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우리 문단을 대표한 논쟁이라면 `민족문학 주체논쟁’을 들 수 있다.

1987년 소장 평론가 김명인씨의 논문 <지식인 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구상>에서 촉발된 이 논쟁은 백낙청 교수로 대표되는 기존의 민족문학론에 대해 김명인씨의 민중적 민족문학론, 조정환씨의 노동해방문학론, 백진기씨의민족해방문학론이 맞서면서 상호간에 일종의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형국으로진행되었다.

그러나 나라 안팎의 상황이 급변한 90년대 초부터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기약 없는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백낙청 교수 역시 90년대에 들어서는 고뇌속에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듯했다.

민족문학 주체논쟁이 충격 속에 시작되었던 것만큼이나 허무하게 스러진 지 10여 년, 당시의 `주체’들이 모처럼 제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원조’ 민족문학론자인 백낙청 교수가 <창작과 비평> 봄호에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한 단상>을 발표했고, <실천문학> 봄호는 김명인씨의 <비극적 세계인식의 회복을 위하여>와 조정환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노동문학>을 함께 실었다.

특히 조씨의 글은 그가 사노맹 사건과 관련해 수배된 1990년 1월 이후 10년만의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백 교수의 글은 분단체제론과 민족문학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관계, 세대론과 90년대 문학의 공과 등에 관한 생각을 개진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자신이 김기택 신경숙 은희경 등을 높이 평가한 것과 관련해 백교수는 “적어도 `진영’ 개념의 질곡만은 벗어던질 필요가 절실했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김명인씨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 관람기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그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주인공이 구현하는 비극성의 차원이다.

그가 보기에 90년대 소설들의 가장 큰 문제는 비극성의 소멸에 있다.

80년대 소설을 정치과잉이라 이르며 “정치로부터의 대규모 퇴각”과 “몰계몽 상태로의 침잠”을 보인 90년대 소설은 소설가 출신 감독이 영화로써 이룬성과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씨는 그럼에도 박범신, 공지영, 김별아씨 등의 몇몇 작품에서 발견되는 비극적 세계인식의 회복 가능성을 소중히 여긴다.

왕년의 노동해방문학론자로서 조씨가 여전히 노동문학의 현실과 운명을 화두로 내건 것은 당당하고 진지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지난 시기 구호화와 도식성에 빠졌던 노동문학이 이제“`삶으로서의 문학’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시절 사회주의라는 `신화’에 주박되었던 노동문학이 노동의 해소라는 불가능을 꿈꾸었다면, 이제 노동의 다변화, 전면화는 오히려 노동문학의 토대를 증가시킨다는 것이 조씨의 판단이다.

다만 그는 노동이 작업장을 넘어 사회 전체로 흘러 넘치고 있는 현실에서“공장-노조-파업에 갇힌 협소한 노동문학 개념을 고수하는 것은 오늘날의도와는 무관하게 변화된 현실을 외면하는 보수주의를 드러내게 된다”고지적한다.

그는 신경숙씨의 <외딴 방>과 백무산씨의 최근 작업에서 사회주의와 리얼리즘의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문학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비록 치기와 맹목의 혐의를 온전히 벗을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분명 왕년의 `스타’들이었다.

그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한 글에 반가운 마음이 앞서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다만, 이들과 함께 논전을 벌였던 백진기씨의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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