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월간 사람] [특집] ‘우리’가 아닌 ‘모두 함께’ 말하는 운동

[월간 사람] [특집] ‘우리’가 아닌 ‘모두 함께’ 말하는 운동

2011년 10월. 무슨 ‘활동가’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6년차. 한 곳에 진득하니 있지는 못했지만 점점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찾아가는 듯하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상근자로 시작하게 된 성소수자 운동은 성소수자의 인권과 관련된 환경이 얼마나 척박한가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가 꾸려지면서 우리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점점 더 명확해져갔다. 지금 현실에서 당장 필요한 것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해줄 수 있는 ‘법안’이었고, 법안을 만들기 위해 공동연대는 실태조사를 하고,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법안을 발의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기 시작했다. 일련의 상황들을 겪어나가면서 트랜스젠더 인권 이슈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는 와중에 ‘트랜스젠더 인권활동단체 지렁이’(아래 ‘지렁이’)를 만났다. 그리고 수많은 고민들이 시작되었다. 지렁이는 활동가 위주의 단체였다. 활동가들이 모여 최근에 불거지는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생각하고 진행해나가는 여타의 인권단체와 비슷한 형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신생단체였으니만큼 인원이 현저하게 적었다는 점? 혹은 활동가 대부분이 당사자였다는 점 정도? 지렁이 활동은 즐거웠고

[월간 사람] [특집] 99% 사람들과 평화를 일구며 산다

[월간 사람] [특집] 99% 사람들과 평화를 일구며 산다

나는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인가. 새만금, 대추리, 용산, 두리반 그리고 이젠 제주 강정마을. 어쩌자고 나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또 들어와 있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지금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제주말도 이젠 좀 알아듣고 마을 주민들의 얼굴도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 함께 먹는 밥이 맛있어서 착근 과정이 순조롭다. 사람들이 묻는다, 왜 또 강정까지 갔냐고, 언제까지 여기 있을 것이냐고. 나는 끝까지 있겠다고 대답한다. 끝이 언제가 될 지는 아직 나도 모르겠다. 행정대집행, 그 생생한 국가폭력 지난 7월 초 평화크루즈를 타고 강정마을에 처음 내려왔다. 당시 며칠 만에 서울로 돌아가면서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꼭 다시 오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올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언제 다시 내려올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만큼 상황이 복잡했었다. 나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으로 가는 희망의 버스를 조직하고, 공연을 기획하고, 잡년행진을 준비하고, 밴드 활동을 하고, 명동 마리에 다니면서 미뤄둔 글도 쓰고 ‘피자매연대’ 일도 해나가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순간,

[월간 사람] [특집] 누구를 위하여 촛불을 드나

[월간 사람] [특집] 누구를 위하여 촛불을 드나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수원역.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그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촛불문화제를 준비하거나, 문화제가 없는 날에는 선전전을 준비한다. 그 바쁜 사람들, 그들이 수원촛불 사람들이다. 수원촛불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추가개방에 반대하여 서울에서 촛불을 시작했을 때 즈음하여 수원에서도 같은 이유로 촛불문화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날이 5월 6일. 수원촛불이 탄생한 날이다. 이때는 미국산 쇠고기 추가개방에 반대하여 사람들이 모였지만 수원촛불은 이 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 언론악법, 일제고사, 재개발지역 철거문제, 공공부문 민영화, 장애인 이동권, 대학등록금 등 사회문제와 정리해고,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 갔다. 그에 대한 실천으로 서울에서 열린 각종집회는 물론 수원지역 활동가가 농성을 한 4대강 이포댐(보) 현장과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한일파카유압, 캐리어 등 파업현장에 노동자 지지방문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매주 수요일 수원역에서 수원시민들을 상대로 알리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수원촛불은 태동기에 수원지역 시민단체, 노동조합, 진보정당이 중심이 되어 탄생하였지만, 지금은 직장인, 대학생, 주부 등 많은 시민들이 시민단체 활동과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활동가들과 시민들 한쪽만 있었으면 지금까지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기

[월간 사람] [특집] 카페 마리에서의 연대를 다시 생각한다

[월간 사람] [특집] 카페 마리에서의 연대를 다시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가게 안으로 용역들이 밀고 들어왔어요. 용역들이 까만 옷 입고 왔으면 마음의 대비를 하는데요, 학생처럼 입고 왔어요. 앞에 세 명이 평상복 차림으로 먼저 들어오기에 연대온 학생인줄 알고 인사하려고 한 번 쳐다보았죠. 그래서 마음 놓았는데 신발을 신은 채 들어오더라고요. 뒤늦게 알았지만 그건 이미 늦은 거죠. 뒤따라 들어온 용역들과 함께 가게 안의 집기를 다 부수고 사람을 끌어내고, 용역들이 이불을 사왔는데 그걸로 가게 안의 사람들을 둘둘 말아서 뒤집어씌우고 건물 밖으로 모두 쫓아냈어요. 퇴직금 받아서 3천만 원을 갖고 엄마한테 돈을 빌리고 ‘마리’라는 상호로 카페를 처음 시작했어요. 그런데 2007년 무렵부터 재개발 얘기가 솔솔 나오면서 상권이 죽기 시작했고, 이 앞의 사거리를 기점으로 청계천 개발되고 나서 높은 빌딩들이 모두 재개발로 생겼어요. 그분들은 저희처럼 싸울 용기가 없었는지 다들 조용히 나가셨어요. 그러면서 어렵게 근근이 그래도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 땅을 하나씩하나씩 명동도시환경정비에서 매입을 하더니, 어디서 그런 든든한 자금줄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나서 재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된 거죠. 세입자들에겐 보상 얘기도 없고……. 재개발 집행 두 달 전부터 용역들을 상주를 시켰어요.

[월간 사람] [특집] 카페 마리에서의 연대를 다시 생각한다

[월간 사람] [특집] 카페 마리에서의 연대를 다시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가게 안으로 용역들이 밀고 들어왔어요. 용역들이 까만 옷 입고 왔으면 마음의 대비를 하는데요, 학생처럼 입고 왔어요. 앞에 세 명이 평상복 차림으로 먼저 들어오기에 연대온 학생인줄 알고 인사하려고 한 번 쳐다보았죠. 그래서 마음 놓았는데 신발을 신은 채 들어오더라고요. 뒤늦게 알았지만 그건 이미 늦은 거죠. 뒤따라 들어온 용역들과 함께 가게 안의 집기를 다 부수고 사람을 끌어내고, 용역들이 이불을 사왔는데 그걸로 가게 안의 사람들을 둘둘 말아서 뒤집어씌우고 건물 밖으로 모두 쫓아냈어요. 퇴직금 받아서 3천만 원을 갖고 엄마한테 돈을 빌리고 ‘마리’라는 상호로 카페를 처음 시작했어요. 그런데 2007년 무렵부터 재개발 얘기가 솔솔 나오면서 상권이 죽기 시작했고, 이 앞의 사거리를 기점으로 청계천 개발되고 나서 높은 빌딩들이 모두 재개발로 생겼어요. 그분들은 저희처럼 싸울 용기가 없었는지 다들 조용히 나가셨어요. 그러면서 어렵게 근근이 그래도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 땅을 하나씩하나씩 명동도시환경정비에서 매입을 하더니, 어디서 그런 든든한 자금줄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나서 재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된 거죠. 세입자들에겐 보상 얘기도 없고……. 재개발 집행 두 달 전부터 용역들을 상주를 시켰어요.

[월간 사람] [특집] 커다란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리다

[월간 사람] [특집] 커다란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리다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노래하는 저 뮤지션들은 누구인가?’ 한 뮤지션이 자신을 문화노동자라고 소개하고 멋진 노래와 함께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든 생각이다. 공연 기획에서 지출비용을 따지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고민하는 부분이 공연비 책정이다. 기획 초기부터 예산이 아주 적거나 아예 없을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언제인가부터 뮤지션과 같은 이들이 투쟁 현장에 참여하는 것은 연대라는 단어로 이야기되며 그 가운데 이들의 노동은 묻혀버렸다. 자본과 정부의 고용 정책이 결국 적은 돈을 주고 말 잘 듣는 노동자들만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자본이 인정하는 노동이 소수의 엘리트 노동이듯 투쟁 현장의 문화제에서 자본 또한 소수의 유명 인사에게로 집중되어 간다. 효과 대비 지출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문화제를 준비하는 당사자들에게서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노동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문화노동자’라는 뮤지션의 소박한 자기소개는 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노동자라 이야기하기도 하고 비정규직 예술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일까? 왜 스스로 예술가라고 하지 않고 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예술도 노동이다. 예술 작업을 하는 것도 재화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노동인데 예술은 노동으로

[월간 사람] [人터뷰] 땅 딛는 기쁨을 아세요?

[월간 사람] [人터뷰] 땅 딛는 기쁨을 아세요?

그녀는 너무 예뻤다. 신경질적으로 깡마른 몸이거나, 아님 정상적인 돌봄이나 관리를 받지 못해 너무 뚱뚱한 몸이 아닐까 하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긴 생머리에 갸름하면서도 선 고운 얼굴이 무척 앳되어 보이는 예쁜 여성이었다. 그 앳되고 예쁜 모습과 그녀가 전해 준 인생 이야기가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 나는 얘기를 듣다가 다시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 그랬다. “시설에 왜 들어가게 됐냐면 아주 어릴 때 사창가에 있었어요. 십대 때부터요. 거기에서 3년쯤 있으면서 돈도 많이 모았어요. 그런데 그 테두리 안에만 있으면서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니까 나가고 싶었어요. 열여덟 살부터 스무 살까지 그렇게 어린 나이니까 얼마나 나가고 싶었겠어요. 제가 있던 업소는 주인이 개업할 때부터 함께 고생한 사이여서 학대하고 착취하고 그런 건 없었어요. 그 집 딸내미가 있었는데 제가 에어로빅을 가르칠 줄 아니까 에어로빅장 차려서 같이 하자 그랬어요. 돈도 공평하게 나누고 하니까 큰 불만은 없었는데 나가고 싶은 거예요. 밖이 궁금했어요. 세상이 궁금해서 나간다 그랬더니 주인이 섭섭해 했어요.” 사창가라는 단어에 나는 낯이 화끈거렸다. 마음속에선 놀람과 궁금함이 파도를 쳤지만 그 단어를 아무렇지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길치를 위하여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길치를 위하여

“길을 잃는 것은 길을 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 다들 한 번쯤은 길을 잃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모태 길치’라 할 수 있는 저는 지금껏 무수하게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지리도 배웠고 군대에서 나름 독도법 책장도 넘겨봤는데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길을 잃습니다. 심지어는 거금을 들여 구입한 내비게이션을 떡하니 운전석 옆에 붙여놓고도 고속도로 IC를 잘못 타서 수십 킬로미터를 돌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시간 낭비, 돈 낭비, 체력 소모와 자괴감 정도지만 어렸을 적에는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섯 살 무렵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마침 저희 집 이삿날이었습니다. 다들 이삿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유난히 심심했을 저는 나 홀로 ‘수사반장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최고 인기였던 TV 프로그램 ‘수사반장’에서처럼 미행을 한 겁니다. 범인은 주인집 아주머니였습니다. 시장에 가려고 나서는 주인집 아주머니를 살금살금 눈치 채지 못하게 뒤를 밟았습니다. 어느 정도 갔을까, 어느 순간에 그만 어느 길목에서 아주머니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이리저리 둘러보게 된 거리는 참 낯설었습니다. 아주머니 뒤꽁무니만

[월간 사람] [특집]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도전

[월간 사람] [특집]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도전

1. 새로운 사회, 새로운 경제에 대한 요구의 등장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지난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글로벌 자본주의를 표방해온 전 세계 경제는 끝 모를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신자유주의의 종말 또는 폐기를 단정하기에는 다소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거대 자본에게 무한대의 기회를 주는 것이 전체 사회의 경제적 발전에 이롭다’는 낭만적 논리는 더 이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전통적인 방식의 국가개입정책, 즉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시장구조가 거대자본에 의해 재구조화되어 있어 재정지출 확대는 경기활성화가 아니라 자본집중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 미국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해 1조 달러가 넘는 공적재원을 투여하였는데 같은 시기 미국 대기업들의 현금 보유량은 1조 달러 이상 증가하였다. 정부가 돈을 풀면 그 즉시 모든 돈이 거대기업들의 금고에 쌓여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는다. 결국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의 충격으로 급속히 몰락하는 지역경제와 그로 인한 불안정한 고용과 만성화된

[월간 사람] [특집] 두 바퀴로 달리는 나눔과 보살핌의 공동체

[월간 사람] [특집] 두 바퀴로 달리는 나눔과 보살핌의 공동체

대전에서 지역화폐 운동이 최초로 소개된 것은 199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이미 외환 위기로 IMF 체제가 깊숙이 진행되던 때로 지역 주민 대다수가 두 가지 중요한 경험을 하던 시기이다. 하나는 당시까지 철석같이 믿어왔던 정부가 더 이상 국민들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속에서 호랑이임을 자처하던 기업도 이제 정글의 법칙 속에서 서서히 멸종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은행마저도 처참히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국민의 삶과 일터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정부와 기업이 모두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우리는 스스로 가능한 한 자립적인 삶의 토대를 마련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공생을 모색하는 소박한 생활 방식을 확립하려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지역화폐 운동을 하는 한밭레츠다. 1999년 10월에 본격적으로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해 다음해 2월 1일에 70여 명의 회원으로 창립한 한밭레츠는 ‘대전민들레의료생협’(2002년 4월)과 대안학교인 ‘대전 푸른숲학교’(2004년 4월, 현재 꽃피는 학교)를 만드는데도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그 후 해가 거듭할수록 안정적으로 발전해온 한밭레츠는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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