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자본은 월드컵 시민축제의 장에서 퇴장하라“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자본은 월드컵 시민축제의 장에서 퇴장하라“

"광장은 광고판이 난무하는 몇몇 언론과 자본의 장사놀음의 공간이 되어선 안 된다"며 "광장은 교육적인 공간이자, 시민들이 자기 몸이 생긴 대로 열정을 뿜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자본에 팔아 넘겨진 ‘광장’ 그리고 ‘거리응원’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자본에 팔아 넘겨진 ‘광장’ 그리고 ‘거리응원’

"자본과 언론매체의 진흙탕싸움에 붉은악마와 윤도현도 뛰어들어 거리응원을 열심히 더럽히고 있는 꼴은 참으로 가관인데, 서울시는 시청 앞 광장의 공공성과 역사성을 무시하고 이 공간을 기업들에게 내주어 돈 놀음 공간으로 전락"

[일일문화동향] ‘포스트월드컵’ 종합대책, ‘월드컵-국제화’ 명분

[일일문화동향] ‘포스트월드컵’ 종합대책, ‘월드컵-국제화’ 명분

'신자유주의 개방·경쟁 시스템 구축 시도' 우려 제기

[일일문화동향] [칼럼]모두의 축제가 되지 못한 월드컵 – 원(하자 작업장 학교 소속)

[일일문화동향] [칼럼]모두의 축제가 되지 못한 월드컵 – 원(하자 작업장 학교 소속)

월드컵 기간 중, 공교롭게도 한국 축구팀의 경기가 있던 날마다 나에게도 매번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때문에 터져 나오는 함성의 정도에 따라 골이 들어갔다, 아니다를 점치고, 간간이 현재 스코어 몇 대 몇인지를 확인하며 힘든 회의와 수업을 이어갔었다. 축구 경기를 보는 것도 아니고 안 보는 것도 아닌 이런 상황도 힘들었지만,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을 뒤덮은 야릇한 흥분의 열기와 붉은 티셔츠들의 거친 움직임을 헤치며, 붉은 악마가 되고 싶지 않지만 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괴로웠다. 실제로 나는 붉은 옷을 입지 않았고 게다가 통화 중이었음에도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넓적한 손바닥(아마 하이파이브를 하려고)을 순간 공격의 뜻으로 판단, 날렵하게 허리를 숙여 피한 적이 있는가하면 같은 방향이면 태워주겠다는 차들을 수없이 물리친 후 꾸물대는 버스를 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날이 축구 전문 신문이 되어가던 우리 집 신문 구석에서 “조심! 붉은 늑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월드컵대회 길거리응원을 마치고 귀가하던 10대 여성들을 꾀어 차에 태운 뒤 성폭행”한 두 명의 남성과

[주간노동자의 힘] [과학시평]대~한민국의 순간, 1987년 6월 투쟁의 블랙아웃?

[주간노동자의 힘] [과학시평]대~한민국의 순간, 1987년 6월 투쟁의 블랙아웃?

최형록(계간 진보평론 편집위원) 2002년 6월22일. 영등포구청 방향에 있는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한 사나이가 나왔다. 지하철역까지 평소처럼 걸어간다. 오후 4시경의 거리. 마치 정물화 한 폭을 감상하는 듯 하다. 정겨운 친구 같은 바람과 악수하는 나무들 그리고 뛰는 듯 걷는 듯 들뜬 아이들처럼 노니는 참새들이 거의 유일하게 그 사나이가 지금 정물화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저녁 8시50분 경 광화문에서 종로방면으로 걸어간다. 그 사나이는 ‘붉은 무리’, ‘적색 환희’ 속에서 이방인이다. 그 사나이의 뒤통수 아래 자리 한 ‘전용극장’인 후두엽(시각중추)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장면들이 오버랩(겹침)된다. 하나는, 대~한민국을 연호하고 태극기를 휘두르는 ‘붉은 물결’과, 자본 사이의 경쟁에서 패배해서 문을 닫게 된 종로서적 일대의 폭죽소리. 또 하나는, 1968년 5월 파리에서 인터내셔날가를 부르면서 적기를 휘두르는 형형색색의 대중과 화염병을 던지는 ‘붉은 여성’, 그리고 1987년 6월 최루탄과 전경의 곤봉에 쫓겨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까지 올라간 김에 남산타워에서 ‘의연한 야경’을 바라보는 사나이의 장면이다. 6월22일 오후 4시경부터 10시경까지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공간에서 이 ‘붉은 악마’들과 그 사나이의 역사적 ‘체험’은 이질적인 것이다. 이 사나이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ET)로 찍어보면

[주간노동자의 힘] [TV비평]월드컵 파노라마

[주간노동자의 힘] [TV비평]월드컵 파노라마

김상태(노동자의 힘 회원) 차라리 파시즘 치하에 동원된 티브이 방송이었다면 모든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한 방송의 존재 이유와 형식은 명백한 것이다. 그것은 집권자들과 지배계층의 대국민 선전과 이데올로기 교육, 허위의식을 통한 우민화, 맹목적 집산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히틀러 치하의 베를린 올림픽 개최와 방송보도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는 현실이나 방송의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로지 지배계급의 권력강화와 사회통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방송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방송이 월드컵을 중계하고 연관된 뉴스를 다루었다면 그 내용과 형식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남한 사회의 방송은 이것과 많이 다른가?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은 사이비 의미체계의 거짓된 덧칠이다. 월드컵 기간 중 모든 방송은 벌어진 일체의 사건이 국민적 애국심과 시민의식과 한 민족의 아름다운 공동체의식의 발로이면 국가대표팀의 4강 진출과 7백만 국민의 질서정연하고 열렬한 응원은 국력과 위대한 국민성을 만방에 과시한 것이며 이는 결국 국민 단합과 경제적 이득 및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미친 듯이 떠들어댔다. 참말이지, 대체 무슨 일이 생겨났건 사실이 정말 이렇다면 춤이라도

[다산인권] ‘월드컵 열기’ 제대로 보기

[다산인권] ‘월드컵 열기’ 제대로 보기

김삼석 (군사평론가/수원신문기자)

[사회당 기관지] 월드컵의 그림자

[사회당 기관지] 월드컵의 그림자

골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 골 문 너머의 사람들

[사회당 기관지] 월드컵, 초국적 기업간의 격돌

[사회당 기관지] 월드컵, 초국적 기업간의 격돌

노동 착취로 월드컵 후원금 내는 기업들

[사회당 기관지] 월드컵, 게임의 법칙은 따로 있었다

[사회당 기관지] 월드컵, 게임의 법칙은 따로 있었다

FIFA, “우리에게 축구는 상품일 뿐”

기사 9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