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루쿠 분쟁으로 와히드 내각 긴장 고조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1/10
인도네시아 말루쿠주에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격렬한 투쟁이 계속되면서 다른 제도까지 적대감이 번져나가고 있고 압둘라만 와히드 대통령의 취약한 “민족 통일” 정부 내부에 심각한 분열이 드러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자카르타 도심에서 있었던 지난 주 금요일 대규모 시위에서 연사로 나온 이들은 정부가 만약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근의 투쟁을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말루쿠 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전, 즉 “지하드”를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5만 명에서 3십만 명에 이르기까지 시위대 규모에 대한 다양한 추정치가 나왔지만 어쨋건 이슬람 단체들과 정당들이 조직한 이 시위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한 현수막에는 “관용은 넌센스다, 살육자 예수쟁이들”이라는 글귀가 쓰여있었다.
이슬람교 세계연대 위원회 의장 후세인 우마이르는 “인도네시아를 기독교화”하려는 군대 내 기독교도 관료들을 비난했다. 그는 만약 군내 기독교도 인사들을 이슬람교도로 바꾸지 않는다면 3백만 명의 이슬람교도들을 (말루쿠주 내) 암본에 보내 성전을 벌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연사는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살해 행위가 중단되지 않으면 한 달 내에 민병대를 그 지역에 파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합개발당(PPP)의 하마즈 하즈 당수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슬람교 정당들이 단결할 시기라고 말했다.
이번 시위는 와히드 정부에 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라는 압력이었다. 이번 분쟁은 지난 1월에 시작되었지만 2주 동안 오히려 더욱 격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지난 주에만 7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비공식적인 수치는 2천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 목요일 인권단체인 콘트라스(Kontras)는 작년 8월부터 할마헤라 섬에서만 4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약 17,500명의 난민들이 할마헤라 섬을 빠져나와 이웃한 테르네이트 섬으로 이주했다.
지난 1년 동안 1,7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해되었고 2,30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8,500개의 건물이 불에 타거나 파괴되었다. 말루쿠주의 주도인 암본시 대다수의 지역들이 황페화되었다. 보존된 지역들조차 종교별로 분할되었고 민병대들에 의한 순찰이 계속되고 있다. 나머지 도시와 마을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전체 주민 2백만 명 중 약 2십만 명의 사람들이 암본 시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쫓겨낫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의 분쟁은 암본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에 의해 우연히 촉발되었다. 기독교도인 버스운전기사가 이슬람교의 한 어린이를 치었고 암본 최고(最古)의 교회를 파괴하는 것을 포함해 일련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폭력이 급격히 확대되었고 말루쿠주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특히 기독교도들이 압도적인 할마헤라 섬에서는 최근 사망자의 대다수가 발생하게 되었다.
말루쿠주에서의 극심한 긴장 상태 이면에는 지난 2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경제 위기로 확대된 오랜 종교적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스파이스섬이라고 알려진 말루쿠주는 네덜란드 식민지 치하에서 줄곧 인도네시아의 영토 중 하나였다. 1950년 독립 이후 기독교도인 지배 엘리트들은 남몰루카스 공화국(RMS)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인도네시아군의 즉각적인 진압으로 인해 실패했다. 암본의 기독교인들 대다수는 자칭 망명정부가 존재했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지난 50년 동안 기독교도 엘리트들의 지위는 급격히 하락했다. 첫 번째 계기는 술라웨지로부터 이슬람교도 이민자들이 대량 유입됐던 시기였고, 그 다음은 1990년대 공무원 기용에 있어 기독교인들보다 이슬람교도들을 우대한 수하르토 정권의 정책으로 인한 것이었다.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더욱 악화된 기업간 이윤 싸움과 정치적 지위는 깊은 혐오와 적개심의 정서 만들어냈으며, 이러한 정서는 사실상 지역적으로, 전국적으로 더욱더 이윤을 챙기려는 지배계층에 의해 악용되고 있다. 주로 이슬람 군대에 의한 편파성 논란은 이 지역 경찰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호의적이라는 주장으로 반박된다.
몇몇 논평가들에 의하면 인도네시아군 사령부는 정부 내의 반목을 공개적으로 확대해나가고 있고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폭력을 조장하거나, 최소한 폭력사태를 이용하고 있다. 군부는 약 6,500명의 군병력을 투입했고 말루쿠주는 물론이거니와 분리를 주장하고 있고 있는 “아체독립운동(Free Aceh)”을 진압하기 위해 북수마트라에도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와히드는 정부 정책이 실패할 경우 군부가 권력을 장악할 것이라는 군부의 공개적인 암시를 상기시키면서 지금까지는 비상사태 선포를 거부하고 있다. 군 대변인인 수드라드잣 장군은 군대가 국민과 국가에 충성을 바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대통령에게까지 자동적인 충성을 바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 위크(Aisa Week)」의 최근 호는 암본 내 폭력 사태의 확대는 정부 내 권력 투쟁과 연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네시아 군부가 현재의 사태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혐의가 발견되었다. 군사 작전에서 승리를 거둔 경찰은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어진 총기와 도검은 물론이거니와 프랑스산 라이플총과 수류탄을 사용했는데, 이는 군대를 통해서만 유입될 수 있는 것이다. 불만을 품은 군 인사들은 와히드 대통령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폭동을 유발시킬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 국방부장관이자 현재 정치·안보 조정장관인 위란토와 와히드 대통령 간의 냉랭한 관계로 상징화되는 정부와 군부의 관계는 최근 계속 불편한 상태였다. 와히드는 지난 가을 동티모르 폭력 사태에서의 군부 개입 의혹에 관한 조사를 추진했고 위란토를 포함한 몇몇 고위급 인사들이 혐의를 받았다. 군 내부의 대다수는 군인들이 인권을 탄압하는 짐승으로 그려지고 있는 이 조사와 현재의 민주적 분위기에서 매우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군부는 현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권력의 균형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말루쿠주 사태는 와히드와 제휴하고 있는 해군과 해병대가 자바와 국가의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손을 떼고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게 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자카르타에서는 와히드가 위란토를 제거하기 위해 내각 개편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위란토, 그리고 막후 정치의 또다른 실력자인 골카르당의 당수 아크바 탄중, 이 두사람은 모두 와히드의 대통령 선출을 위한 전략을 짜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들로 최근에는 내각 개편을 반대한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계엄령이 발표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란토는 1월 5일 말루쿠주의 언론 취재 범위를 제한한다는 발표를 했다.
군부는 또다른 주요 정계 인사들(국민수권당의 당수이자 국민협의회 의장인 “개혁가” 아미엔 라이스는 지난 금요일 집회에서 연설자로 등장하기도 했다)을 일정하게 규합한 것으로 보인다. 시위 전날, 라이스는 유혈 참사의 비극에 눈감은 전국인권위원회를 맹렬히 공격했다. 군부를 향한 계산된 호소를 통해 그는 이 위원회가 동티모르에서의 잔학 행위와 군부에 대한 조사를 통해 국제적인 이해 관계에 시중들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겨우 지난 10월에 대통령직에 오른 와히드는 군부, 골카르당(수하르토 정권의 당), 그리고 자신의 소속당인 국민각성당(PAN),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의 민주투쟁당(PDI-P) 등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연정 세력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말루쿠주 위기 해결의 책임을 맡은 와히드와 메가와티는 12월에 암본을 방문했다. 분쟁 종식의 실패는 이 두 사람에게 압력을 더욱 고조시켰다. 금요일 시위에서는 메가와티를 비난하는 구호가 울렸다. “메가와티 당신의 침묵은 곧, 암본에게는 독이다”라는 한 현수막의 표현은 이러한 정서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다.
정부 내에서의 갈등은 국제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압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작용될 것이다. 말루쿠주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동티모르에서 유엔군이 했던 선례를 따라 인도네시아 군을 다국적군으로 대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요구는 네덜란드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최근에 네덜란드 외무장관 요지아스는 말루쿠주에 배치할 국제적인 파견단을 요청했고 네덜란드 정부가 여기에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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