생인권조례가 ‘착한’ 어른들의 선물이 아니라는 것. 그동안 청소년 활동가들이 인권운동의 의제로 꾸준히 학생인권을 주장해왔던 역사가 없었더라면 이러한 전국적인 흐름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청소년 인권운동에서 학생인권이라는 의제는 각별하다. 두발자유, 체벌금지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학생인권운동은 말 그대로 “학생도 인간이다.”라는 당연한 명제를 학교 안에 등교시키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렇다고 청소년 활동가의 인권활동이 모두 학생인권으로만

[월간 사람] [人터뷰] 이 여자, 홍유정

[월간 사람] [人터뷰] 이 여자, 홍유정

그녀의 방은 작았다. 문을 여니 침대 하나와 컴퓨터 책상과 의자, 그 사이는 두 사람이 서 있기도 비좁은 공간이었고 침대 위로 행거에 걸린 옷가지들이 빼곡했다. 그녀는 잠시 기다리라며 밖에서 커피를 내리는 듯했다. 엉거주춤. “그쪽에 앉으시면 돼요.” 그녀가 침대를 가리켰다. 그녀는 의자에 앉고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루에 두 번, 밥벌이로 조간과 석간신문을 돌리는 그녀가 일을 마치는 시간은 저녁 7시 30분. 트랜스젠더로 어릴 적에 집에서 쫓겨난 후 실종신고가 되어 주민등록이 말소된 홍유정 씨. 그녀는 지금 주민등록을 살리고 성별정정을 준비 중이다. 8시를 조금 넘겨 부천에 있는 그녀의 방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어릴 적에는 어디 사셨어요? “태어나기는 경기도 가평 신천리인가 하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들었어요. 어린 시절을 보낸 건 할아버지 할머니랑 용산에서. 용산을 고향으로 알고 있었죠. – 그럼,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크신 거네요. 왜 부모님이랑 같이 살지 않았나요? “음,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하나,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엄마 아빠 밑에서 자라고 키워지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명절날에나 찾아뵙는 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저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스포츠와 인권의 정치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스포츠와 인권의 정치

올해가 어떤 해냐고 물어보면 제 주변 사람들은 십중팔구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매우 중요한 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올림픽이 열리는 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군대에서 막 제대하고 맞은 여름방학에 저는 집에 가지 않고 학교 근처 형들이 모여 살던 자취방에 얹혀 지냈습니다. 한 달 정도 노가다를 해서 학비에 조금이나마 보텔 요량이었지요. 마침 애틀랜타 올림픽이 열리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새벽녘에 일어나면 형들은 눈이 벌게진 채로 티브이 앞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빈속에 일을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달랑 김치 하나에 물 말은 밥을 후다닥 해치우는 동안에도 형들은 티브이에서 눈을 뗄 줄 몰랐습니다. 다녀오겠다는 말에 고작 고개만 휙 돌려 “돈 많이 벌어와”라고 할 뿐이었지요. 작가가 되겠다고 늦깎이에 대학에 들어와서 방학 때 집에도 안 내려가고, 그 이름도 유치찬란한 ‘신춘돌격대’를 꾸린 뒤 창작에 열중하겠다고 굳은 맹세를 했던 형들에게 올림픽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올림픽이 정치권력의 선전수단이 되었다는 비판이 있은 지는 오래되었지요. 프랑스의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2004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1936년 베를린에서 ‘유대인 배척 올림픽’이, 1980년 모스크바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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