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현장탐방> 도마 위 오른 중소노조 전임자를 찾아서 – 구로공단 엘
코코리아 노조
-“영세사업장에선 전임자가 곧 노조입니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를 두고 노사간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대체로
정부여당은 이 문제를 시행령에 ‘전임자수 상한선’을 마련하는 정도에서 마
무리했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노사는 각기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펄쩍’ 뛰고 있다.
노동계는 이같은 발상 자체가 노사자율의 정신에 맞지 않다는 것과 함께
이렇게 될 경우 노동계의 ‘개미군단’이랄 수 있는 중소규모 노조의 존립 자
체가 불가능하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2일 한 소규모노조의
전임자와 만났다. (활자체 작고 틀리게)
*조합원 51명, 월조합비 70만원에도 투쟁기금 적립
구로공단. 가리봉동 전철역 구내에서 2공단쪽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 보면
주변으로 크고 작은 공장들이 늘어서 있다. 알듯 말듯한 간판들을 잠시 훑
어가다보면 모피로 유명한 진도패션 건물이 나오면서 잠시 반가워(?)진다.
기자의 행선지인 ‘교세라 엘코코리아노조’가 바로 그 뒤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회사 본관 2층에 자리한 노조사무실 문을 열자, 노란 작업복 차림의 김진
태 위원장(36세)이 반갑게 맞았다. 서너평 남짓, 넓다고는 할 수 없는 공간
이었지만 소형 히터 하나로는 아무래도 역부족인 듯 실내공기가 쌀쌀했다.
대뜸 테이블위에 겹쳐져 있는 2개의 일간지가 눈에 들어왔다. 웬만한 대기
업 노조에서 볼 수 있는 일간지 잡지뭉치들과 대비되는 모습에 노조 살림살
이가 궁금해졌다.
“마치 친목계 같습니다. 조합원이 51명밖에 안되다 보니 한달 조합비래야
70만원 안팎입니다. 기본급의 2%를 조합비로 떼고 있으니, 조합원들 입장에
서는 결코 적은 부담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 돈으로는 사실 위원장 전임수당과 판공비, 상급단체 의무금을 제하고
나면 경상비에도 빠듯한 실정. 그러나 노조는 여기서 매월 10만원을 뚝 떼
내 투쟁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었다. “적자 안내려고 노력하다보니 간부, 대
의원들이 수련회라도 할라치면 영락없이 1∼2만원씩 갹출해야 하는 실정입
니다”
*”전임자수 제한하면 중소노조 다 죽습니다.”
전임자수 상한제 얘기를 꺼내자 김 위원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직접적인
대답대신 그는 과거에 이 노조에서 시도했던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전임
자 임금지급을 위한 노조기금 마련’이 그것이었다. 즉, 노조원들이 매월 일
정금액을 납입해 기금을 조성하고 2002년 1월부터는 그 이자로 임금을 지급
하려 했던 계획이었다.
“도저히 안돼더라구요. 이론상으로는 가능했는데, 현실적으로 안돼요. 회
사를 옮기는 사람도 있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박봉에 조합비에다 기
금까지 낸다는 것도 무리였구요. 특히 요즘 금리로 치자면 적어도 2억 이상
은 모아야 되는데, (웃음) 1년 조합비가 천만원이 안돼요”
취재 중간에 조합간부들이 들어왔다. 모두 오전 휴식시간을 이용해 사무
실을 찾은 것이었다.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현장일과 조합일을 함께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전임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임자가 있어야 업무도 실질
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비상근으로는 조합 일에 몰두할 수 있
는 환경이 안돼요”
이들에게 물었다. “전임자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문현답’이라고 했던가? 조규주 조통부장이 핵심을 찔렀다. “소규모 노
조에서는 전임자 한 사람이 곧 노조입니다. 당연히 노조는 죽는거죠”
이야기가 무르익으려는데 갑자기 간부들이 시계를 쳐다보더니 “작업시간
시작됐다”며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 전임자의 일상활동, 과연 노조만 좋은가?
김 위원장이 또 재미있는 얘기를 꺼냈다. “한번씩 혈기왕성한 조합원들이
술 먹고 사고치는 경우가 있어요. 새벽잠 설치고 경찰서로 달려간 적도 많
습니다” 노조원들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일을 노조위원장에게는 편하게
털어 놓는다고 했다. 또한 조합원의 경조사가 있으면 전국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가는 것이 위원장의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 노조가 제 기능을 하기 위
해서는 바로 이같은 일상활동이 가능한 여건이 조성돼 있어야 하고 그것이
전임자가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라는 말이다.
금속노련 한 간부의 도전적인 말을 빌려보자. “백보를 양보해도, 전임자
는 꼭 필요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전임자 임금 가지고 직원
한 명 더 충원한다고 해서 전임자가 해 왔던 노조원들의 고충처리, 산안활
동 등 온갖 일상활동을 해낼 수 있다고 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 “유급 노조활동시간 늘리는 투쟁 나선다”
지난 94년 설립 이후 6년간 세 차례의 파업 등 진통을 겪긴 했지만, 노조
설립 이후 이직률이 떨어지고 회사 경영에 대한 직원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는 엘코코리아 노조의 당면과제는 증가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대응과 회사의 일방적인 인사고과에 의한 성과급 차등지급
등 두 가지. 김 위원장은 이 문제를 가지고 내년에도 바쁜 한 해를 보내게
될 것 같았다.
취재 끝머리에 그가 내뱉은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된다면, 그때부터 우리 노조는 매월 44시간으로
돼 있는 현행 ‘유급노조활동 시간’을 100시간이든 200시간이든 늘려나가는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자] 정현민 기자
[출 처] 센터
[발 행 일] 1999.12.23
[발 행 처] (주)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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