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비정규직과 함께 가자’
④ 조직현황과 조직화 방안
연대·평등의 관점으로
인력·재원 쏟아부어야
노조설립·가입 미미…기존노조 개방·제도개선도 시급
99년 11월 현재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6백95만명에 달해 이들의 조직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노동과 세계> 제87호). 여기서 ‘조직화’란 노조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노조에 가입시키는 걸 말한다.
그러나 실제 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대표적으로 건설일용노조들과 시설관리용역노조들, 그리고 재능교육교사노조와 애니메이션노조, 한라중공업사내하청노조, 성남지역임시일용직노조 등을 꼽을 수 있다. 서울과 대전 등지의 여성노조와 서울, 성남 등에 만들어진 지역사무직노조 역시 비정규직 조직화를 선언하고 출범한 노조들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올해부터 비정규직을 비롯 여성과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중심사업으로 설정해 중장기계획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또 미조직노동자 보호조항을 대정부 요구사항에 포함시키며, 실제적인 조직화를 위한 인력과 재정마련에 주력키로 했다. 지난 1월18일 대의원대회에서는 미조직노동자 조직화에 관한 사업계획을 확정하는 한편 이를 위한 특별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비롯한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향한 대장정에 나선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미조직노동자 조직화 전략수립을 위한 프로젝트’를 지난 해 9월부터 시작해 제도개선방안, 조직화계획, 조직가 양성프로그램 등을 마련하고 있다. 또 조직화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인력과 재정이라는 판단 아래 조직노동자 5만인 선언을 통해 조직사업기금 5억원을 조성키로 결의했다.
심동진 민주노총 조직부장은 이와 관련해 “중앙뿐 아니라 연맹·지역까지 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상담·법률 지원체계와 홍보·교육을 강화하고 전문조직가를 양성해야 한다”며 “이같은 사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을 모으고 사람을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존 노조가 비정규직노동자의 노조가입을 보장하고, 단체협약 혜택이 비정규직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며, 비정규직노동자의 상황을 사회쟁점으로 만들고 제도개선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맹조직들 역시 발빠르게 비정규직 조직화에 나서고 있다.
비정규직 조직화에 가장 힘을 쏟고 있는 조직이 바로 상업연맹(위원장 김형근)이다. 상업연맹은 올 예산편성부터 비정규직 조직사업비 비중을 높게 책정했고, 2월 하순에는 하루주점을 열어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리고 우선 규약상 비정규직 가입자격을 제한하지 않은 노조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노조가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단위노조를 상대로 홍보·교육사업을 적극 배치해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간다는 것이다. 심재진 상업연맹 정책부장은 “우리 연맹 사업장 대부분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노조가입 추진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97년 결성된 까르푸노조와 99년 결성된 도미노피자노조는 노조결성 당시부터 규약에 계약직이나 파트타이머 등 비정규직도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까르푸는 외국계 회사다 보니 파트타이머를 정규직으로 보는 관행이 있었던 탓이 컸다. 연맹은 이와 함께 지역노조나 업종노조 형태로 미조직사업장 비정규직을 묶어내는 한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의 근거가 되거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가로막는 법·제도개선투쟁을 현안이 걸린 사업장을 중심으로 벌여나갈 계획이다.
이미 애니메이션노조와 재능교육교사노조가 비정규직노조로 가입해 있는 민주노총 서울본부(본부장 이수희) 역시 최근 전담자를 배치하는 등 비정규직 조직화에 발벗고 나섰다. 최근에는 노무사시험을 준비중인 사람을 중심으로 5명의 상담 자원봉사자를 활용하기도 했다. 서울본부는 올해 컴퓨터산업종사자나 학습지교사 등을 지역노조나 업종노조 형식으로 묶어 세
우기 위한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처한 상황만큼이나 조직화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난 해 3월 최초로 하청노조를 만들어 주목받은 한라중공업사내하청노조(위원장 김호근) 역시 조직화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노조 설립 주체들은 공장뿐 아니라 출퇴근길에 자가용이나 통근버스를 같이 타거나 기숙사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맨투맨작전과 출퇴근 선전전 등을 병행하며 다각도의 노력을 쏟았다. 이렇게 어렵사리 만들었지만 노조활동은 쉽지 않았다. 노조가 뜨자마자 한라중공업은 조합원이 있는 하청업체들과 계약을 해지해버렸다. 결국 그 보복은 조합원에게 돌아왔다. 김남준 노조 사무국장은 “업체에서 개별적으로 조합원을 찾아와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고, 심지어 납치하기도 했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하며 “그렇지만 애초 노조를 만들었던 취지인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조직을 추스려 다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절실한 만큼 어려운 게 비정규직 조직인 것이다. 그러나 ‘정규’만을 위한 울타리를 ‘비정규’까지 에워쌀 수 있도록 고치는 일은 어렵더라도 서둘러야 할 듯싶다.
심재진 상업연맹 정책부장은 “실제 지난 하반기부터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가 핵심현안으로 급부상했지만 대의나 위기의식 차원에서 거론됐을 뿐 실제 인력이나 재정을 투여하지는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실제 조직화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부장은 또 “현재는 비정규직이 늘었으므로 조직해야 한다는 다분히 실용적인 조직화 중심으로만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연대나 평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비정규직을 양산해내는 법이나 제도를 바꿔내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제된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황미 leehm@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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