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국민으로서…
전쟁에는 처절한 살육행위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전쟁에서는 법률
마저도 효력을 상실한다”는 말도 있다. 3년 동안 계속됐던 6·25전쟁
은 규모나 격렬성에서 1, 2차 세계대전에 이어 세 번째 큰 국제적 전
쟁으로 기록돼 있다. 남북한 군인과 민간인 희생자만 보더라도 사망
부상 실종자수가 무려 450만 명을 넘어섰다. 북한군에 의한 양민학살
도 50만명 이상이다. 미국 정부는 노근리 사건이 제기된 이후 사건을
감추려 하지 않고 ‘한국전 초기 대응태세 미흡’을 시인하며 사건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미 정부간에는 노근리 대책반이
구성돼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응분의 보상방안을 마
련하고 있다. 세월이 얼마만큼 흘렀건 간에 과거의 역사가 잘못돼 있
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노근리 사
건이나 대전 교도소 사건 등이 모두 개전 초기에 발생했다는 점을 예
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즉 전쟁의 공포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국가
의 통제기능이 상실돼 있었으며 피아간 식별마저 명확하지 않은 상황
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곳
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무분별한 폭로현상이다. 불행했던 시절의 군
사관련 문제를 충분한 검증조차 없이 제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무분
별할 뿐만 아니라 군과 국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울 수 있다는 점
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력대치가 지속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에서 군사에 관련된 사안은 국가안보를 최우선
으로 고려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정부 차원에서 충분한 검토와
사실 규명이 이루어지고 난 후 시시비비를 가려도 결코 늦지 않으리라
고 생각한다.. 김종구<국군홍보관리소장>
이 글은 동아일보 발언대에 올라온 글을 옮겨놓은 것이다. 굳이 평화
연대의 지면을 할애하여 이 글에 대한 토를 달고자 하는 것은 지난 99
년 하반기 내내 평화연대에 단골로 등장했던 주제가 바로 위의 사설에
서 언급하고 있는 이른바 군사력주의 혹은 군사 안보주의에 대한 비판
이었기 때문이다. 또 정세파악 못하고 아무데서나 용감한 군인정신 운
운하는 요즘의 정세(군가산점 제도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웃지못할
코메디였다)에 끓어오르는 울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난 물론 군대를 모르고 다녀오지도 않았다. 게다가 군대를 다녀온 사
람
들 혹은 대한민국의 국토방위를 위해서 수고한 군인의, 군대의 수고를
폄하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냉전이 물러나고 어쩌고 저쩌고, 새천년의
희망이 어쩌고 저쩌고 굳이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분단이란 특수한
상황에 살고 있다는 현실인식도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지겹
긴 하지만 다른 나라와는 분명 다른 위치에 한국이 놓여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구
래의 말이 있었다. 이는 내가 강해야만 남이 날 함부로 할 수 없다는
힘의 논리에 기초한 언명이다. 비단 국가간 작용하는 원리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지역 공동체에서 친구 사이에서도 이는 항상 만고불변의 진
리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자 아이들에 대한 이런 힘에 바탕한 교육
은 더욱 심한데 밖에 나가서 죽도록 맞고 들어오면 혼이 나지만, 차라
리 친구를 패주고 왔다면 잘 했다고 칭찬을 받는다. 이러한 힘의 논리
가 국가간 체계에 적용되는 것이 바로 군사력 중심의 안보관이다. 안
보란 다시 말하면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말이다. 난 나의 안전이 한 번
도 군사력에 의해 보장받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국토가
수호되고 전쟁이 없어야만 기초적인 안보가 보장되는 것이겠지만 난
전쟁 없는 지금 시기도 절대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
하면 나의 안전은 직업으로부터의 안전, 공정한 교육의 기회로부터의
안전, 아프면 마음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안전, 배고프지 않을 안전,
끝없는 경쟁 속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더불어 사는 그런
안전, 국가권력에 의해서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 안전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누구나 이런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고 사람에 따라 국토
방위의 안전보다 우위를 점하기도 한다. 무엇이 우선이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위 글의 논리에 의하면 모든 안전
에 우선은 남북대치 상황에 있는 군사력이 우선이므로 미군에 의한 억
울한 죽임같은 것은 함부로 발설해선 안된다는 것인데 다른 이유도 아
니고 이런 유치한 이유들을 갖다 붙인다면 옛날처럼 빨갱이로 몰릴까
무서워 쉬쉬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국토방위를
위한 군사력 증강의 논리 속에서 군 가산점 제도도 존치되고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해명조차 요구하지 못하다니 난 정말 이 땅의 국민으로서
진정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 글 /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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