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할로넨이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세계의 현직 여성 수반은 모두 8명이 되었다. 미미한 변화이기는 하지만 정치에도 여성파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여성대통령의 탄생 그자체보다 더 관심을 끈 사건은, 문화일보를 필두로 국내 일간지들이 여성의 정계진출과 관련된 뉴스로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높은 뉴스가치성을 갖게 된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로는 같은 날 일본의 오타 후사에가 여성지사로 뽑혔으며,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가 뉴욕주 연방상원의원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는 동시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우리 언론이 과거에는 그저 남의 문제이거니하며 무심하게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와 결부시켜 여성의 정치참여 활성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할 정도로 적극성을 띠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전향적인 자세다.
셋째, 언론의 태도변화가 세계적인 정치 변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큰 변화를 논하기에는 여성 고위권력자의 수가 아직은 너무 적다. 그리고 여성의 최고위직 진출이 일반여성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변화의 흐름이 일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고 이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기도 하다.
그러면 무엇이 여성의 정치등장을 가능하게 하는가. 요즘 적지 않은 세계의 여성최고경영자들이 재계를 누비는 것을 보면 경제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도 여성 정치지도력에 대한 요구가 여성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그리고 앞으로 더 여성정치력을 필요로 하는가.
**환경정치 대두로 여성성 요구**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21세기는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요구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20세기가 대립과 분열과 갈등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통합과 조화와 상생의 시대라고 한다. 냉전으로 점철된 20세기는 소위 군사력과 안보문제가 정치의 핵심이 되는 상위정치(high politics)의 시대였다. 냉전이 사라진 오늘날 지구촌은 경제·문화·환경 등 하위정치(low politics)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냉전 이후 부쩍 잦아진 인종·민족·지역·종교 등의 크고 작은 갈등은 섬세한 정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생리적 결과인지 후천적 습득에 의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동안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던 여성성이 21세기 정치에는 보다 우월한 특질로 인정받게 되었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대우를 외면당하던 여성이 21세기의 정치에는 보다 적합한 자질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자신의 세계에서만은 최고로 대접받던 남성이 서로 만나 양보와 타협보다는 대결과 기싸움으로 일관하는 정치가 소외된 국민의 아픔을 보살필 리 없다. 자연히 남성의 전유물인 우리의 정치는 부정부패와 소모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갖춘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조사해본 여성수반들은 대개 네 부류로 나뉜다. 정치가 미발달된 곳에서 주로 발견되는 지도자 유형은 대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누구의 후광을 받았느냐에 따라 다시 두 부류로 나뉜다. 암살당한 남편의 대리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지도자로는 필리핀의 아키노, 니카라과의 샤모로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갈등을 종식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에는 큰 기여를 했지만, 유약한 지도력으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대표적 지도자는 인도의 간디, 파키스탄의 부토로, 아버지를 닮아 남성적인 지도력을 발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한 부류는 내부자로 젊은 시절부터 정치판에서 뼈가 굵은 자수성가형인데, 이들은 영국의 대처나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와 같이 전쟁도 불사하는 남성적인 지도력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끝으로 외부자는 높은 교육수준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계의 고위직으로 뒤늦게 입문한 경우인데, 노르웨이의 부른틀란트와 아일랜드의 로빈슨 대통령이 여기에 속한다.
**통합-상생의 정치력 보일때**
이들 여성 지도자중에 21세기가 요구하는 통합의 지도력은 주로 외부자에게서 발견된다. 그 이유는 남성으로부터 정치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결과는 여성이 21세기 정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암시해준다.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겉모습 때문에 경쟁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남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통합과 상생의 정치력을 보여줄 때 비로소 그 비교우위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趙己淑·이화여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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