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왜 자꾸만 비정규직이 늘어나나
“정규직처럼 부려먹어도 값싸고 부담 없는데 왜…”
물불 안가리고 비정규직으로 바꿔
같은 자리·같은 일에 저임금·고용불안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은 나라. IMF를 극복하겠다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벌인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의 결과는 바로 늘어난 비정규직이다.
99년 11월 현재, 급기야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정규직을 앞섰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임금노동자의 53%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97년 11월 6백94만명이던 상용직노동자는 99년 11월 6백16만명으로 11.3%나 줄어든 반면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자는 6백41만명에서 6백95만명으로 늘었다. 특히 1백98만명이던 일용직 노동자는 2백55만명으로 30% 가까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전체노동자 가운데 상용직의 비중은 97년 52%에서 99년 47%로 줄었고, 임시직과 일용직 등 비정규직의 비중은 48%에서 53%로 늘었다.
이처럼 IMF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비정규직 증가의 큰 이유는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이다. 사업주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만둘 것인지, 비정규직으로라도 남을 것인지’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고용의 유연성도 확보하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는 비정규 고용을 통해 ‘꿩 먹고 알 먹는’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이같이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해 가는 추세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정규직의 입장에서도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LG전자다. LG전자는 IMF 이후 ‘휴먼풀’이라는 용역파견업체를 설립해 여직원, 자동차운전직 등을 용역파견업체 소속으로 바꾸었다. 업체 사장은 LG전자 이사가 맡고, 용역파견업체가 LG전자로 인력을 파견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결국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소속이 바뀌고, 임금수준은 정규직일 때의 2/3 이하로 뚝 떨어진 것이다. LG전자는 ‘휴먼풀’ 말고도 ‘휴먼뱅크’ 등 용역파견업체를 여러 개 설립했다. 물론 직원의 소속을 바꿀 때 회사쪽은 똑같이 대우해주고, 2년 동안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는 파견근로 대상업무를 한정하고 있는 근로자파견법까지도 위반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파견이 가능한 직종으로 발령을 내지만 실제로는 파견근로가 금지돼있는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으로 해고한 뒤 3∼6개월 단위의 임시직으로 다시 채용하기도 한다. 대개의 은행이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역시 종전과 같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신분은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임금이 깎임은 물론 각종 사내복지도 후퇴하게 된다. 특히 이런 경우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위협에 시달리게 되므로 근무시간을 비롯한 노동조건이 여러모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임금뿐만 아니라 근로계약까지 1년 단위로 맺는 사업장도 있다. 연봉제는 임금을 뺀 다른 근로계약은 유지하는 것인데도 많은 사업주가 이를 도입하면서 근로계약까지도 도매금으로 묶어 넘기는 실정이다. 이 경우 관리자 눈밖에 나지 않는 수 밖에 없어 결국 노동통제만 강화되는 꼴이다.
그 밖에도 분사를 통해 별개회사로 만든 뒤 다시 모기업과 계약토록 하거나, 기업별로 파견업체를 설립하는 등 정규직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있다.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 신규채용이 대부분 비정규직 형태이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99년 상반기 신규 취업자의 92%가 임시·일용직이었다. 처음부터 여러 가지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채용함으로써 고용관계나 임금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리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고용형태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뉜다. 우선 사용자와 기간을 정한 일시적 고용형태인 ‘임시직’이 있는데 계약직, 인턴사원, 촉탁직, 일용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시간제 노동자'(파트타이머)는 기간을 정해 고용되지만 정규직 노동자의 통상적 노동시간 보다 짧게 일하는 경우다. 인력회사에 고용된 뒤 다른 회사에 보내져 그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는 ‘파견노동자’도 비정규직에 해당한다.
이렇듯 형태는 각각 다르지만 정규직에 견줘 노동조건이 나쁘고, 차별대우를 받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대개 정규직을 해고한 자리에 메우거나, 정규직에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하는 일은 정규직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임금은 정규직의 40∼80% 수준이고, 초과근로수당이나 퇴직금, 연·월차, 생리휴가 등 법에 정한 기본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또 국민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률도 정규직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주진우 민주노총 정책2국장은 이와 관련해 “현장의 사례를 보면 업무특성에 따라 비정규직을 쓰는 게 아니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마구 대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미 과반수를 넘어선 비정규직이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 전망한 뒤 “정규직이 언제까지나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규직이 더 이상 안정적 고용이 보장된 ‘선택받은’ 자리가 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황미 leehm@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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