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Ⅲ 다가오는 21세기, 노동운동의 대응

<‘발전전략’을 보는 현장의 시각>

‘조직력복원’부터 ‘사회개혁’까지 주문 다양

조직안팎 폭넓은 의견수렴 강조도…민주노총 행보에 이목 집중

연말이 다가올수록 이른바 ‘밀레니엄’이 이 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굳어지고 있다. 정부가 이미 오래전에 ‘새천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너도나도 새천년 일색이다. 온갖 대중매체가 밀레니엄 특집으로 한 해를 장식했고, 한동안 밀레니엄 베이비 붐이 일기도 했다. 이제는 복권에까지 밀레니엄을 붙여 일확천금의 꿈을 유혹하고 있다.

노사관계에도 역시 새천년이다. 87년 이후 20세기 종반을 투쟁으로 달군 민주노조운동을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몰아가는 이데올로기 공작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새천년이라는 미끈한 이름처럼 노동자의 삶에도 평온을 누릴 만큼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부는가. 한마디로 헛배부른 얘기다. 노동자와 근로대중을 제물로 삼아 자본의 천년왕국을 꿈꾸는 신자유주의가 새천년을 맞는 순간 깃발을 내릴 리 만무한 까닭이다. 공격은 되레 더욱 드세지고 있다.

노동운동에도 새천년의 구상이 필요하다면 바로 이같은 공세를 뚫고 노동자와 근로대중의 생존을 지킬 전략을 세우는 일일 게 틀림없다. 그것은 임단협이나 고용안정대책 등 당면과제를 뛰어넘는 중장기전략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를 꾸리려는 배경에는 이같은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현장의 의견은 아직 영글지 않아 상당수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한편 현장간부들은 민주노조운동의 장기적인 발전전망과 현장조직력 복원을 연결시켜줄 고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듯 했다.

현대자동차노조 권오룡 제도개선위원은 “1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과 소수인원으로 사회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지” 반문하며 “지도부가 전술적 유연함을 갖지 못한 채 경직돼 있다면 올바른 전망을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의 조직발전논의가 과연 민주노조운동의 전망을 열어가는데 도움이 됐는지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석기웅 기획차장은 다른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조직력복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현장조직이 ‘개판’인 상황에서 지도부가 현장의견을 모으는 절차 없이 너무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직발전전략, 산별노조 다 중요하지만 현장과의 괴리를 덮어둔 채 일을 추진하는 건 위험하다는 얘기다. 이런 지적에는 최근 민주노총의 주요사업이 ‘1회성 행사치르기식’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깔려있다.

물론 민주노조운동의 앞날을 차분히 설계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었다. 공공연맹 유병홍 정책국장은 “결과와 상관없이 발전전략을 논의하자는 얘기 자체가 중요하다”며 “늦더라도 차근차근 진행하자”는 의견이다. 그는 특히 비정규직, 공무원 조직화와 관련해 “민주노총이 포괄적인 계획을 세우고,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운동전략발전위원회에 대해 조목조목 보완점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주노총 인천본부 박인숙 정책기획국장은 “단기간에 성과를 만들어내려 집착해선 안된다”며 “현장조합원과 활동가의 의견을 풍부하게 수렴하고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위원회의 구성에 대해서도 “지도부 혹은 임원 뿐 아니라 각 조직의 추천을 받아 민주노조운동진영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고 활동해온 사람들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의구조에서부터 다양한 의견그룹을 포함시키되 위원회가 방안을 낼 때는 소신껏 제출하게 하자는 얘기다.

폭넓은 정책시야와 연대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교조 한만중 기획국장은 “민주노총이 그동안 각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경제투쟁을 모아내는 역할에 그치고, 외부단체와의 연대를 협소하게 보는 일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권, 의료복지, 주택문제 등 사회권을 확보하는 사회개혁투쟁에 민주노총이 어떤 구실을 할지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21세기 노동운동의 대응전략에 대한 현장의 주문사항은 매우 다양하다. 주제 자체가 워낙 방대한 만큼 한편으론 당연한 일이다. 대안 마련에 따르는 부담도 크게 마련이다. 민주노총 중앙이 이를 어떻게 풀어갈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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