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대에 이르는 주한미군이나 미군속과 그 가족이 운전하는 차량이 사실상 무법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특히 미군 관련 차량들이 잦은 사고를 내고 있음에도 한국쪽에 불리한 주둔군지위협정(SOFA) 때문에 사고조사와 배상 과정에서 경찰과 피해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들 차량들에 대해선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범칙금 부과 등의 제재 수단이 없어 경찰은 사실상 단속을 포기한 상태다.
지난 20일 오후 5시30분 서울 용산구 용산가족공원 앞에서 미군속 자녀 2명이 관련된 3중 추돌사고가 일어나 김아무개(31·여·대학원 박사 과정)씨가 중태에 빠졌다. 그러나 경찰은 사고발생 18시간이 지난 지난 21일 오전까지도 사고가 추돌인지 충돌인지 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용산경찰서는 사고 직후 현장에 출동했으나 사고 당사자인 디온 존슨(17)과 윌리엄 코너(17)가 주둔군협정에 따라 미군 헌병에 인도되는 바람에 기초조사를 벌이지 못했다.
무면허운전 피의자인 존슨과 코너는 21일 낮 부모와 미군 헌병을 데리고 뒤늦게 경찰서에 나타나 “한국인 여성운전자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해 사고가 났다”고 주장하고 1시간여만에 되돌아갔다.
김씨에 대한 조사는 중상을 입어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난 22일에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용산서 관계자는 “미군쪽 사고 관계자들이 이미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높아 김씨의 진술을 받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군쪽이 관련된 교통사고는 용산서 관내에서만 한 달 평균 10여건, 서울과 경기지역에서는 하루에도 서너건씩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그 때마다 제대로 기초조사를 벌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미군쪽의 가해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배상과정이 까다로워 피해자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7일 새벽 2시40분 경기도 의정부시 사패터널 입구 갓길에서 미군 차량이 정차해 있던 승용차를 들이받아 한국인 두 사람의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미군쪽은 자신들의 과실을 인정했으나 이미 1000만원을 넘어선 치료비조차 지급하지 않고 있다.
현행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르면 미군쪽 과실로 한국 민간인이 피해를 입으면 한국쪽 배상심의위원회에 배상신청을 하고 한국쪽 배상심의위원회는 손해배상액을 산정해 다시 미국배상사무소에 통보하도록 돼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이소희 간사는 “절차가 복잡해 배상을 받는데 길게는 2년이상 걸리고 배상수준도 사실상 미국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어 실제 피해액의 절반 이상을 받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군쪽의 잦은 사고에도 미군 관련 차량에 대한 교통법규 위반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용산서 등 일선 교통경찰관들은 불법 좌회전 등 갖가지 불법운전을 하고 있지만 범칙금 부과 효과가 없어 단속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상당수 미군 관련 차량은 국내 행정당국에 등록조차 돼 있지 않아 범칙금 부과가 불가능한데다, 서울지역의 경우 5000여대의 미군 관련 차량이 구청에 등록돼 범칙금 부과가 가능하지만, 납부율은 10% 미만이다.
용산서 교통과의 한 간부는 “범칙금을 물리더라도 납부를 거부하면 다른 행정처분을 내릴 방법이 없다”며 “운전자들은 난폭운전을 하는 미군 차량에 대해서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안영춘 기자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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