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과하러 온줄 알았더니
지난 12일 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이 민주노총 농성장을 찾았다. 컨테이너 농성장이 강제침탈당한 지 5일만이다. 그러나 한 비서실장이 농성장에 나타나 꺼낸 이야기는 기대했던 ‘사과’가 아니었다.
한실장은 “대통령께서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다고 걱정하셔서 직접 현장을 찾아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왔다”고 말문을 연 뒤 농성장 침탈과 관련해서는 “나중에 보고를 받아 알게 됐는데 매우 불행한 사태”라고 밝혔다.
이에 단병호 위원장은 “사과를 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마치 ‘위로방문’이라도 온 듯한 태도”라며 “이번 사태는 현정부가 전면적으로 물리력을 동원해 노동자를 탄압하겠다는 공식적 선언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만약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당장 공식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 비서실장은 “내가 정부입장을 밝히는 것은 월권”이라며 “이번 사건에 정부가 개입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오해”라고 이야기를 돌렸다. 게다가 함께 온 조한천 국민회의 노동위원장은 “나중에 들어보니 영등포경찰서장이 오가다 보니 미관상 좋지 않아서 치웠다고 하더라”고 말해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민주노총 지도부의 분노를 돋구었다.
비서실장이 농성장에 와서 “그래도 이 정권에서 합법화되지 않았냐”고 생색을 낸 데서도 확인할 수 있듯 민주노총 지도부의 농성장을 일개 경찰서장이 재량껏, 그것도 ‘미관상 좋지 않아’ 강제철거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일임은 자명하다.
결국 이날 비서실장은 삼미특수강 노동자를 비롯한 농성자들의 “김대중정권 퇴진하라”는 구호를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렸고, 그 모습에서 이번 방문 역시 ‘현장을 직접 찾아 대화하려고 노력했다’는 또하나의 ‘생색내기’용 제스춰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이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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