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Ⅳ 노동운동 정보화, 어디까지 왔나

<현황과 발전방향>

활용수준 상당하나 ‘대중화’는 멀다

CUG로 투쟁 이끌어…문자,그림,음성,동영상으로 현장중계

정보가 흐르고 참여·연대 살아 숨쉬는 ‘인터넷 공동체’로

온통 세상이 새천년 맞이로 들떠 있다. 방송에서는 앞다퉈 밀레니엄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기업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밀레니엄 특수를 노린 이벤트로 분주하기만 하다. 아직도 IMF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길거리를 맴도는 노동자들의 머리 위에서는 모든 세상이 손끝 하나로 통하는 듯한 화려한 환상의 세계가 유혹의 손길을 뻗는다. 이처럼 자본이 말하는 새천년은 정보화의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에 대한 약속인 듯하다.

이러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 탓에 우리 노동운동·사회운동 역시 너도나도 정보화를 얘기하며 쫓기는 사람 마냥 마음만 급해지고 있는 그러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도 못돼

다가오는 21세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많은 사람들은 ‘정보화 사회’라고 말할 게다. 그러나 우리는 ‘정보화를 대체 왜, 무엇을 위해 하는지’ 좀더 근본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정부 자본이 말하는 ‘정보화’는 곧 생산력을 높이는 수단에 다름 아니다. 생산의 혁신을 통해 인건비를 얼마나 줄였느니 하는 효율성의 잣대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할 효과적인 기제이며,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의 수단이자 경쟁을 부추기는 아주 효과적인 무기일 것이다.

여기에 맞서서 노동운동은 정보화의 열매가 노동자와 모든 근로민중의 삶의 질 향상으로 온전하게 귀결되도록 싸워나가야 한다. 정보기술이 가져다주는 비약적인 생산력 증대가 노동시간 단축과 여가시간으로 이어지고,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정보통신은 여론과 권력이 더욱 기층대중의 것으로 돌려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보가 곧 권력’이듯이, 정보의 독점과 통제에 맞선 대응은 정치권력을 둘러싼 싸움이자, 기업의 현장장악력에 맞선 싸움이기도 하다. 자본은 이미 폐쇄회로 TV나 전자신분증, E-메일 감시 따위로 정보기술을 작업장감시와 통제수단으로 쓰고 있다. 또한 정보기술과 자동화기술을 접목한 노동과정의 변화, 여기서 비롯되는 비정규직화와 구조적 실업 등 고용문제 역시 놓쳐서는 안될 과제이기도 하다.

노동운동 정보화는 이렇듯 과정과 결과에까지 개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사회운동의 정보화는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반면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에서는 노동운동진영에서도 몇 가지 의미 있는 진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총파업투쟁에서 보인 PC통신의 위력

노동운동에서 정보통신의 위력을 처음 절감한 계기는 역시 투쟁이었다. 95년 한국통신노조는 정부의 전면 탄압에 맞서 CUG(PC통신 안에 있는 노조 전용게시판)를 통해 투쟁지침을 내림으로써 전국 각지 4만여 조합원의 투쟁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한 바 있다. 또한 96-97년 총파업투쟁 때 통신공간의 지지여론을 이끌고, 인터넷을 통해 국제연대의 첨병이 된 ‘총파업 통신지원단’의 경험은 98년 11월 ‘한국노동네트워크’ 건설로 이어졌다.

올해 4월 서울지하철을 필두로 한 공공연맹 총파업 때도 노동네트워크가 구성한 ‘고용안정 통신단’이 주도해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알리고, 투쟁 모습을 그림과 음성, 동영상파일에 담아 전국 각지에 생생히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투쟁시기 PC통신의 위력을 눈으로 경험한 이후 노조운동에서는 CUG 붐이 일기 시작한다. 95년 5월 나우누리에 전교조 CUG가 만들어진 후 96년과 97년에 상업통신망에 개설된 노조CUG만도 30개가 넘는다. 그리고 독립 통신망인 진보네트워크(참세상)와 노동네트워크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CUG 개설이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나서 1년이 안돼 50개가 넘는 노조과 노민추, 현장조직, 그리고 노동단체들이 개설하기에 이른다.

정보통신, 노조와 조합원 잇는 ‘선봉대’로

그러나 CUG는 현재 일반 이용자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 이를 통한 의사소통과 연대의 활성화로 적극 이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노조·단체의 공적인 연락이나 소식 전달, 자료유통 등 주로 행정적인 용도에 머무르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점에서 서울지하철노조의 경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CUG가 대부분 상근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과 달리 서울지하철노조는 96년 CUG를 만들 때부터 ‘노동정보화 소모임’을 만들어 현장 일선 활동가들이 운영해 왔다. 이를 통해 CUG가 활동가와 조합원들에게 ‘또 하나의’ 공동체로까지 확장됐다. 이는 조직을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87년 이후 노조운동이 노자간의 물리적 대립이 빈발할 때는 ‘선봉대’ 같은 조직이 전위부대이자 노조와 조합원을 이어주는 허리 역할을 했다. 이제는 이 중간허리 역할의 상당 부분을 정보통신 활동가들이 맡아야 한다. 민주노총도 이같은 구실을 할 정보통신 활동가들을 조직하고 훈련시키며 공동행동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인터넷 공동체’를 향해

현재 우리나라 PC통신 이용 인구는 6백만이 넘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이용되던 인터넷 인구가 최근에는 PC통신 이용 인구보다 많아지게 됐다. 사회 여론의 흐름이나 일반국민·노동대중의 관심과 문화 등 새로운 공동체가 인터넷 공간에서 형성되고 있다. 노동운동의 ‘새천년 맞이’ 역시 인터넷·정보통신이라는 화두와 무관할 수 없다.

최근 민주노총이 홈페이지를 새롭게 단장하고, 사무총국과 연맹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제 민주노총 홈페이지가 한번 만들고 그냥 보여주기만 하는 ‘카탈로그’에서 그칠 게 아니라, 정보가 흘러다니고 의사소통과 참여·연대가 살아 숨쉬는 인터넷 공동체로 탈바꿈되길 기대해 본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자 한 둘에게 맡겨진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간부에서부터 일선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사이버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노동운동의 정보화’에 다가갈 것이다.

이용근(노동정보화사업단 대표, 노동네트워크 사무국장,

polab007@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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