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규헌(34·제일기획 대리)씨는 아침 7시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는 인터넷과 피시통신을 이용해 ‘뉴스’를 죽 훑는다. 종이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는 거의 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는 게 빠르고 종합적”이라는 게 이유다. 이어 전자우편 확인. 회사의 네트워크 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그에겐 “이거 안되는 데 어떻게 해야죠?”하는 식의 동료들이 보낸 것까지 더하면 “하루종일 열어봐야 할 정도”로 전자우편이 많이 온다. 이렇듯 그의 일과는 네트워크 위에서 이뤄진다.
온종일 네트워크 ‘접속’ 상태에서 이뤄지는 왕씨의 일과가 보여주듯 ‘21세기는 정보시대’라는 규정에 토를 달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 정보시대의 살 길로 ‘모든 길은 네트워크로!’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가자!’따위의 구호를 외쳐댄다.
이런 새마을운동식 구호 탓일까. 정보통신부에 딸린 한국정보문화센터의 96~99년도 조사와 <국가정보화백서>(한국전산원) 등에 따르면, 우리사회의 정보화는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90년 11.0%에 머물던 컴퓨터 보급률은 98년 말 44.5%를 거쳐 99년 5월에는 51.8%로 수직상승중이다. 컴퓨터 이용률은 인터넷 전문조사기관인 아이클릭이 99년 11월 전국의 13~45살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60.9%까지 치솟은 상태다.
네트워크 접속 수준도 가파르게 상승중이다. 피시통신 이용률은 96년 8.4%에 불과하던 것이 99년 5월 17.8%로 두배이상 높아졌다. ‘컴맹’을 가르는 경계선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이용율은 96년 2.5%이던 것이 99년 5월에는 15.2%로 높아졌다. 아이클릭 조사에서는 42.9%까지 나왔다.
이렇듯 한국사회의 정보화는 아주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수치의 상승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시대 사람들을 지구촌과 접속시켜주는 생명선인 컴퓨터·피시통신·인터넷의 이용율을 성·소득·학력별로 나눠 보면, 정보화의 겉모습과 전혀 다른, `양극화’라는 속살이 드러난다.
남성과 여성의 컴퓨터 이용율을 97년 10월과 99년 5월 기준으로 비교하면, 1.47:1에서 1.59:1로 벌어졌다. 같은 기간 피시통신은 2.11:1에서 2.14:1로, 인터넷은 2.22:1에서 2.48:1로 악화했다. 같은 기간 월소득 ‘400만원이상 최상층’과 ‘100만원이하 최하층’을 비교하면 컴퓨터 이용율은 1.56:1에서 2.83:1로, 피시통신은 3.03:1에서 3.63:1, 인터넷은 3.45:1에서 4.11:1로 벌어졌다. ‘대학(원)생’과 ‘중졸이하’로 나눠 학력별로 보면 격차가 너무 심해 비교가 어렵다. 컴퓨터 이용율은 22.5:1에서 37:1로, 피시통신은 44.16%와 0.0%이던 것이 60%와 0.9%로 바뀌었고, 인터넷은 31.17%와 0.0%에서 61.4%와 0.4%로 변했다. 99년 5월 현재 대학(원)생은 중졸이하에 비해 153.1배의 인터넷 이용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가 ‘디지털 (계층)분화’를 가속화하며 정보강자와 정보약자로 새로운 빈부 양극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는 정보시대에는 사회적 격차가 줄 것”이라던 미래학자의 낙관이 무색한 현실이다.
정부는 99년 7월 시행된 개정 정보화촉진기본법에서 보편적 서비스 관련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보편적 서비스란 누구에게나 무료 또는 싼 값으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으로, 전통적으로 전기·전화·상하수도 등에 적용돼 왔다. 정보통신부에 딸린 한국전산원이 해마다 내는 <국가정보화백서> 99년판은 “우리는 선진국과의 지식격차를 좁히는 데 치중할뿐 계층간 지식정보 격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며 “계층간 지식정보 격차를 좁히기 위해 보편적 서비스의 확대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밝힌다. ‘디지털 (계층)분화’에 따른 빈부 양극화를 막기 위해 보편적 서비스 원칙의 확립이 필요함을 정부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경쟁력 강화와 정보기술산업 육성에 여념이 없는 정부한테 정보복지와 보편적 서비스 원칙은 현실적으로 구두선에 가깝다. <정보화백서>에는 ‘지식정보 격차와 불평등 지수’가 담겨있지 않다. 또 99년 4847억원의 정보화촉진기금 가운데 정보복지와 관련된 항목은 정보화교육지원비 34억원, 정보문화확산비 26억원, 지역정보센터운영비 7억원 등 모두 67억원에 불과하다.
홍성태 박사(사회학)는 “정보권을 정보시대의 새로운 인권과 복지의 개념으로 확립해야 한다”며 “특히 지불능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해 새로운 정보를 생산·유통할 수 있는 보편적 접근권의 보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보화는 하드웨어와 컨텐츠가 어우러져야 하는데, 정부의 국민피시 보급 정책은 하드웨어적 접근일 뿐만 아니라 목표가 잘못 잡혔다”며“100만원대에 이르는 보급가로는 정보화에서 소외된 하위층의 정보접근권을 높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제훈 기자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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