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

[2신] 희망버스, 김진숙을 만나다

[2신] 희망버스, 김진숙을 만나다

밤 12시, 서울, 수원, 광주, 평택, 전주, 순천 등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희망버스가 부산 영도대교를 건너 봉래사거리에 멈춰섰고, 1000여명의 참가자들은 한진중공업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새벽 1시 마침내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용역들과 경찰의 허를 찌르는 기습 작전에 돌입했다. 85크레인 주위의 담벼락에 사다리가 설치되고 머뭇거림도 없이 사다리를 넘어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진중공업 정문 \’남호산성\’ 출입 봉쇄

한진중공업 정문 \’남호산성\’ 출입 봉쇄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정문 앞은 컨테이너와 용역 직원들에 의해 완전히 봉쇄됐다. 한진중공업은 이것도 불안했는지 컨테이너를 용접하고 컨테이너 뒷쪽으로 발판을 대고 용접했다. 일명 남호산성은 한진중공업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김진숙’을, ‘한진중 노동자’를, ‘희망의 버스’를 지켜주세요

‘김진숙’을, ‘한진중 노동자’를, ‘희망의 버스’를 지켜주세요

우리가 서울에서 마지막 ‘희망의 버스’ 진행팀 회의를 하는 동안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1분전, 5분 전, 10분 전으로 끊임없이 올라오는 현장의 소리, 아비규환의 소리다. ‘희망의 버스’가 뭐라고, 7개월여 째 답 없이 절망의 나날을 보내왔던 현장의 노동자들이 다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평생 자랑스럽게 배를 만들었던 동료들이, 한진의 가족입네, 산업역군입네 치켜 올려지다가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렸습니다. 먼저 가신 두 분 열사의 꽃 같은 목숨으로 간신히 받아낸 약속, ‘단체협약’이 휴지처럼 내팽개쳐지고, 평생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깃발이 되었습니다.

부산지노위 노동자위원 무기한 천막농성 돌입

부산지노위 노동자위원 무기한 천막농성 돌입

부산지노위 노동자위원들은 18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지난 6일 부산지노위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구제신청 기각 결정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170명과 그 가족을 사지로 내몬 살인행위\"라며 부산지노위 배석도 위원장 사퇴와 공개사과를 촉구했다.

한진중노조, 87일만에 17호 크레인 고공농성 풀어

한진중노조, 87일만에 17호 크레인 고공농성 풀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 17호 타워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여온 채길용 한진중공업지회장과 문철상 금속노조부산양산지부장이 11일 저녁 고공농성 87일만에 농성을 풀고 내려왔다.

85크레인 고공농성 100일 날, 김진숙 동지의 노래를 듣는다

85크레인 고공농성 100일 날, 김진숙 동지의 노래를 듣는다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지고 등 보이며 돌아선 조합원들을 품는 85크레인 고공농성 100일은 떠나간 조합원들이 다시 돌아오는 문 앞에 밤 낮으로 켜진 정성스런 몸짓이었다 이 정성스런 몸짓을 통해 새로운 인간의 계절풍이 불 것이다

크레인 농성 100일째, 한진중공업 사람들

크레인 농성 100일째, 한진중공업 사람들

2009년 임직원을 포함한 종업원 수가 2500명이던 것이 2011년 현재 1500명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 관리 파트 종업원들은 자진이나 권고 형식으로 회사를 떠났다. 2009년 1500명이던 조합원 수는 지금 850여 명이다.

크레인 고공농성 96일, 김진숙의 절규

크레인 고공농성 96일, 김진숙의 절규

조합원들과 해고자 사이의 단절을 막아내고 이들의 튼튼한 단결을 세워내려는 김진숙 지도위원은 자신의 전 생을 다해 절규했다. 자신의 전 생을 다해 천금 같은 동지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마지막 살아남은 사람, 그녀는 김진숙입니다

마지막 살아남은 사람, 그녀는 김진숙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섯인데, 안타깝게도 넷은 죽고,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이는 지금 그중 한 명이 올라가 목을 맸던 가파른 크레인 위에 올라 있다. 오늘로 81일째다. 며칠 전 추도시를 읽을 때 내 안에서, 나 대신 함부로 내 글을 뺏어 읽던 이. 김진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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