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음악대학 교수들의 입시비리 사건이 어김없이 반복되는가 하면 토목·건축과 교수들이 대형공사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금품을 받고 점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대학의 타락’을 걱정하게 하는 일들이 잇따라 불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타락은 몇몇 교수들의 개인비리 차원에서 다뤄질 문제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립대학이 교육기관 본연의 이념을 실현하기보다는 장삿속을 채우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사립대학의 내년도 등록금이 최고 15%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고된 가운데 학생들은 그 타당성에 대해 강력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학 등록금은 과연 적절히 쓰이고 있을까.
등록금 인상 요구하며 몇백억씩 적립
국민회의 설훈 의원이 교육부와 대학들로부터 제출받은 대학 교육여건 및 재정운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98년 결산 기준으로 102개 사립대학 가운데 교육비 투자가 학생들한테 거둬들인 등록금 총액보다 적은 곳이 64개 대학(62.8%)에 이른다. 나머지 등록금은 법인이나 대학의 자산을 늘리거나 부채를 갚는 데 사용되고 있다. 결국 학생들은 피땀어린 등록금을 내고도 그만큼의 교육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동양대, 동서대, 세명대 등은 각각 등록금의 52.9%, 51.8%, 49.3%를 교육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부분에 투자하는 등 25개 대학에서 등록금의 20% 이상을 교육과 거리가 먼 용도에 사용했다. 이들 대학은 대개 등록금 의존율이 80%를 넘고 있다. 학교운영을 등록금에만 의존하다시피 하면서 그나마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않고 있는 것이다.
등록학생의 10% 이상을 학비감면하도록 한 규정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대학도 18곳에 이른다(표1 참조). 분석작업을 맡은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은 “이들에게 과연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교육에 쓰이지 않는 등록금은 결국 대학재단들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고 있다. 재단자산이 늘어난 95개 대학 가운데 자산취득 비용을 재단이 100% 부담한 곳은 4개 대학(4.2%)에 불과했다. 반면 45개 대학(47.4%)에서는 재단이 단 한푼도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다. 건국대는 180억원의 자산이 늘어났는데도 재단 부담은 0원이었으며, 계명대는 68억원의 자산증가에 재단이 부담한 돈은 70만원뿐이었다. 이들 45개 대학의 경우 재단이 학교에 낸 전출금 총액과 학교회계에서 부담한 자산증가 비용을 비교해보면, 42곳에서 전자보다 후자가 더 컸다. 연세대의 경우 재단에서 학교에 경상운영비 등 194억원을 전출한 반면 자산증가에 따른 비용 451억원을 모두 학교에 부담시켰고, 고려대는 36억원을 전출한 반면 자산증가 비용 284억원을 학교에 부담시켰다. 신라대 경성대 등 6개 대학은 재단전출금을 한푼도 내지 않으면서 자산증가 비용을 모두 학교에 떠넘겼다.
더욱이 많은 대학들은 재정이 부족하다며 국고보조금 증액과 등록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면서도 학교예산에서 몇억∼몇백억원씩 예산을 적립하고 있다. 등록금의 일부를 자산증가 비용으로 충당하고도 남아도는 돈이 있다는 얘기다. 사립대학의 적립금은 지난 96년 1조3827억원에서 98년 2조2138억원으로 늘어났다. 2년 동안 1조원에 가까운 돈을 모은 것이다.
98년 현재 적립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대학은 이화여대(2998억원), 한양대(1692억원), 덕성여대(1671억원), 연세대(1424억원), 경희대(984억원), 조선대(914억원), 청주대(799억원), 서강대(629억원), 홍익대(593억원), 동국대(582억원) 순이다.
특히 구제금융으로 휴학생이 급격히 느는 등 대학사회가 몸살을 앓던 지난해에만 4455억원의 적립금이 재단과 대학의 금고에 쌓였다. 연세대가 699억원을 적립한 것을 비롯해 이화여대(336억원), 한양대(250억원), 청주대(225억원), 조선대(215억원) 등 14개 대학이 100억원 이상씩 돈을 모았다. 적립을 하지 않거나 적립금을 인출한 대학은 29곳(27.9%)에 그쳤다.
국고보조금도 ‘부익부 빈익빈’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같은 기간 교육에 대한 직접적 투자는 사실상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구비는 73억원이 늘어나는 데 그쳐 증가율(1.6%)이 전년도(20.7%)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졌다. 기자재 구입비와 교원확보율은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실험실습기자재 구입비는 100억원 가량이 줄었다. 대학이 적립금에 욕심내지 않고 장학금과 연구비 등을 늘렸다면 학비가 없어 휴학해야 했던 상당수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연구기능 활성화를 통해 구제금융 사태 극복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은 교육여건이 개선되지 않은 채 등록금을 인상하려는 대학들의 움직임에 맞서 등록금 인상철회 투쟁을 벌이겠다는 태도다. 고려대 한양대 등 전국 30여개 대학 총학생회장 당선자들은 지난 12월8일 한양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당국이 등록금 인상을 고집할 경우 등록연기 등 실력저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가 ‘GNP 대비 6%의 교육재정 확충’이라는 대선공약을 폐기한 채 2000년 교육재정을 4.3%에서 4.2%로 줄인 것은 교육파탄의 결정판”이라며 “등록금 인상으로 생계에 허덕이는 민중이 자식 교육마저 포기해야 할 위기를 맞게 됐다”고 주장했다.
교육재정 확충과 함께 사립대에 대한 국고지원 방식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지금까지 정부의 국고지원 결과를 분석하면 이른바 명문사립대와 지방의 대규모 사립대에 국고보조금이 편중지원돼 대학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고보조금을 가장 많이 받은 20개 대학 가운데 한양대 고려대 연세대 경희대 이화여대 영남대 동아대 조선대 동국대 홍익대 등 10개 대학은 적립금 액수로 20위 안에 들어 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쪽은 “재단이 대학운영비의 총액에 해당하는 수익용기본재산을 확보하고 그 수익의 80%를 대학에 전출해야 한다는 ‘대학설립·운영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사립대학의 자율권을 확대하되 그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반드시 책임을 묻을 수 있도록 법·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월8일 서울대 총동창회로부터 명예회원 추대패를 받은 이순옥·김선용씨는 삯바느질 등으로 평생 모은 재산 10억원씩을 아무런 조건없이 서울대병원에 출연했다. 사립대학 운영자들은 이들의 마음가짐을 깊이 되새겨볼 일이다.
– 박용현 기자(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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