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

오는 4월 16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시민운동단체들이 벌이기 시작한 낙천·낙선운동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1월 초 경실련의 전격적인 공천 부적격자 명단 발표로 불기 시작한 낙선운동의 바람은 지난 24일 500여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 인사 명단 발표를 전후해서는 메가톤급 태풍이 되어 총선을 앞둔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 낙천·낙선운동의 태풍 속에서 각 정당은 총선전략을 새롭게 짜내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명백한 실정법 위반 행위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다른 때 같으면 “엄단”한다고 나서야 할 선관위와 검찰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여야가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도 하루아침에 뒤집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낙천·낙선 운동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운동은 총선 국면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민적인 붕당정치가 폭발적인 낙천·낙선운동 불렀다

이른바 ‘시민없는 시민운동’이 벌이는 낙천·낙선운동이 이토록 폭발적인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 정치권은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조정하는 대의정치의 기본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정치시스템이 사회에 기반을 두지 않고 오로지 국가기구와 붕당의 보스에 의존하는 붕당체제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권은 일제시대와 미군정을 거치면서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타율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처음부터 배타적 특권을 누리는 귀족적인 정치집단으로 군림하게 되었고, 분단과 독재 하에서 기층 사회의 요구나 주장이 온전하게 표출되지 못하는 ‘사회 실종의 정치시대’가 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역사적 기원 때문에 우리나라의 정당과 정치시스템은 붕당체제 중에서도 식민지-천민적인 성격을 띠는 붕당체제로 굳어져 왔다.(이에 대해서는 <주간정세동향> 1998년 8월 10일자 참조) 이러한 식민지 천민적인 붕당체제는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의 과정에서도 좀체로 바뀌지 않았다. 이른바 ‘색깔론’으로 나타나는 분단-냉전이데올로기의 유산과 갈수록 고착화된 지역주의가 그러한 변화를 가로막은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식민지 천민적인 붕당체제 속에서 국회의원이 된 자들은 보스 정치, 패거리 정치, 지역주의 정치에 의존하여 공천을 받고 당선이 되어 왔다. 국민의 대표이자 심부름꾼이 아니라 오로지 보스의 종이었다. 사회(국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조정하기 위한 정책대결은 없고 오로지 보스 중심의 정략적 이해를 위한 정쟁만 일삼았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은 보통사람이 가지는 최소한도의 도덕성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처벌을 받고도 보스에 충성만 하면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게다가 정당과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 비정상일 정도가 되었다.

IMF 사태가 나고도 정치권과 정치인들은 어떤 변화의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민중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략적 이해다툼으로 날을 지샜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없이 한 패거리로 뭉치기도 했다. 식민지 천민적인 붕당체제 하에서 배태된 정치인들―그들에게는 정치인이라는 이름보다는 ‘정객’이나 ‘정상배’라는 이름이 더 적절하다―이 그러한 붕당체제에 견고한 철옹성을 쌓아나가는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치권과 정치인에 대해 실망과 배신감, 분노의 차원을 넘어 환멸과 경멸,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벌이는 낙천―낙선 운동이 폭발력을 갖게 되는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하더라도 정말 꼴 보기 싫은, 수구적이고 썩어빠진 정상배들이라도 이번에 한번 내쫓아 보자, 그런 정상배들이 없어져야지 정치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시민운동의 주장이 호소력을 갖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의 정략적 이해관계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오로지 정치권의 물갈이를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만으로 시민운동의 낙천·낙선운동이 이만큼 힘을 받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언론매체들의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땅의 언론매체들이 언제 국민들의 바램을 받들었던가? 만일 그랬다면 정치권은 변해도 벌써 변해야 했을 것이다. 이 땅의 언론매체들은 민중의 바램보다는 지배세력의 흐름에 훨씬 더 민감하다. 이번에 낙천·낙선 운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시민선거혁명’이니 ‘유권자 혁명’이니 ‘제2의 민주화항쟁’이니 하면서 그 의미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추켜세우는 이유는 그것이 지배세력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IMF 신탁통치 이후 미국과 초국적 자본은 신자유주의로의 급격한 구조개편을 강요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 2년간 위기상황 속에서 그러한 구조개편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재벌과 관료들을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구 특권층)은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버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여전히 정치·사회적으로 막강한 세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 법과 제도와 정책 등 사회적 제관계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정치영역에서도 신자유주의 세력은 헤게모니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정치에서 국회가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낮은 편이지만 군사독재가 아닌 이상 국회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국회를 보면 수구세력이 다수파다. 수구 세력인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을 점하며 거대야당으로 버티고 있고, 집권여당은 이른바 ‘수구의 원조’라는 자민련과의 연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집권주도세력인 민주당(과거의 국민회의) 안에서도 보스정치와 지역주의에 편승한 수구세력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세력관계 속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조차 순조롭게 추진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는 과거 군사독재의 유산을 일정하게 제거하는 민주개혁의 외양을 띠고 있어 수구세력의 기득권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 거듭 공언했던 국가보안법 개정과 인권법 제정이 무산된 것은 그 한 예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과 김대중 정권으로서도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를 확립하기 위해 정치권에 대한 물갈이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누차 정치개혁을 사활적 과제로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어떠한 ‘개혁’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현역의원들의 프리미엄을 고려할 때 공천에서의 대폭적인 물갈이도 쉽지 않다. 더구나 IMF 이후 광범위하게 누적된 민중들의 고통과 불만, 그리고 집권세력의 실정과 부패, 도덕성 추락 등으로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할 전망도 밝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대중 정권에게는 시민운동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은 정치권 재편을 위한 하나의 돌파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낙천·낙선운동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는가 하면, 4.19나 6월 항쟁을 들어가면 실정법 위반까지도 정당화해 주었던 것이다. 자민련으로 하여금 ‘음모론’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 제공해 준 셈이다. 총선연대가 공천 반대자 명단을 발표한 직후부터 거센 역풍이 불어오고 있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김종필 명예총재 등 주요 지도부가 망라된 자민련이 ‘음모론’을 앞세워 낙천운동에 대한 파상적인 공격을 가하면서 오히려 또다시 지역구도가 강화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붕당체제의 고리인 보스에 의한 밀실공천을 혁파해야 한다.

이처럼 ‘음모론’이 아니더라도 낙천·낙선운동이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는 지배세력의 이해관계와 김대중 정권의 정략적 이해에 부합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민운동단체들이 벌이는 낙천·낙선운동을 일면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낙천·낙선운동은 수구적이고 부패한 정치권의 개혁을 바라는 국민적인 요구·열망에 부응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소한 붕당체제를 해체하고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일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치영역에서 붕당체제를 깨고 최소한의 민주적인 정치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을 때 신자유주의를 부정하고 자주적·진보적 변혁을 이루는 투쟁도 보다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탈냉전 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민중들의 의식을 짓누르고 있는 냉전·반공 이데올로기를 생각해 보라. 작년 겨울 종교인들까지 나서서 단식투쟁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하나 폐기시키지 못한 현실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문제는 과연 지금 진행하고 있는 낙천·낙선운동만으로 우리나라의 정치시스템을 얼마나 바꾸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공천 반대 인물을 공표하고 낙선운동을 벌인다고 하지만 그들을 공천하고 말고 하는 자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식민지 천민적인 붕당체제에 기생해 온 정상배들이다.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운동을 추진하자, 정당 보스들이 남 얘기하듯 동조하면서 책임의 화살을 피하고 있으나, 정작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보스에 가장 충성을 바치면서 붕당체제를 떠받쳐온 이른바 ‘가신’들은 대부분 낙천대상자에 들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설사 들었다 해도 대부분 살아남을 것이다. 결국 붕당체제를 해체하는 운동과 결부되지 않은 한 낙천·낙선운동은 정당 보스들의 정략적 이해, 지금으로서는 특히 김대중 정권의 정략적 이해를 실현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렇게 되는 한 ‘음모론’ 공세에서 보듯이 오히려 궁지에 몰린 다른 정파의 보스가 지역감정을 부추겨 기존의 붕당체제를 더 강화하는 데 역이용될 수도 있다.

부패·무능·비리·저질·반민주·반인권 정치인들의 정치인들에 대한 낙천·낙선운동은 더 끈질기고 완강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식민지 천민적인 붕당체제를 해체하는 정치개혁운동과 결부되어 진행될 떼에만 그러한 낙천·낙선운동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붕당체제를 해체하는 현실적인 고리는 무엇인가? 당면하게는 정당 및 계파 보스들에 의한 밀실공천을 혁파하는 것이 그 고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보스의 전횡을 가능케 하는 공천제도는 정치자금과 더불어 붕당체제를 유지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지금 선거를 앞두고 그간에 거리낌없이 부적격 인물들을 공천해 온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차제에 정당과 계파 보스들이 전횡하는 공천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들에 대한 공천권을 정당 보스가 가져야 하는가?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 공천권은 지역구의 당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나아가 지난번 일본에서 시도되었듯이 지역주민들에게까지 후보 선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안도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해서 공천제도부터 ‘사회’, 즉 일반 민중과의 연계 속에서 밑으로부터 민주적으로 선출하게 만들 때 우리는 붕당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참된 정치개혁의 출발점에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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