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영상 (6)
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노조도 독자적 방송매체를 갖자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답하고 급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2000년의 시작과 더불어 등장한 새로운 제도적·기술적 조건들을 근거 삼아, 노동해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노동자 TV, 더 가깝게는 노동자 라디오 방송국을 쟁취하기 위한 활동이 당장 필요함에도 노동운동 진영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그리 새로운 현상은 물론 아니다. ‘미디어’와 ‘노동운동’이라는 두 단어를 연결시키면 진보적 노동운동의 독자적 미디어보다는 주류 미디어의 언론노동자가 떠오르게 마련이니까. 그만큼 민주노조운동은 독자적인 매체를 활용한 노동운동이라는 영역을 자신의 핵심적인 조직적 과제로 인정해본 일이 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지난 해 11월의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회의와 국제노동영화제를 가능케 했던 힘은 노조보다는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이끌어온 소수의 독립적 영상정보통신단체들한테서 나왔다. 노조의 어떤 조직적 지원도 받고 있지 못한 이들 단체들의 활동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한국 노동자의 자랑거리다. 하지만 이러한 단체들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동시에 그 활동을 민주노조운동과 체계적으로 결합시켜내지 못하는 노조의 무능력은 이제 더 이상 구차한 변명으로 덮어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루속히 노동운동이 자신의 독자적인 미디어에 대한 조직적 결의를 이끌어내고,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해서 장기적 전망과 단기적 과제를 종합해내지 않는다면 상황은 암울하다. 아무리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를 든 노동자들이 현장을 누비고, 노동운동이 독자적인 방송 채널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교육과 제작의 중심지가 될 지역 미디어 센터가 만들어진다해도, 노조가 매체활용이라는 과제를 자신의 조직적 과제로 분명히 설정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오히려 위기로 뒤바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인미답의 가시밭길이다. 진보적 노동운동을 구조적으로 배제하는 사회에서 노동자 TV의 미래는 험난할 수밖에 없으며, 현재의 노조 조직체계에는 미디어 분야를 총체적으로 조망해낼 수 있는 책임주체가 아예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력감에 빠지진 말자. 어떤 투쟁도 여유 있게 준비된 일은 없으며, 노조의 지원 없이도 카메라를 든 노동자와 독립적인 미디어단체들은 고군분투해왔다. 이제라도 당장 신속하게, 민주노총 및 업종, 산업별 연맹 중앙, 대기업 단위노조 등의 집중적인 투자를 결의해내고 각 지역 및 단위사업장의 조건에 걸맞는 영상매체 관련 정책을 수립하여 변화하는 상황에 개입해 들어간다면, 2000년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다만 잊지 말자. 시간은 많지 않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