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합법화시대’ 무엇이 달라지나-(4)재정사정

국고보조금 ‘뜨거운 감자’인가

“세금인데 제대로 쓰면 그만”…”자주성·투쟁성 흠집 우려”

민주노총은 그동안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려왔다.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상근자 임금마저 체불되기 일쑤일 만큼 운영비 조달에 어려움이 있었고, 사업비 또한 긴축에 긴축을 거듭해왔다. 심지어 돈이 없어 투쟁을 포기하거나 규모를 줄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예·결산을 다루는 대의원대회 뿐만아니라 주요투쟁을 앞둔 회의에서는 재정안정방안이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돼왔다.

합법화를 계기로 적잖은 조합원들이 이같은 재정난에 어느 정도 숨통이 틀일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다름 아닌 국고보조금을 염두에 둔 것이다.

노동조합이 정부로부터 국고보조금을 지원 받는 문제는 그간 노동운동진영 내부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국고보조금이란 사실 국민의 세금이어서 노동조합이 이를 신청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며,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찬성론이 있는 반면에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도 대정부투쟁을 변함없이 전개할 수 있겠느냐, 돈을 받는 순간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과 투쟁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반대론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민주노총 중앙이 2000년 정기국회 이전까지 노동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2001년부터 국고보조금 지원이 가능하다. 이를 앞두고 국고보조금과 관련된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6∼97년 노동법개정 총파업 이후 민주노총이 실세조직으로 인정되면서 몇몇 지역본부나 지역협의회는 포항시협을 시작으로 이미 사무실이나 사업비를 지자체한테서 지원받아 왔다. 포항시협에 따르면 그해 지자체 선거에서 (구)민주당의 박기환 후보가 예상을 깨고 시장에 당선되면서 사무실 임대를 추진했다는 것이다. 보수기득권층을 중심으로 ‘불법조직에 건물이 웬말이냐’는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신축 근로자복지회관 무상임대가 결정됐다. 당시 포항시협은 적당한 장소와 가격에 건물을 임대하기 어려웠던 현실적인 이유와 함께 치열한 내부토론을 거쳐 ‘사무실을 지원받더라도 정부와 자본에게 휘둘릴 것은 없다’는 결론를 내렸다고 한다.

이듬해 98년 5월에는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충북본부, 울산본부가 노동절 행사보조비를 지자체한테서 지원받았고, 합법화 이전까지 서울과 부산, 대구지역본부를 빼고는 대부분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지원된 명목을 살펴보면 노동절 기념 문화제, 어린이날 행사, 부당노동행위상담센터,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체육대회, 노동상담소운영비 등 다양한 편이다.

이에 따라 지난 해 하반기 민주노총은 중앙위를 통해 ‘사업비 및 사무실 입주 지원을 중심으로 투명성이 담보된다면 각 지역본부별로 지자체의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고 지자체 지원비에 대한 방침을 정리하게 됐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지자체의 지원은 사실상 ‘초법적’ 조치였다. 어떤 지자체 조례도 ‘법외단체’에게 지자체 재산을 무상대여하거나 사업비를 제공하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각 지자체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민주노총 지역본부나 지구협의회라는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 역시 세력관계에 좌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행정적인 문제까지 말끔했던 건 아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사업예산 지원을 요구했을 때 전북도청 “법외단체라 정식예산 편성은 안된다”며 ‘재량사업비’로 지원예산을 편성해 시혜를 베푸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합법화 뒤 상황은 일변했다. 전북본부 임효준 조직부장은 이와 관련해 “정식예산 책정을 요구했더니 예전과 다르게 수정예산으로 올리겠다고 대답했다”며 “달라진 세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지자체한테서 단 한번도 지원을 받은 적이 없는 서울본부와 부산본부도 지자체쪽과 사무실 문제 등을 논의할 계획을 갖고 있다. 강한규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대의원대회에서 내년도 사업계획안에 부산시와 접촉하게 될 실무교섭단을 꾸리고 교섭요구안을 공식화했다”면서 “교섭은 무엇보다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단위노조에서 교섭하는 것과 같은 형식을 취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국고보조금 지원은 민주노총 중앙에도 현실적인 고민거리로 다가와 있다.

노동조합에 지원되는 국고보조금은 노동부 노동조합과를 필두로 기획예산처를 거쳐 국회 환경노동위와 정기국회를 통과하는 절차를 밟는다. 한국노총의 경우 올해 2000년 사업계획서와 함께 30억원을 신청했으나, 정기국회에서 최종 확정된 금액은 노동절 행사지원비, 노조간부교육비, 지역별 연수·상담비, 국제교류협력비, 정책연구개발비 등 19억원이다. 이 보조금 요청항목은 처음부터 고정된 건 아니다. 노동절 행사지원비는 94년부터, 노조간부 교육·상담비는 90년대 초반부터, 정책연구개발비와 국제교류협력비는 95년부터 책정됐다. 반면 근로자장학사업비는 98년까지 지급되다 중단됐다. 노동부 노동조합과 관계자는 이와 관련 “국고보조금은 공익성이 관건”이라며 “국가가 직접 수행하는 것보다 해당 민간단체가 수행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국고지원금을 배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문제는 여전히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관련해 적잖은 우려를 낳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노총 이수희 서울본부장은 “사업비를 자치단체에 의존하다보면 결국 일상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이철수 교선부장에 따르면 대구본부는 “문희갑(한나라당) 대구시장이 특히 수구·보수적인 점도 간과할 수 없고, 조합원의 힘에 따라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합법화되더라도 지자체에 지원을 요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노총 포항시협 배성훈 조직부장처럼 “올해 5월에 건설일용노조와 함께 실업대책을 요구하며 포항시장실과 시청을 점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국고보조금을 받았다고 하여 자주성이 훼손된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조합원의 힘으로 재정자립을 이루려는 노력 없이 국고보조금에 기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국고보조금의 칼자루를 쥔 국회 또한 민간단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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