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기획] 비정규직과 함께 가자
자본과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에 불을 켜고 달겨들더니 지난해는 임시직, 계약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 섰다. 이 땅에 사는 모든 노동자가 신자유주의 정책에 시달리고 있지만, 노조라도 있는 ‘조합원 동지들’은 그나마 행복한 축에 든다. 불안정한 일자리, 열악한 노동조건에 차별대우까지 겹치고 노동기본권마저 비켜가는 이중삼중의 고통속에 방치된 게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다. 고용구조가 갈수록 악화되는 지금, 그것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이와 함께 “언제까지 정규직의 ‘상대적 안정감’에 안주할 것인가”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정규직은 자본과 한편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한 배를 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되뇌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을, 이들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노동과 세계>가 붙잡은 올해의 화두다. 앞으로 몇 차례로 나눠 이 화두를 함께 풀어본다. 편집자.
① 박씨가 판촉아르바이트로 사는 방법
차별대우도 서러운데 같은 노동자 ‘구박’까지
박씨(여·43세)는 대형할인점에서 일한다. 할인점에 물건을 납품하는 회사에서 파견한 판촉아르바이트다.
그러나 매장에 파견되면 납품업체의 상품 판촉뿐만 아니라 매장의 상품 운반, 진열, 판매까지 해야 한다. 박씨는 지난 93년부터 이 일을 해왔다. 상품을 파느라 오후 내내 소리를 지르고 나면 목이 퉁퉁 붓고, 다음날 아침엔 목소리도 안 나온다. 하루에도 설탕, 식용유, 물, 음료수 따위가 든 크나큰 박스 1백여개는 족히 옮겨야 하는데, 허리와 팔의 인대가 늘어났고 밤에는 손발이 저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게다가 상품을 운반하다 부딪히는 일도 많아 온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다. 지난번에도 깡통(캔)을 진열하다 떨어뜨리는 바람에 발가락 뼈에 금이 가 깁스를 했지만 일은 계속해야 했다. 같이 일하는 정규직원들은 간혹 병가를 내기도 하지만 박씨 같은 경우는 그럴 수도 없다. 아프다고 쉬면 일당에서 까거나, 할인점에서 납품업체에 연락해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해고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렇게 매장에서는 크고 작은 부상이 잦지만 납품업체나 매장에서 치료비를 지급해주진 않는다. 산재보험, 의료보험, 국민연금은 모르고 산 지 오래다. 박씨는 “언젠가 한번은 ‘높은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 꺼냈더니 모두 대꾸도 안하고 피하더라”고 말한다.
박씨는 “아침에 출근하려고 화장대 앞에 30∼40분만 앉아 있어도 서너번은 일어났다 앉아야 한다”고 한다. 허리인대가 늘어나 그나마 서 있으면 통증이 덜하기 때문이다. 짬을 내 병원에 가봤지만 의사는 “낫기는 힘들지만, 일 안하고 쉬면 악화는 안될 것”이라고 했단다. 박씨는 “결국 죽지 않는 이상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숨을 몰아쉰다.
업체는 매장에 물건을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할인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괜히 파견사원 편든답시고 신경을 건드렸다간 “물건 빼라”는 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실적도 따진다. 또 매일 판매실적을 전화로 보고하게 해서 이번 달 휴대전화 사용료만 6만원이 넘었다는 게 박씨의 하소연이다. 동료들과 비교하며 자꾸 ‘실적’을 강조하는 건 굉장한 스트레스다.
그러나 박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판촉사원과 납품된 상품을 총괄관리하는 매장의 남자사원들은 기껏해야 20대 중후반인데도, 박씨같이 파견된 판촉사원을 사람취급도 안한다. 일을 제대로 못했다며, 심지어 개인적으로 기분이 안 좋을 때까지도 “××년” 따위의 상소리는 보통이다. 모두 첫째누나 혹은 부모 뻘 되는 나이인데도, 손님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쩌다 막내동생 같은 생각이 들어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대꾸라도 할라치면 당장 “그만두라”고 한다. 박씨는 “자기들이 월급 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딴 식으로 일하면서 월급 받기 미안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면 정말 기가 막힌다”고 한다.
박씨가 이렇게 아침 9시30분부터 저녁8시까지 일해서 받는 하루 일당은 2만5백원. 월급으로 따지면 53만원 수준이다. 대개는 하루 세 시간쯤 일을 더해야 하고, 그러면 4천원을 더해 일당 2만5천원을 채워준다. 박씨는 “똑같은 시간 동안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은 연봉이 1천1백만원쯤 되는 것으로 안다”고 한다. 박씨의 연봉보다 4∼5백만원 많은 셈이다.
하루 11시간씩 일하지만 박씨가 한 달에 쉬는 날은 많아야 나흘이다. 할인매장은 휴일에 일이 많기 마련이니 모두 평일에 쉬는 데다, 생리·월차휴가는 꿈도 못 꾸고 휴가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수당으로 계산해주는 것도 아니다. 매달 혹은 3개월만에 재고조사를 하는 날엔 일이 새벽 3시께 끝나는데, 그런 날엔 저녁밥 사먹고, 택시를 타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당보다 지출이 많다.
매장에서 일하는 동안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온종일 서서 일하는데 마땅히 앉아 쉴 곳도, 시간도 없다. 그나마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건 점심시간뿐이지만 ‘여직원 휴게실’이라고 있는 건 고작해야 옷 갈아입을 공간과 사물함이 전부다. 방을 만들어놓거나 의자를 갖다놓는 매장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파견사원이 1백여명 수준이다 보니, 앉아 쉴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돼 박씨 차례가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결국 점심 먹고 화장실이나 계단에서 대충 쉬다가 다시 일하러 가게 된다. 어쩌다 깜박 잠이 들어 5∼10분 정도 늦으면 관리사원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집에 가라”고 한다.
며칠 전 할인점에서는 박씨 같은 판촉사원들을 모아놓고 ‘워크샵’을 했다. 그 자리에서 박씨의 동료가 “주부사원들이 일은 더 잘하는데 급여가 너무 적다”고 불만을 토로하자 ‘높은 사람’은 “여가선용한다고 생각하라”고 했단다. 박씨는 “이렇게 힘든 일 할 정도면 다 젖먹이나 서너 살 박이를 억지로 떼 놓고 돈벌러 나온 사람들인데, 책상머리에 앉아 그런 이야기 하는게 말이 되느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박씨는 말을 잇는다. “나도 옛날에 물가 쌀 때는 남편이 벌어준 돈 갖고 살았지만, 이제는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살 수가 없다. 남편이 공무원인데도, 둘이 벌어 먹고살면 딱 맞다. 저축은 꿈도 못꾸고, 아이들 학원은 생각도 않는다”. “공무원이 저축해서 집 샀다는 이야기 들으면 이해가 안 간다”는 박씨는 일 이만원 짜리 옷 하나를 살 때도 몇 번을 들었다놨다 고민하는 ‘아줌마’다.
돈도 돈이지만 박씨는 아이를 보면 측은해 견딜 수가 없다. “계속 혼자 놀아버릇하니 아이도 익숙해지더라”는 박씨는 “그래도 밤늦게 퇴근해 혼자 놀다 잠든 아이를 보면 안타깝다”고 한다. 집에서 아이를 보는 시간은 많아야 20분 정도, 눈 비비는 아이를 새벽에 억지로 깨워 아침밥을 먹일 때 뿐이다. 박씨는 “그럴 때면 정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퇴근하면 집안일은 또 박씨의 몫이다. 그러다 보면 새벽 두 세시에 잠들기 일쑤고 다시 여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렇지만 여자가 어디 가서 특별히 벌어먹을게 있나요. 사실 취직하기 가장 쉬운 곳이 이런 유통업계죠. 와서보면 이 모양이지만…”. 할인점에서 일한다고 하면 이웃이나 친지들이 ‘대우’를 묻는데 박씨는 창피해서 말할 수가 없다. 더 받는 것처럼 꾸며 말하기도 하지만, 어쩌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모두들 ‘돈 몇 푼에 목숨 걸 일 있느냐’며 당장 그만두라고 성화란다.
물론 박씨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 해서 노조일 하는 사람들과 몇 번 만났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단합이 돼야 한다’며 모임이다 뭐다 자꾸 나오라고 하는데 사실 주부사원들은 시간도 없고, 시간이 돼도 쉬고 싶은 생각, 집안일 생각에 귀찮을 뿐이다. 실은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나마 몇 푼이라도 벌고 있는데, 괜시리 노조다 뭐다 복잡하게 얽혀서 피해라도 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렇고, 우리 같은 사람은 노조 못한다던데요?”라고 되묻는 박씨의 말은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를 가진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사실 박씨가 바라는 것은 큰 게 아니다. “단지 우리를 업신여기지 말고 일한 만큼 인정해주고, 노동의 대가를 달라는 거예요. 매장에서는 빨간 날 쉬고싶다고 하면 ‘집에 가서 애나 보라’고 하지만 우리도 가정이 있는데, 한 달에 한번이라도 다른 가족도 쉬는 일요일에 쉬었으면 좋겠어요”. 박씨는 내일도 새벽까지 일해야 한다. 안 하면 짤리니까.
이황미(leehm@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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