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선수협의회-노예들의 반란 노조로의 발전을 기대한다

■ 글 / 이혜수 (평화인권연대 회원·공인노무사)

지난 22일 프로야구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가 75명의 선수들에 의해

출범되었다. 외국에서는 당연하게 인정되는 선수노조, 그 수준은 아니

지만 선수들 나름대로의 분노의 결집체일 것이다.

프로야구계는 마치 농노와 봉건영주의 관계와 같은 오랜 관습을 선수

들에게 강요해 왔고, 실제 그들은 신분적으로 예속되고 경제적으로 열

악한 수준에서 그들의 젊은 생(?)을 마감하기 일쑤였다. 통계에 의하

면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연봉은 4천 만원 수준이다. 와우! 웬만한

대기업 부장급이잖아? 천만의 말씀이다.(아마도 우리는 박찬호, 선동

렬, 이상훈 등 ‘억’, ‘억’거리는 선수들만 보아와서 더욱 그러할 것이

다!) 억대의, 나름대로는 잘 나간다는 선수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선수

들, 즉 2군, 연습생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실제로 인간이하의 대접

을 받고 그들의 젊은 생을 마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젊은 생을 마

감한 채, 시골 국민학교의 야구부 코치자리라도 하나 맡는다면 모를까,

아마도 상당수의 야구선수들은 제갈길을 가기 일쑤이다. 그들에게는

퇴직금도 없다. 전별금 정도는 모를까!

그들의 신분적 예속을 한 번 볼까? 노예를 사고 팔 때, 노예가 어떤

주인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새로운 주인은 우리의 ‘쿤타킨테'(대졸, 24

세)를 이리저리 주시하고, 이빨이 가지런하고 튼튼한지 살펴본 다음

개끌듯이 끌어간다. 물론 다시 되파

는 것도 노예주의 자유이다. 물론 새로운 노예주는 ‘쿤타킨테’에게 말

하기를 나에게 10년 동안 뼈빠지게 봉사하면 너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

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고 말한다(그러나 새로운 노예주는 노예규

정에 살짝 “데려가는 노예주는 현 노예주에게 쿤타에게 쓰여진 돈의 2

배를 주고 늙은 노예 한 명을 바쳐야 한다”고 규정해 놓는다). 쿤타킨

테는 군대를 갔다오고 26살이 되었고, 10년이 지나 36-7살이 되었다.

자유가 왔다. 쿤타의 자유가 온 것이다. 쿤타는 자기를 데려가 줄 새로

운 노예주를 찾는다. 마음씨 착하고 여생을 편하게 살수 있도록 해줄

만한 노예주를 찾는다. 그러나 사실 새로운 노예를 쓸만한 부유한 노

예주 중에 마음착한 노예주는 없나 보다. 그리고 누가 이제는 노예로

써 환갑이 된 쿤타를 데려가겠는가?(이것이 우리의 FA-자유계약제도-

이다)

그들의 인격적 종속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2군, 연습생들은 인간

이기를 거부한다. ×새끼가 난무하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혹독한 기

합이 뒤따르고 있다. 물론 이러한 환경으로 인한 선수들의 정신적, 육

체적 스트레스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버젓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범죄행위가 각 구단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천민자본주의의 전

형을 보는 듯 하다.

그들에게는 퇴직금도 없다고 했다. 이는 그들이 노동자 신분이 아님을

의미한다. 노예이기는 하되, 근로자는 아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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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판례가 그렇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노동자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외국에는 선수노조가 왜 있지? 의문이 든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응분의 대가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때의 노동은 종속노동을 말하고,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모두 포함한다. 프로선수들은 자신의 경기력을 제공하고 응분의 대가를

받

으

며, 구단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징계를 받기도 한다. 당연히 노동자이다. 따라서 선수들이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을 행사해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해도 막을 명분이 없다. 하물며 임의단체 결성조차 방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 헌법에는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화연대 독자들에게 노동자라는 개념을 말하고 싶어 이렇게 당

연한 말을 길게 서술했다. 노동자는 우리가 상상하는 생산의 현장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전형적인 상만은 아닌 것이며, 그러

한 노동자만이 의식적인 계급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님을 말하고 싶다.

보라! 지금의 노예들은 우리 사회의 대 반란을 일으켰다. 그것이 어떻

게 전개될지는 상상되지 않지만, 그들은 노예주들을 공격하며 우리들

에게 부당한 사회모순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KBO와 구단의 야만

에 대한 도전! 이것은 그들이 어떻게 조직화될 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

했던 것이며, 누구도 선도적으로 제기하지 못했던 문제이다. 단지 그들

스스로 일궈낸 성과물인 것이다. 그들이 다시 선수협에서 노조로 발전

할 때,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바랄 것이며, 그들은 과연 우리에게 무

엇을 바랄까?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조직화되며, 그들의 성향

이 어떨지에 대해서 말이다. 다만 우리가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통신상, 매체 상에서 열심히 외쳐주는 것이 아닐까? KBO, Go

To Hell !이라고,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시민과 함께 하는 리그가 되

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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