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 사회운동의 구심이었던 일차적인 이유는 당대의 가장 첨예한 갈등이 모이는 곳이 곧 노동자의 일터와 사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의 해방을 향한 열망은 다양한 사회적 억압의 반작용이었고, 이와 같은 열망은 이후 한국사회의 계급적 이해와 요구를 포괄하는 ‘내셔널센터(민주노조의 중앙조직)’와 ‘산별노조의 건설’을 촉구하는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대통령이 임금차별 해법으로 ‘노동운동’을 내놓았다.공공부문에서는 충분하지 않더라도 최저임금이 아니라 ‘적정임금’을 주겠단다. 그런데 민간에 강제할 방법은 없단다. 그러면서 한 말이 “그러면 어떻게 해결하냐,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내년부터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되찾는다. 1957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날짜가 바뀌고, 1963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이름을 빼앗긴 이래, 지난 7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노동자 시민들이 이어온 사회적 투쟁의 결과다.
홍콩의 노동운동은 국가보안법과 새롭게 개정된 노조 조례 시행 이후 전례 없는 압박을 받고 있다. 연이어 벌어진 노조 해산으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약해졌다. 그러나 이런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도, 침묵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80년 전 한반도 인민에게 해방은 헤어졌던 가족을 만나 따뜻한 밥을 지어 먹으며 억압 없이 살 수 있는 시절이 왔다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일본, 중국, 러시아로 옮겨가 살던 이들을 실어나르는 철도노동자는 종일 삽으로 석탄을 퍼부으면서도 고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 관리자가 떠난 공장에서 일본인 어깨 너머 배운 실력으로 밤새 기계를 만지고 기름칠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운동’이라는 말은 낡은 표현이 되었다. 노동자는 훨씬 많아졌고 노사관계는 더욱 첨예해졌는데, 이제 그 단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름난 정치인이나 비평가들의 회고나 후일담에서나 가끔 등장할 뿐. 그런데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오래 일하고, 불안정하다. 성별 임금격차는 어느 사회보다도 높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말할 것도 없는 수준이며, 산재 사망은 수십 년 동안 지구의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만약 노동지옥의 올림픽이 있다면 한국은 어느 시대건 메달권 국가에 들 것이다.
튀르키예에서는 에르도안 정부에 맞서 노동자 조직화를 시도한 노동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있다. 이 정부는 노동을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키려 한다.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튀르키예의 다른 도시에서, 매주 주중마다 이스탄불의 다른 지역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노동조합들은 여전히 깃발과 현수막, 조합원들과 함께 나타나 우리 운동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다.
MAGA에 맞서는 투쟁은 노동운동의 투쟁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날카롭고 창의적인 전술이 동반되어야 하며, 동시에 극우 권위주의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제3의 재건’이라고 부르는 이 비전은 아래로부터 다인종 민주주의 운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정치적 재정렬을 의미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연대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모든 선한 것을 이끌어왔다. 우리가 지금 기념하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사회적 진보는 사람들이 연대의 유대를 구축하고 자신들의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는 트럼프가 언급한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사람들은 “아, 그는 그런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거야. 그냥 선거 캠페인용 발언일 뿐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때, 처음부터 믿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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