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유의 상징적 개념인 `카피레프트’는 84년 그누선언문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소프트웨어의 소스공개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한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염려나 오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을 부정하는 것인가, 파렴치한 도용행위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그리하여 원저작자를 배곯게 하고 창작의욕을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카피레프트의 근거인 지피엘(General Public License)은 저작권의 상업적 악용을 막는 또다른 저작권이다.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한 얼마든지 복제·변형·배포가 가능하다는 것에 합의하는 권리선언이다. 저작권협회나 특허청의 감독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저작권 통제이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 일반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을 문제삼는다. 김민기가 <아침이슬>을 만들었다면, 그에게는 자연저작권이라 할 만한 것이 부여될 것이고 이는 영원히 그의 권리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저작자의 의도와 유리되거나 대중의 자유로운 향유를 가로막는 형태로 왜곡된다면 저작권의 작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문학작품의 저작권은 거대 출판·미디어기업에 귀속되고, 특허권을 취득한 기술적 노하우들도 이 기술을 구매하는 산업자본가가 갖게 됐다. 대중의 요구와 거리가 멀어지는 베스트셀러, 극장의 배급영화, 컴퓨터 운영체제 독점 등이야말로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저작권이 갖는 모습들이다.

더구나 자유로운 정보 공유가 가능해진 디지털화된 환경에서 디지털 저작권의 그물을 치려는 시도는 혼란의 제거 같은 명목에도 불구하고 이윤 수취원을 인위적으로 확대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에 반대하지도, 상업적 판매 자체에 반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원저작자의 의도와 다수대중의 권리조차 거스르는 저작권 시스템에 반대하는 것으로, 새로운 디지털 공간과 정보소통 양식에 대한 대중적 통제권을 요구한다.

카피레프트의 개념을 비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적용하려는 시도도 구체화되고 있다. 람 사무드랄라처럼 음악에서 카피레프트를 표방하고 창작활동을 하는 이도 있다. MP3 포맷의 보편화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저작권 기한이 지난 책들을 인터넷으로 올려 공유하자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는 지피엘과는 다르지만 유사한 사례다. 필자가 속한 카피레프트모임(http://copyle.jinbo.net)은 해외 진보적 잡지의 내용들을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번역·해설해 인터넷으로 또는 복사비에 못미치는 값으로 유통시키고 있다.

마지막 염려에도 답할 차례다. 휘황한 문화자본이 대다수 예술가의 고픈 배를 채워준 적이 있었던가? 디지털화와 정보공유가 원저작자의 창작의욕을 꺾는 일은 부분적으로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향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정보공유를 반대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초기 일자리를 빼앗긴 장인들의 기계를 향한 분노와 다를 바 없다.

지난 세기 발터 벤야민은 `기계복제시대’가 예술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대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예술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는 `디지털 복제시대의 예술’이라는 해방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다.

김현우/카피레프트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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