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현장(2) 서울지하철노조의 색다른 ‘실험’
‘노조운동 새 패러다임’ 혁신인가 어용인가
“물리적 투쟁 아닌 자율·상생으로 노사공존”
“회사손 들어주는 노사협조주의 용납 못해”
지난해 10월17일 선거에서 당선된 배일도위원장이 노조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창하고 나섬에 따라 서울지하철노조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그 바람이 노동하는 현장조합원의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줄 시원한 바람이 될지, 아니면 지난 민주노조의 역사를 부정한 채 현장조합원을 더욱 옥죄일 매서운 바람이 될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른 것으로 보인다.
배위원장은 지난 1월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군사정권 때는 투쟁이 유일한 방법이었으나 지식정보사회로 변하고 있는 지금은 성실한 교섭으로 시민과 조합원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시대의 변화에 맞는 노동운동”이라며 ‘무쟁의’를 선언했다.
배위원장은 언론을 통해 주창해온 ‘노조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노동과 세계>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예전에는 생산력 발전의 원동력이 자본과 노동력이었고, 자본은 지배, 억압, 착취를 통해 이윤을 창출했지만 이제는 생산력 발전의 원동력이 지식, 정보, 기술로 바뀌었다. 자율성과 창의성, 근면성이 발현될 수 있는 노동조건을 형성시켜줘야 이윤창출도 가능할뿐만 아니라 생산력도 더 증대된다. 따라서 이제는 물리적 투쟁이 아니라 자율, 상생, 순환을 통해 윈윈(WIN-WIN)해야 한다. 서로가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어렵다. 정책이나 여론, 공동목표 설정 등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이익뿐 아니라 회사와 사회발전도 가져오도록 노동운동이 전환돼야 한다. 과거와 같은 명분이나 노조간부의 활동력이 아닌 조합원 개개의 자율성과 창의력이 유력한 수단이다.”
이와 관련 한 조합원은 “이제 노조가 소수 간부에게 끌려다니던 시대는 지났다. 이번 잠정합의안 가결은 그런 현장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며 배일도집행부의 활동방향을 긍정적으로 평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은 게 사실이다. 군자검수지회의 한 조합원은 “그런 배위원장의 주장은 지하철노동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번 잠정합의만 보더라도 노조는 조합원의 의견을 모아서 요구안을 만들고, 그 요구안을 가지고 교섭에 임해야 함에도 배위원장은 오히려 회사쪽안을 그대로 수용했다”며 “이는 노동조합이 회사 손을 들어준 것이고, 그런 것을 가르켜 ‘어용’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배위원장의 새로운 노선에 대한 첫 번째 시험대격이었던 이번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는 결과적으로 과반수(54%) 참가와 과반수 찬성(86%)을 끌어냈다. (<노동과 세계> 89호) 그러나 배위원장이 지난 12월30일 공사쪽과 합의한 잠정한 직후 기술, 승무, 역무, 차량 4개지부 간부와 현장간부들은 곧바로 ‘서울지하철노조 구조조정 저지 및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의장 김학년 승무지부장·비대위)를 구성하고 잠정합의 원천무효를 선언했다. 이어 비대위는 총투표 과정에 공사쪽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으므로 불법투표였다며 총회결의 무효확인소송과 노사잠정합의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낸 상태다. 잠정합의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창동차량지회의 한 조합원은 “조합원 총투표 실시여부는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도록 돼 있는데도, 대의원대회에서 압도적으로 부결된 총투표를 강행했다”며 “이처럼 주요 의결기구의 결정마저 무시하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냐”고 반문한 뒤 “그것은 노선이라고 할 수도 없고, 단지 처세술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축정비지회의 한 조합원은 “배위원장이 내세우는 제3의 길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그러나 그같은 노선을 막아내려면 현장의 대응이 매우 중요한데 비대위는 아직 구체적 실천을 배치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대위에 더욱 적극적이고 원칙적인 활동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편 또다른 조합원은 “이번 잠정합의안에 대해서는 임금인상 요인 때문에 많은 조합원이 참가했지만 배위원장이 노사협조주의로 가도록 조합원이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조합원들이 아직은 건강하다”고 덧붙였다.
한 조합원은 현장분위기를 “무척 살벌해졌다”고 한마디로 전했다. “중간관리자들과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 반목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갈등과 논란 속에서도 지하철노조가 나아갈 길은 아무튼 지하철노조 조합원의 손에 달려 있다. 서울지하철노조가 지난 13년동안 민주노조운동 진영에서 차지해온 비중이 컸던 만큼 60만 민주노총 조합원, 나아가 1천3백만 노동자가 서울지하철노조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의 선택과 활동방향은 민주노조운동진영 전체의 문제라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이황미 leehm@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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