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흐름] 사원 기살리기 기업이 뛴다

현대건설 기획팀 김연일(45) 차장은 요즘 어느 때보다 훈훈한 분 위기에서

연말을 맞고 있다.

그는 오는 27일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지은(11)양과 아들 태규(1 0)군의 손

을 잡고 회사에 출근한다. 회사가 외환위기로 고생한 임 직원 가족들을 위로하

기 위해 마련한 자녀초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날 회사 업무도

보지 않는다. 아이들과 강당에 서 신비한 과학의 세계를 탐험하고, 회사가 제

공하는 점심도 같이 먹을 예정이다. 백일장 행사에서 뽑힌 어린이들에게는 컴

퓨터 등 푸짐한 선물도 주어진다.

그뿐 아니다. 가족들은 30일부터 내년 1월2일까지 3박4일의 금강 산 여행을

갈 계획으로 꿈에 부풀어 있다. 회사쪽이 부서장급 이 상 간부와 가족들을 초

청해 금강산에서 새 천년의 시작을 맞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만에

제대로 아빠 노릇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현대건설은 구제금융 이후 한때 회사에 대한 신뢰감이 흔들렸던 임직원과

가족들에게 `현대가족’이라는 일체감을 다시 심어주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

다. 예전처럼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사라졌 지만 직원들간의 융화와 단결, 그리

고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경영 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

이다.

현대건설뿐 아니다. 많은 회사들이 지난 2년 동안 고용불안과 임 금삭감에

찌들리고 짓눌린 종업원들의 마음을 다시 추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고

경영자들이 사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가 하면,

사내 단합대회를 열거나 직원 들의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하고 처리해주는 경우

도 눈에 띈다.

지난해 9월 장기신용은행과 합병한 국민은행은 합병으로 인한 후 유증을 완

전히 털어내고 새 천년을 맞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계획 중이다. 먼저 직원과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가요제전을 준비하 고 있다. 내년 초부터 지역본부별

로 예선을 벌인 뒤 서울에서 본 선을 연다는 계획이다. 내년 2월1일 창립기념

일을 전후해서는 직 원과 가족, 고객들을 초청하는 창작악극 순회 공연도 준비

하고 있 다. 해마다 1~2차례씩 체육대회를 여는 데 그쳤던 이전의 사내 행 사

와는 내용과 의미가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엘지정보통신의 서평원 사장은 지난 6월부터 격주로 사원들에게 이메일을

띄우고 있다. 자신의 개인 이야기나 회사를 경영하면서 느낀 점, 그리고 사회

적인 쟁점들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담아 보 내면 사원들이 다시 답장을 띄우는

형식으로 최고경영자와 사원들 사이에 자연스런 의사소통을 이뤄내고 있는 것

이다. 이 회사 박 형일 차장은 “사원들이 자신의 장래 포부를 사장에게 직접

이메 일로 띄우는 경우도 있다”며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장래

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몇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사라졌던 직원 동호회 을 서서히 재개하고 있다. 대우증권은 지난 10월부터 사 내 동호회 활동에 대

한 자금 지원을 시작했으며, 이달부터는 사내 전산망에 `고충처리방’을 개설

해 직원들의 고민 해결에 적극 나 섰다. 국민은행도 그동안 중단했던 직원들의

동호회 지원을 내년 부터 재개할 예정이다. 한일·상업 합병 은행인 한빛은행

은 올해 들어 1인당 3만원씩 회식비를 지원해가면서까지 매달 부서 단합 대

회도 열도록 하고 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예전의 대우 계열사들도 불안해 하는 직원들 추스르기

가 중요한 현안이다.

대우증권은 지난달 6~7일 경주에서 전직원이 참여하는 단합대회 를 열었다.

대우그룹에서 분리해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직원들 의 사기를 북돋우고 앞

으로의 비전을 공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 이다. 내년 1월부터는 과장과 대리

급으로 구성된 미래경영위원회 를 발족시켜 경영 현안에 대한 사원들의 의견을

경영전략에 반영 할 계획이다.

대우전자도 마찬가지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인원과 조직을 축 소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장기형 사장은 오히려 전국의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끌

어안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의 경영 현 황과 장래 비전을 설명함으로써 직

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하루 빨리 경영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대우전

자 관계자는 “회사 가 어려워진 이후 600여명이 자리를 옮긴 상황이어서 무엇

보다 남 아 있는 직원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 99년12월19일18시37분 한겨레 http://www.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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