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대한 파괴적 제재 계속하는 영국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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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8개월여 간의 강도높은 협상을 거친 지난 달, 미국은 자신을 제외한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에서는 영국만이 찬성표를 던질 준비가 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대한 제재를 무한정 확장시키기로 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붙이기로 결정하였다.
지난 12월 17일 통과된 이 결의안은 유엔 특별위원회(UNSCOM)를 대체하는 새로운 무기사찰기구(유엔 감시·확인·사찰 위원회(UNMOVIC))의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의 비협조적 태도를 비난한 리차드 버틀러의 보고서에 기반하여 1998년 12월 미국과 영국이 4일간의 공습을 가한 후, 이라크 당국은 유엔 특별위원회와 버틀러의 이라크 재입국을 거부하였다. 이라크 당국은 또한 1990년에 부과된 유엔 제재 아래 이라크의 핵무기 프로그램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기관인 국제 원자력에너지기구(IAEA)의 입국을 거부하였다.
이에 앞서 이라크는 제재조치를 무조건적으로 철회하지 않는 어떠한 결의안도 거부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으며, 통상금지의 종식을 구체적으로 보장할 때에만 무기 사찰을 고려할 것이라고 표명하였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는 12월 17일 표결에서 기권하였다. 말레이시아도 여기에 가담하였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영국이 제안한 결의안은 4개국의 기권과 더불어 11 대 0으로 통과되었다.
안보리 내에 이라크를 둘러싼 분열을 드러내고 미국과 영국의 고립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미국이 표결을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 정부가 이라크 국민 대다수의 고난을 통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몰락하기를 바라면서 대(對)이라크 제재 정책을 계속하려 하고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어떠한 잣대로 보더라도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은 인류에 대한 범죄이다. 이와 같이 강대국이 한 작은 나라의 국가주권을 짓밟은 사례는 19세기말 식민주의의 전성기에나 볼 수 있었던 일이다. 미국의 폭탄과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로 인한 이라크 국민의 사상자수와 국토파괴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각종 국제기구 및 인도주의 조직들이 발간한 수많은 보고서들은 9년 이상의 경제 통상금지로 인한 보건, 영양, 수자원, 공중위생 설비 등의 기본적인 문명 붕괴를 기록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8월 유엔 아동기구인 유니세프(UNICEF)가 발간한 연구보고서의 결론을 보면 유엔의 제재조치가 시행된 이후 이라크 중부와 남부에서 아동 사망률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유니세프의 또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매달 5천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적절한 음식과 의료의 부족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지난 주에 이라크 보건장관은 유엔의 통상금지로 인해 지난 9년간 140만 명의 남녀노소가 사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1998년 12월의 공습 이후 미국과 영국은 거의 매일 이라크의 군사 및 민간 시설을 타겟으로 폭격을 계속하고 있다. 이라크 당국에 따르면, 이라크 북부와 남부의 ‘비행금지’ 구역을 순찰하는 미국과 영국의 제트기들은 지금까지 16,848회의 작전을 수행, 156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이 ‘비행금지’ 구역은 90년대 초반 미국, 영국, 프랑스가 유엔 결의안의 법적 기반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에 불과하다.
유엔의 무기사찰은 후세인 정권을 뒤흔들고 제거하려는 워싱턴의 시도를 감추는 얇은 위장막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유엔 특별위원회는 이라크가 생화학 무기를 제거했음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부한 채 민감한 정치, 안보 관련 시설들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하면서 계속해서 도발을 가하고 있다. 특별위원회의 사찰은 이라크의 반발을 자극하여 미국의 새로운 정치, 군사적 공세를 위한 구실을 마련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령 1998년 12월의 공습을 촉발시킨 구실은 버틀러가 이끄는 사찰단의 바트당 당사 사찰을 이라크 당국이 거부한 것이었다.
미사일과 폭탄을 이용한 공세가 계속되던 당시 전세계 주요 언론은 워싱턴 당국이 오랫동안 이라크 지도부에 대한 CIA의 정보 수집의 최전선으로 유엔 특별위원회를 활용해왔다는 구체적인 증거-여기에는 미국 정보관료들의 시인 발언도 포함된다-를 제시하였다. 암살 시도를 위해 사담 후세인의 이동 경로를 정밀 추적한 것 외에도 CIA는 1998년 12월의 공습에서 유엔 특별위원회를 앞세워 공습 목표지점을 선정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사실의 폭로는 유엔 무기사찰단이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라크의 계속적인 주장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록들을 감안한다면, 이라크 국민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미국을 등에 업은 또다른 사찰 프로그램의 수중 아래 두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제재에 대한 대중적 반감 아래 클린턴 행정부는 12월 17일 결의안을 이라크 국민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기제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라크 정권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결의안은 이라크가 유엔 감시·확인·사찰 위원회와 국제 원자력에너지기구의 120일에 걸친 사찰 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를 경우, 이 잠정적 기간 동안 민간재의 수출입에 대한 제재를 유예한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재 유예는 미국과 영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보리의 표결을 거쳐야 한다. 다른 한편, 양 기구중 어느 한쪽이 이라크의 사찰 기피를 보고할 경우 제재가 자동적으로 재가동된다.
결의안은 특히 유엔 감시·확인·사찰 위원회에 이라크의 모든 시설과 개인에 대해 전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하고 있다. “이라크는 자국 정부의 권한 아래 있는 모든 지역과 시설, 장비, 기록, 운송 수단, 개인에 대해 유엔 감시·확인·사찰 위원회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무제한적인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고 결의안에 쓰여 있다.
이는 이 새로운 사찰기관으로 하여금 특별위원회가 악명을 떨친 도발을 똑같이 벌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제재 유예 조건을 서술하는 구절은 미국이 통상금지의 일시적 철회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정지 신청 조항을 담고 있다. 무해한 듯이 들리는 이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라크가 금지된 품목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보장하는 효과적인 재정, 운영상의 조치들을 정교화시켜야 한다.”
미국측 유엔 부대사 피터 벌리는 결의안이 통과된 후 표면상으로는 기술적인 이 조항에 대해 언급하였다. 유엔이 배포한 벌리의 발언 요약에 따르면, 이 미국측 사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안보리는 제재조치에 대한 유예를 고려하기 전에 유예 기간 동안 민간 수입품의 전달 수단에 관한 지침을 설정해야 한다. 현재의 결의안은 이러한 조치의 세부사항을 규정하거나 전달 수단이 권한을 부여받는지의 여부를 명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효과적인 통제 조치를 위한 이러한 요구조건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일시적인 제재 유예조차 저지하기 위해 이 조항의 모호성을 악용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라크에 대한 무조건적인 구제를 용인하는 듯이 보이는 결의안의 한 조항은 기존의 이라크 석유 수출 상한선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유엔은 지금까지 이라크의 석유수출을 6개월당 52억 6천만 달러로 제한해왔다. 석유 수출 상한선의 폐지는 이라크 석유산업의 부활에 상당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러시아와 프랑스 양국에 미국과 영국이 양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라크 석유 부문에 적절한 감시 및 통제 하에 해외 석유기업이 참여하기 위한 선택의 자유”를 언급하는 결의안의 또다른 조항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결의안은 제재 체제의 예견가능한 종식을 담고 있지 않으며 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라크 국민의 주권은 여전히 사문서에 불과하며 이라크의 운명은 미국의 수중에 그대로 들어있다. 미국은 이라크와 세계 다른 지역 사이의 정상적인 경제 교류 재개를 무한정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이다. 결의안은 이라크를 종속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 기제를 여전히 담고 있다. 즉,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생산 설비 일체를 해체했음을 입증해야 하는 불공평한 요구조건이 그것인데, 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즉각 12월 17일 결의안이 제재 체제의 유지를 위한 새로운 도구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였다. 타리크 아지즈 부수상은 이렇게 말했다. “이 결의안을 통한 미국과 영국의 실제 목적은 제재를 철회하는 게 아니라 국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다. [제재의] 유예는 실제 이행이 불가능한 일련의 장기적이고 복잡한 조건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결국 술수에 불과하다.” 아지즈는 또한 비행금지 구역 문제와 미국과 영국이 계속하고 있는 공습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결의안을 비난하였다.
이라크의 반관영 신문인 「바벨(Babel)」은 결의안이 “통상금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이라크를 원점으로 돌리고 있다”고 논평하였다. 또한 “이러한 범죄적 결의안은 이라크를 이라크 돈을 가지고 외부로부터 통치하는 일종의 보호령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동시에 4개국의 기권을 낳은 안보리 표결에 대해서는 “이라크의 승리”라고 규정했는데 “왜냐하면 8개월간의 협상과 압력 및 위협에도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에 대한 자신들의 적대 정책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측 대표단은 이라크의 이해관계에 일정 정도 동의를 표하였다. 러시아연방의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결의안이 “제재 철회를 무기한 늦추려는 숨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하였다. 중국의 친화순은 “안보리에서 위임받지도, 승인받지도 못한” 비행금지 구역을 비난하면서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북부와 남부에 대한 공습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미국의 피터 벌리는 워싱턴 당국의 비타협적인 입장을 강조하면서 결의안은 국제법적 강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안보리 이사국 모두는 표결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이행을 위해 이라크에 압력을 가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벌리는 어떠한 제재 유예도 안보리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점과 이는 일시적인 조처일 뿐이라는 점, 그리고 국제 원자력에너지기구나 유엔 감시·확인·사찰 위원회가 이라크의 비협조적 태도를 보고할 경우 자동적으로 철회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안보리는 “이라크에 정당한 책임을 돌려왔으며” 이는 “이라크측에 유리한 어떠한 자의적 해석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워싱턴의 진의는 이라크의 결의안 거부에 대한 반응에서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미 국무부 대변인 제임스 폴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라크의 거부는 제재 유예가 전혀 불가능할 것이라는 실제적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이 결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한 거부권 행사를 포기하고 대신 기권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이라크와 페르시아만에 대한 이들 나라의 경제적, 지정학적 야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 국가가 안보리 내에서 미국 및 영국과 벌이는 책략의 한가운데에는 인도주의적 관심이 아니라 이라크의 석유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표결을 앞두고 동요하였으며, 결의안을 지지할 경우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프랑스 기업들과의 수익성있는 석유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이라크가 위협한 이후에야 기권을 결정하였다.
이라크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안보리는 12월 17일 결의안의 이행을 진행하도록 위임받은 상태이다. 현재 안보리 내에서의 책략은 1월 16일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 의해 임명될 예정인 유엔 감시·확인·사찰 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의 선출로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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