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영상⑦
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디지털 자본주의, 공짜는 없다
며칠 전 TV가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목소리를 억압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났다.
진보적 사회운동의 힘이 그리 강하지 못한 일본에서도 비디오 운동가들은 ‘비디오액트’라는 연합체를 통해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연대활동을 발전시켜 왔다. 다른 나라의 진보적 비디오운동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품의 배급과 상영이 역시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러던 비디오액트에게도 다채널 디지털시대가 오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났다. 지난해 말 새롭게 만들어지는 디지털 위성채널 중 한 곳에서 그들의 작품을 모두 틀겠다는 획기적인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대중과 좀더 폭넓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비디오액트는 곧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지만, 이들은 보수적인 미디어의 거대한 벽 앞에서 또다시 좌절해야 했다. 방송이 겨우 두 달 남은 상황에서 위성채널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전제조건을 내건 것이다. “환경과 여성 분야에 대한 비디오는 괜찮지만 노동운동, 도청문제, 천황제 비판 등을 소재로 한 논쟁적인 작품은 안된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디지털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의 무한한 발전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천만에! 환상은 절대 금물이다. 정보기술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해도 세상에 공짜란 없다. 민주주의는 힘이 있어야 얻어지는 것이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냥 주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맥도널드 망신당하다>라는 영국작품은 다국적기업 맥도널드의 반노동자적·반민중적 성격을 폭로한 뛰어난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 작품은 세계 어디에서도 전국방송 네트워크를 타지 못했다. 무슨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가. 맥도널드는 명예훼손 재판으로, 또는 광고계약을 취소함으로써 방송국 하나쯤은 망하게 할만한 충분한 힘을 갖고 있는데.
잊지 말자. 자본주의가 점점 야만적인 모습으로 바뀌면서, 그리고 영상 미디어가 점점 우리 삶 속에 중요한 지위를 점하면서 미디어 세상은 점점 더 전투장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심한 패배주의에 빠지지도 말자. <맥도널드 망신당하다>는 내용을 순화시키는 타협을 거부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대중들과 만날 수 있었으며, 미국의 진보단체 프리 스피치 TV는 올해 1월에 세계 진보운동 사상 최초로 24시간 종일방송 위성 채널을 확보했으니까.
그러니 노동자TV를 향한 우리의 모색은 매우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해서만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거나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양극단을 떨치고 미디어 체제의 감추어진 본질을 꿰뚫어,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해 변혁을 위한 실천을 준비하는 것, 바로 이것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학적 미디어 전략의 출발점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