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화의 현주소와 미래
누릴 여유가 없는 게 문제
노조가 나서야…문화패지원, 정책·기획력 높여야
민주노총이 지난 99년 3월에 발표한 조합원들의 98년 생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조합원들은 영화를 넉 달에 한편(월 0.34회) 보고 비디오테이프는 두 달에 세편(월 1.45편) 빌려보며 문화시설은 1년에 한번(월 0.16번) 이용한다. 또 스포츠·오락시설은 한 달에 한번(0.95번) 이용하고 책이나 잡지는 한 달에 한 권(0.8권), 노래테이프나 CD는 다섯 달에 세 개(월 0.63개) 구입한다.
이는 결코 풍족한 문화생활을 누린다고 하기는 어려운 수치다. 그렇다면 노동문화나 민중문화에 대해서는 어떨까. 자기 주머니를 털어 노동가요 테이프를 사거나 마당극, 노동극, 노래판굿 같은 공연을 온가족이 함께 보러 가는 횟수가 대중문화보다 많지 않으리라는 점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노동자가 노동문화나 대중문화 모두에서 소외돼 있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노조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노동자의 문화생활도 많이 개선된 측면이 크다. 노조를 통해 노동가요가 보급되고, 연극이나, 마당극공연, 집회 등 볼거리를 접할 기회도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문화’가 노동자 생활에 밀접하게 젖어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절대적인 시간부족이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IMF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현장통제가 더욱 강화돼 퇴근 이후에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주요요구로 내건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나누기라는 측면과 함께 휴식과 재충전을 통해 노동력을 보전하고 재생산한다는 의미 역시 매우 크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늘어나는 여가시간은 문화생활과 능력개발, 그리고 건강한 가족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조합원의 문화생활 질을 향상하기 위한 주체는 노동조합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문화를 세워내기 위해 보다 많은 조합원이 문화패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문화부의 정책·기획력을 강화해가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노조의 역할에서 뒷순위가 아니다.
한편 정권과 자본은 대중문화와 대중매체를 통해 무차별적인 문화적 공세를 퍼붓고 있다. 대중문화는 다양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노동자의 건강하고 올바른 의식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진 않지만 끊임없이 노동자의 계급성을 죽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1월23일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대표 신재걸·노문센터)의 출범은 의미가 매우 크다. 전체 노동자의 다양함을 ‘노동문화’라는 하나의 큰 울타리로 묶어낼 기둥을 세운 것이다. 노문센터 창립에 노동문화활동가 뿐만 아니라 노동문화에 관심 있는 노조 간부, 조합원 등 1천85명이 발기인으로 대거 참여했다는 점은 그만큼 큰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
노문센터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노동문화정책, 노동문화교육, 정보통신, 노동문화유통이 튼튼하게 짜여지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노동자의 공동체적인 생산-유통-수용 구조를 형성해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를 앞당기고 노동문화가 노동자의 가슴속에 넘쳐흐르는 새로운 세기를 향해 힘차게 진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황미 leehn@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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