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영상④
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내가 만든 프로가 방송을 탄다면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노동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텔레비전은 그저 구석에 놓인 바보상자일 따름이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우리의 주장을,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 손으로 한번도 내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변해버렸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제는 수준이 떨어진다고 혹은 화질이 엉망이라고, 아니면 채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그 동안 미디어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을 가로막던 장애물들은 이미 화석이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정치적인 장애물은 여전히 남아있고 더욱 완강하게 버티겠지만, 이미 소수에게 채널이 독점되던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다.
우여곡절 끝에 얼마전 통과된 통합방송법이 비록 진보적인 방송구조를 전면적으로 보장해주고 있지 않지만, 세상의 거대한 변화를 조금은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시청자 제작참여’라는 표현으로 드러나는 ‘퍼블릭 엑세스’ 구조의 합법화다.
‘한국방송공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을 편성하여야 한다(69조 6항) … 종합유선방송사업자 및 위성방송사업자는 방송위원회규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시청자가 자체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의 방송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지역채널 또는 공공채널을 통하여 방송하여야 한다(70조 7항).’
간단히 설명하면 이제 KBS, 케이블 채널, 위성채널이 시청자가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프로그램들을 방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가 받은 방송사업자가 아닌 사람도 방송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이 혁신적인 조항에 등장하는 ‘시청자’의 대다수가 노동자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노동운동은 이제 당당히 ‘퍼블릭 엑세스’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그 구조를 최대한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해 나가고, 동시에 이것을 미래의 노동자 TV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가꿔나가야 한다. 디지털 비디오를 손에 쥔 노동자 영상 동아리의 비디오가 그것을 안방으로 실어나를 ‘퍼블릭 엑세스’와 서로 결합하게 될 때 그 파괴력은 상상을 넘어 선다. 비록 진정한 ‘퍼블릭 엑세스’를 확보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놀랍게도 이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런데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건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